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장 장례(葬禮)
"명이(明二)야. 만약에… 만약에 이 할애비가 죽거든 저 노스님처럼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맞은 편 암자에 머물고 계시던 용화사의 전대 주지였던 노스님이 돌아가시자 행한 다비식(茶毘式)을 지켜보며 했던 말씀이었다.
"안돼. 죽어도 저렇게 태우면 뜨겁잖아."
"그렇지 않단다. 아주 평안하지. 할아버지는 죽어도 저렇게 재와 연기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고 싶단다. 어디엔가 묻으면 너무 답답해 뛰어 나오고 싶을 거야"
"그래도 죽지 마. 할아버지는 죽으면 안돼."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 것이란다. 이 할애비는 명이가 꼭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단다."
"알았어. 그래도 할아버지는 죽지 마."
할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알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할아버지와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약속을 지켰다. 할아버지의 아들인 무서운 아저씨를 따라 아이는 할아버지의 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기름을 암자 안부터 지붕 위까지 충분히 뿌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의 결정이었다. 살아생전 장군이었으니 본래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러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의 부친은 그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 생각해 한 결정이었다.
그래도 그 간 정리를 보아 대사형께서 호상(護喪)이 되었으나, 부고(訃告)도 없고 반함(飯含)도 하지 않았다. 소렴(小殮)과 대렴(大殮)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으니 도울 일이 없는 것은 다른 사형제와 마찬가지였다. 기껏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암자 앞에 조그만 대(臺)를 세우고 향을 올린 후 지전(紙錢)을 태우는 것이 고작. 자식의 마음으로 어찌 이렇게 허술하게 부친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마음 아프지 않으랴!
하지만 임종(臨終)도 지키지 못했으니 불효자식이라 욕먹어도 할 말이 없고, 실제 살아생전 모신 적도 없으니 효도 한번 해 본적이 없다 해도 변명할 수 없다. 가시는 저승길 깨끗한 옷이라도 장만하여 입혀드려야 함에도 돌아가실 때의 그 모습 그대로 화장(火葬)하려는 것이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생전 그의 부친이 그러기를 바랐다는 것 하나였다.
산천초목이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으니 상복을 대신하고, 곡소리 또한 산기슭을 타고 오는 바람이 먼저 한다. 설전(說奠)이라도 올려야 하나 차가운 날씨에 굳이 얼어붙은 음식을 올린다고 지금껏 소홀한 죄를 씻을 것도 아니다. 봄이라면 들꽃이라도 꺾어 올리기라도 했건만 이 추운 겨울 피는 꽃이 있을 리 없었다.
충분히 그리고 골고루 기름을 뿌리고 나서 돌아가실 때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부친의 전신에도 아이와 함께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불쌍한 양반이었다. 젊어서는 그 큰 꿈을 다 펼치지도 못하고 말년에는 업(嶪)에 겨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죽여 가던 분이었다.
그래도 돌아가시면서 저렇듯 만족한 미소를 지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무엇이 살아있음을 그토록 힘들게 하였는지 모를 자식도 아니었고, 그토록 마음의 짐을 지우고 있던 한 분의 초상과 함께 저승길을 동반하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았다.
부친이 끝까지 남기려했던 천(天) 자의 의미가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 또한 성급히 판단하고 움직일 일이 아니었다. 자식이 택한 길을 좋아하시지 않았지만 나무라지도 않았고, 굳이 같이 있자 하였을 때에도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며 외로운 삶을 택한 분이었다.
조용한 곳에 집을 지어 드리고자 하였으나 굳이 이곳을 택하셨고, 수발이라도 들어 줄 사람 몇을 보내었으나 모두 돌려보내 억지로 곁에 두게 한 종륜과 항인마저 부담스럽게 생각하신 분이었다. 말년에 저잣거리에서 주어 온 아이에게 정을 붙여 가끔 웃는 모습도 뵈었다는 말을 듣고 일찍 일가를 이뤄 아이라도 안겨 드리지 못했음을 한탄도 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친의 시신 위로, 그리고 그 주위로 기름적신 장작들을 쌓기 시작했다. 본래 장작을 쌓아 놓고 그 위에 놓아야 하지만 만족스럽게 돌아가신 부친의 시신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신의 육신 한 조각이라도 남기지 않기를 바라던 부친의 바람을 위해 그는 부친의 시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쌓아 올렸다.
울음은 목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삼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차마 그 모습을 더 이상 뵙기 어려워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으흐흐흐----"
이배를 올릴 때 그의 입에서는 짐승과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호랑이가 우는 듯한 그 울음소리는 암자 밖에서 지전을 태우던 사형제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고 결국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모두 모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의 마음은 그와 다르지 아니하였다. 저 사내의 눈물이란 생각해 본적도 없었지만 아마 지금 흘리는 눈물은 피와 같을 것이었다.
상황이 그랬었다고는 하나 그는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이었다. 상황이 그리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쯤 장군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울음을 토해내더니 삼배를 마쳤다. 그리고는 아이와 함께 뒷걸음으로 하여 암자를 나서고. 향이 올려진 대 전면에 와 무릎을 꿇자 그것이 신호인양 대사형은 화섭자로 불을 붙였다.
화르르륵---- 타--닥--
불은 순식간에 암자의 전체로 번졌다. 날씨가 말끔하게 개였다 하나 쌓여있는 눈으로 인해 제대로 타지 못할까 우려되어 너무 많은 양의 기름을 부은 것도 같았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을 바라보며 그들 모두는 돌아가신 분의 평안을 빌었다.
"할아버지…."
아이의 애끓는 목소리가 텅 빈 산중을 울리고 막상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던 할아버지가 불길에 휩싸이자 아직 철들지 못한 아이에게 심화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아이는 결국 피를 토해내고는 혼절했다. 급히 종륜이 안아들기는 했어도 아이의 얼굴은 마치 분이라도 칠해 놓은 양 창백했다.
그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속내야 더 할 나위 없이 비통에 잠겨 있을 터였다. 들릴 듯 말 듯 입을 꽉 다문 그의 목울대에서 나오는 속울음은 그의 마음을 이내 짐작케 하였다.
- 죽는다는 것이 무어 그리 두려운 일이냐? 사내로 태어나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 다만 형제라고 생각한 사람의 죽음 앞에 비겁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스럽구나. 내 죄를 어찌 씻을 수 있으랴! -
따지듯 부친에게 대들자 부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느냐고 소리쳐도 보았으나 부친은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언제나 바다처럼 넓다고 생각했던 부친의 등은 더 이상 크게 보이지 않았고, 한주먹에 바위를 날려 버린다는 부친의 팔뚝은 이미 말라붙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간청하듯 물었을 때 부친은 또 그렇게 대답했다.
- 누가 이 애비를 죽인다 해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아이가 와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기쁘게 내놓을 수 있다. 너는 말리지도 복수할 생각도 하지 말거라. 이 애비 가슴 속의 말은 오직 그 아이만이 들을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애비가 죽기 전에 그 아이가 와 주었으면 하는 것 뿐. -
불이 거세지며 한쪽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그에 따라 지붕이 무너져 내리자 불꽃들이 그가 있는 주위로 튀어 내렸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생전의 부친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대사형이 사형제들에게 조용히 눈짓을 했다. 그들은 타오르는 암자를 향해 조용히 삼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떠나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예의고 자신의 형제에 대한 끊임없는 애착이었다. 그들이 걸어 온 길과 다른 분이었지만 훌륭한 분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삼배를 마친 대사형은 다시 고개 짓을 했다. 내려가자는 의미였다. 그는 혼자 있고 싶을 것이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그의 부친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터였다. 형제의 아픔을 공유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그 조용함만큼은 지켜주어야 했다.
대사형이 발걸음을 옮기자 등자후와 전월헌, 그리고 당새아가 운령을 부축하며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 종륜과 항인이 그 뒤를 따랐다. 소리쳐 울지 못하고 간간이 흘러 나오는 그의 속울음 소리가 그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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