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2% 부족한 연애이야기

야마모토 후미오의 <플라나리아>

등록 2005.06.01 23:49수정 2005.06.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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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해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모님에게든, 선생님에게든 삶의 기준을 배운다. 그리고 일률적으로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라는 멍에를 지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얼굴 생김새, 생각, 능력 등이 사람마다 다른데, 모두에게 열정적인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강요가 아닐까.

특히 실제 그들의 입장이 되지 않는 이상 비난을 해서도 값싼 동정을 해서도 안 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그린 작품 <플라나리아>는 보통 사람들의 연애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 잘생기거나 부자이거나 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 속에서는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백마 탄 왕자님이나, 신데렐라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이른바 낙오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연애이야기를 건조하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고 그린 야마모토 후미오.

<연애중독>을 쓴 야마모토 후미오의 또 다른 작품인 이 소설 역시 그녀만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건조하면서도 무심한 문체도 여전하며, 아예 제3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글을 쓰고 있어 남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야마모토는 이야기한다. 인간의 섣부른 판단은 금물, 지나친 공감도 문제라고. 그러면서 사회부적응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내 독자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래서 일까. 이 작품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유명했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바쁘게, 성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야마모토 후미오의 매력은 건조하면서도 때론 밝고, 때론 우울한 색채를 담아 이야기를 잘 풀어 가는 점이다. 이 점을 이번 작품집에서도 느낄 수 있다. <플라나리아>는 프리터, 사회부적응자, 낙오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경쾌하게 포착해 길어올린 단편 5편의 모음집이다.

표제작 '플라나리아'는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루카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그녀는 병을 기회로 그동안 아무 의심 없이 착실히 걸어왔던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만, 몸이 나은 뒤 원래의 궤도로 돌아가지 못한다. 단체생활도, 사회도, 일하는 것도 싫어진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 아무 생각 없는 ‘플라나리아’로 환생하는 것뿐.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 성실한 남자와 어딘가 나사가 빠져 보이는 듯한 여자가 만나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사랑이 있는 내일'. 주인공이라 하기엔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답답한 사람들이 엮어 가는 연애소설이다. 게다가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엔 뭔가 2%가 부족한 결말. 뭔가 사회에서 소수의 자리를 자청하고 나선 사람들답게 사랑도 그렇게 밋밋하게 제3자가 사랑을 하는 걸 구경하고 있는 듯한 연애를 한다.

열심히 일에만 매달리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받은 뒤 무기력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다룬 '네이키드'.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여성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일상을 보낸다. 게다가 아예 삶을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그 상황에 사랑이 찾아온다. 게다가 그 무기력한 여성은 사랑을 눈앞에 두고도 잃어버린다. 그리곤 다시 찾아 나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작품들의 느낌은 이러하다. 무언가 부족한 듯한, 그러면서도 무언가 꽉찬 느낌. 이것이 이 소설을 해주는 단 한 마디의 말이다. 야마모토는 <연애중독>에서도 무언가 부족하지만 꽉찬 느낌을 잘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사랑의 집착 대신 사랑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상반된 이미지 속에서도 여전히 야마모토는 그렇게 사회 부적응자인 소수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한 번쯤 인생의 짐이 무거워 질 때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왠지 모를 공감과 함께 동병상련으로 마음이 조금 치유될 것 같다.

플라나리아 - 제124회 나오키상 수상작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예문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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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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