코피 터질 듯한 삼 향기와 대마초 사건

[동무들의 악다구니 6]사라져버린 오뉴월 삼밭 풍경

등록 2005.05.30 14:46수정 2005.05.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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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논에 삼 씨를 콩나물처럼 배게 뿌려 가지가 생기지 않게 하면 금비를 맞고 삼이 쑥쑥 자랍니다. 키가 4미터는 충분히 자랐던 기억이 납니다. 베는 족족 옆에서 대나무 칼로 착착 쳐내는 그 향기는 인진쑥 향기와 흡사하답니다. 그 다음 삼을 구워 껍질을 벗겨 치렁치렁 널어 말린 뒤 고단한 길쌈을 합니다.
봄에 논에 삼 씨를 콩나물처럼 배게 뿌려 가지가 생기지 않게 하면 금비를 맞고 삼이 쑥쑥 자랍니다. 키가 4미터는 충분히 자랐던 기억이 납니다. 베는 족족 옆에서 대나무 칼로 착착 쳐내는 그 향기는 인진쑥 향기와 흡사하답니다. 그 다음 삼을 구워 껍질을 벗겨 치렁치렁 널어 말린 뒤 고단한 길쌈을 합니다.허호행
들엔 3할이나 모가 심어져 있다. 가까스로 물을 잡아 1모작을 했을 뿐이다. 나머지 7할 중에 70%는 보리밭이었고 20%는 밀밭, 10%는 삼밭이다. 삼이라면 대마(大麻)를 말하는데 가을보리와 밀, 봄에 심은 밀과 보리를 베고 2모작을 거의 마칠 때쯤이면 삼을 베는데 초여름 농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70년대 중반 시골엔 향긋한 삼밭이 있었고 그 옆을 지나가는 악동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야야 더 땡겨!"
"얌마 째까만 따자."
"누구 코에 붙이냐 이걸로?"
"글다 나무가 흔들리먼 어쩔라고?"
"봐봐 아무도 없잖녀?"
"글면 언넝 따라."

나른한 오후 예닐곱 먹은 아이 서넛이 논두렁을 바삐 뛰기 시작했다. 자칫 걸리면 어른들께 호된 고초를 당해야 하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질을 했던 것이다. 손엔 파란 삼 잎사귀 한 줌을 꼭 쥐고서….

그 때 푸드득 꿩도 두 마리 날았다. 우리가 딴 짓을 하지 않았던 들 삼밭에 들어가 꿩알을 줍거나 아직 바닥만 뿍뿍 기는 꺼병이를 몇 마리 데려올 수 있었지만 따로 할 일이 있어서 하릴없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못내 아쉬웠다.

밀껌, 보리껌을 씹다가 일찍 타맥을 한 보릿대 눌러 놓은 한적한 곳에 다다른 우린 각자 찢어온 공책을 조개껍데기만하게 잘라 담배(대마초)를 말 준비를 했다. 잠깐 사이 조금이라도 더 마르라고 불타는 듯한 햇볕에 얇게 펴서 널었다.

"야! 시방 말면 안 되까?"
"째까 지달려봐."
"바짝 말라야 풋내도 나지 않고 잘 탄당께. 글면 당냥(성냥) 각괐제?"
"잉."
"우리덜 여치집이나 맹글고 있자."
"그려."


보리 까시락(까끄라기)이 풀풀 날리는 더미에 웅크리고 앉아 한 무더기 끌어와서는 하나씩 가려나갔다. 50여개 모아서 여치집을 만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보릿대가 참말로 잘 나왔다잉."
"메뚜기허고 풀무치, 방아깨비, 여치를 넣을라면 촘촘허게 맹그러야 혀."
"야 근디 첨이 좀 어렵네."
"아따 새끼, 아직까장 요것도 몰러?"
"한 살 더 먹었응께 더 잘혀야 헐텐디 다 까묵어부렀당께 내가 까마귀가 되었는가."


한 아이가 하나씩 끼워 네 가닥을 둘둘 돌려가며 절어나가면서 보고 있자니 애가 타는지 어릴 때부터 손치인 내 걸 빼앗듯 채가지고는 바닥 자리 모양을 잡아주었다.

"됐당께. 일로 줘봐봐. 나도 헐 수 있어야."
"지미, 기껏해준께 또 딴소리네 시벌."
"시방부터는 나도 잘 해분당께."

금세 여치집 하나씩을 만들었다. 꽈배기가 요리조리 꼬이듯 폭이 넓어졌다가 어느 자리에 이르러서는 차차 좁아져 마감을 할 때는 밑동보다 더 좁게 하고 못에 걸 끈을 두 가닥으로 달면 끝이었다.

여치집을 만들려면 보리를 심어야겠네요. 만드는 방법을 시간 나는대로 써보겠습니다. 내년에 귀향하면 <산채원>에도 추억의 <장난감박물관> 하나 쯤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여치집을 만들려면 보리를 심어야겠네요. 만드는 방법을 시간 나는대로 써보겠습니다. 내년에 귀향하면 <산채원>에도 추억의 <장난감박물관> 하나 쯤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김규환
집중력이 부족한 우리들은 까마득히 세상일을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여치집을 하나씩 더 만들 요량으로 다시 보릿대를 추리려고 할 때였다.

"야 이놈들아. 보리 까시락에서 뭣들혀."
"아녀라우."
"한 번 백히면 얼매나 꺼끄러운지 알기나 혀?"
"암은이라우. 보리타작도 해봤는디 그걸 모르간디요."
"이놈들이 꼬박꼬박 대꾸네…. 후딱 집에들 가서 놀그라."
"알았어라우."

그 때 눈치꼬치가 빠른 병문이가 꼬깃꼬깃 말라가는 삼잎을 슬며시 여치집으로 눌러서 숨겼다. 하마터면 곤욕을 치를 뻔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한 아이는 애써 절어 놓은 여치집을 밟아버렸다. 빈 지게를 지고 신작로를 걷는 아저씨는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큰일 날 뻔 해부렀다. 우리 여그 있지 말고 정지동으로 가자."
"그려 거기 가면 잔디도 좋고 잘 안보인당께."

푸석푸석 마른 잎을 살포시 쥐고 들판 한가운데 있는 새참 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름드리 노송 세 그루가 마주보며 거북등처럼 갈라져 세월을 말해주고 있어 나중에 학교에 오갈 때 들러 놀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근사한 곳이다. 주위엔 아직 논을 갈 형편이 못 되었으니 안전지대가 따로 없었다.

노송 껍질이 벗겨진 사이로 진물이 흘러내려 진액을 빨아 먹으려고 개미가 쉬지 않고 오르내린다. 우린 나무에 바짝 붙어 풀썩 주저앉았다.

"자 여기."
"나 쫌만 더 주라."
"그려 많이 쳐묵어라."

종이에 바짝 마른 삼 잎을 넣고 동글동글하게 둘둘 말아서 마지막 겉엔 어른들이 하시던 대로 침을 자르르 발라 붙였다.

"다 말았제? 당냥 별로 없응께 한꾼(한꺼번)에 붙여야 헌다 알겄제?"
"눈깔 퍼런 서독 사람들은 열 명이 모여야 불을 켠다고 하드라."
"준비 됐응께 성냥집!"

황인지 인인지 모를 냄새가 마른 날에 확 퍼졌다. 담배처럼 만 장초에 불을 붙이자 끝에선 불이 날 듯 파르르 타기 시작했다.

"해섭아 얼렁 꺼 임마. 글다 이마빡 태우겄다."
"훅!"
"원매 뜨거운 거."

옆에서 같이 붙이려던 아이들도 모두 바람을 불어서 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숨을 몰아쉬던 해섭이는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나와 나머지 아이들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끝에 일부러 침을 칠하여 조금 늦게 타도록 단단히 준비하고 재차 작업에 들어갔다.

"자 댕겨봐봐. 내가 먼처 할 텨."

성냥을 확 그어서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훕! 컥컥!"
"왜?"
"허벌나게 쓰구만. 콜록콜록."

다른 아이들도 다 붙였다. 쓰디썼던 건 연필로 필기를 했던 까닭과 잉크 냄새 때문이었다. 게다가 종이가 거의 갱지에 가까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문종이를 구해왔으면 좋으련만….

첫 호흡은 매캐한 연기 내음이었지만 차차 안쪽으로 타들어가면서 대마 잎에 불이 다다르자 맨 먼저 풋내가 나고 다음으론 향긋하고 시원한 맛이 났다. 이어 하늘에 느릿느릿 움직이던 구름이 속력을 내서 춤을 추었다.

"야, 이것이 뭐다냐?"
"박하 냄시도 아닌 것이 야릇하구만."
"기분 좋냐?"
"째끔."

지금은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죽고 두 그루만 있는데 그래도 멋집니다. 들판 한 가운데에 동산이 하나 있는데 우리들 놀이터였습니다. 말타기, 숨바꼭질도 하고 잔디 씨도 많이 땄던 아름다운 곳입니다.
지금은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죽고 두 그루만 있는데 그래도 멋집니다. 들판 한 가운데에 동산이 하나 있는데 우리들 놀이터였습니다. 말타기, 숨바꼭질도 하고 잔디 씨도 많이 땄던 아름다운 곳입니다.화순군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마초라니! 멋도 맛도 모르고 형들이 그걸 담배 대신 피워도 된다기에 오로지 호기심 하나로 덤벼든 만남이었다.

"째까 남았응께 한나씩 더 피울 텨?"
"아녀 난 그만 헐란다."
"아따 이왕지사 한나씩 더 말아봐봐."
"어지러워서 안 된당께. 하늘이 빙빙 돌잖녀."

하늘과 내 눈동자가 같이 빨리도 움직였다. 풀섶에 누워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한참이나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려 집으로 가는데 어질어질하여 발걸음을 내딛기 힘들었다.

"읔!"
"찬찬히 가야지 임마. 자 손잡고 올라와."

일곱 명은 세 명, 네 명씩 손을 잡고 가까스로 논두렁을 뿍뿍 기어 나왔다. 담배도 처음인 쥐방울만한 것들이 대마초부터 배웠으니 어찌 감당하겠는가. 생각할수록 웃긴 일이지만 신작로도 없는 삼 굽는 가마터에서 가장 가까운 논엔 집집마다 어김없이 두세 마지기(200평)를 심었던 결과인 걸 어떡하겠는가.

바야흐로 오뉴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산골 들판엔 삼밭이 널려 있었다. 사람 키 세 배나 되는 긴 대마를 베어 대칼(竹刀)로 잎사귀 "착착" 쳐대면 그 향기만은 아직도 오롯이 내 뇌리에 박혀 코피가 터질 듯 밀려온다.

강원도 산골 어드메 거의 야생이 되다시피한 삼이 있을 성싶다. 대마초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겠지만 내 어머니는 늘 늦가을 삼씨를 받아서 약으로 준비해뒀다. 서울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작은 형이 어깨에 신경통이 심해지자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오리와 함께 푹 고아서 먹였다.

이젠 그 대마초 피우던 느낌이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흔히 예술가, 뭔가에 홀딱 빠진 사람들에겐 중독성도 담배보다 못하다고 하니 네덜란드처럼 합법화 하는 게 어떨까. 대중 앞에서 벌벌 떨어본 사람들은 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신들린 듯 토해낼 매개가 필요하리라.

술기운이 조금 남았을 때 마이크를 잡으면 좌중을 편히 대할 마력이 솟아날 것 같지 않던가. 가수라면 목청이 맘껏 터져야 하는데 약간의 알코올과 습관적이지 않는 선에서 대마초는 허용되어도 무방한 건 아닌지 그리도 간절히 '물 좀 주소'라고 외쳤던 가수에게 물어봐야겠다.

내가 보성(寶城)과 곡성군 석곡(石谷), 안동에 가고 싶은 건 삼밭을 맘껏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요즘 내년에 귀향하여 일굴 산채원(山菜園 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기 위해 전국 산야와 모범적인 마을을 찾아다니며 우리 산나물을 배우고 시험 재배를 하느라 바쁘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참살이 보다는 한 지역을 일구고자 사회적 웰빙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간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 일부를 모아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간)을 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요즘 내년에 귀향하여 일굴 산채원(山菜園 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기 위해 전국 산야와 모범적인 마을을 찾아다니며 우리 산나물을 배우고 시험 재배를 하느라 바쁘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참살이 보다는 한 지역을 일구고자 사회적 웰빙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간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 일부를 모아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간)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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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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