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밀고가라! 저 만한 병력쯤이야 우리 병사들이 능히 밟고 올라설 수 있다!”
호서아는 말에 올라 칼을 뽑아 들고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내지 말라! 밀고 올라가라!”
조선 진영을 돌파하는 첫 영광을 만주팔기 소속의 기병에게 넘겨주고 싶었던 호서아였지만 초반에 큰 피해를 입었기에 이들을 뒤로 물린 채 한인병사와 몽고병을 쑤셔 넣듯이 투입하였다. 이 바람에 청의 부대는 더욱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활을 쏘아라! 화전을 쏘아라!”
포수들의 사격이 끝나자 궁수들이 앞으로 나와 활을 쏘아대었고 청의 병사들은 제대로 응사도 하지 못한 채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또 한 번의 화승총 일제 사격이 다섯 차례로 나뉘어 울려 퍼진 후 홍명구는 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었다.
“모두 칼과 창을 들어라! 적을 무찔러라!”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조선 병사들이 등나무 방패를 든 팽배수들을 앞세워 육박전을 벌이기 위해 뛰어 나왔다. 그저 앞으로 나갈 생각만 하고 있던 청의 병사들은 뜻밖에 조선군이 돌진해 오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뒤로 물러섰고 그 바람에 사람이 깔려 죽는 일도 속출했다.
“뭣들 하느냐! 적을 치란 말이다!”
호서아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한번 무너진 청의 진영은 수습될 줄을 몰랐다. 말 위에서 갈팡질팡하던 호서아는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말에 맞아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친구인 소대여가 급히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나왔지만 그 앞을 윤계남이 칼을 들고서는 가로막고 섰다.
“내 놈이 대장이렷다!”
단 한차례의 칼질에 소대여는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절명하고 말았다. 호서아는 비틀거리며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칼을 빼어들었지만 이번에는 장판수가 그를 막아섰다.
“니래 상대할 사람은 여기 있네!”
장판수의 칼이 아래에서 위로 번뜩이자 호서아는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 명의 장수를 잃은 청나라 병사들은 대혼란 상태에서 조선군의 창칼을 피하기에 바빴다. 정신없이 도주하던 그들의 앞에 이제 막 뒤이어 도착한 마부대가 이끄는 기병이 앞을 막아섰다.
“도주하는 놈들은 만주인, 몽고인, 한인 가릴 것 없이 짓밟아 버려라!”
마부대의 호령에 도주하던 병사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네 이놈들! 대체 뭣 하는 것이냐! 겨우 한줌도 안 되는 조선군에 쫓겨 가다니!”
겨우 난병들 사이로 뛰쳐나온 지휘관 하나가 나서 손을 올리며 사정을 얘기했다.
“하오나 적이 워낙 강성하고 장수들이 죽임을 당하여….”
“닥쳐라!”
마부대의 칼이 번뜩이더니 지휘관의 팔이 툭 하고 땅에 떨어졌다. 청의 병사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마부대를 바라보았다.
“진을 정돈하라! 조선군을 다시 언덕위로 밀어 붙여라!”
원채 수가 많은 청의 병사들이다 보니 앞 쪽이 혼란스럽다 해도 뒤쪽 열은 곧 정돈될 수 있었다. 난병들을 치고 베던 조선군은 곧 청의 병사들이 점점 강하게 저항하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뒤쪽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다시 불러들여라!”
홍명구의 말에 북소리와 퇴각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지만 조선군은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앞쪽에서 조여드는 청군의 압박이 만만치 않아서 자칫 등을 보였다가는 진열이 크게 무너질 수 있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장판수가 윤계남에게 소리쳤다.
“내가 막을 테니 자네가 먼저 퇴각하게! 날래!”
“자네가 먼저 퇴각하게!”
“여기서 기 싸움 하자는 거네? 자네 병사들이 그래도 약간 후방에 치우쳐 있으니 내 말을 들으라우!”
윤계남은 지체 없이 병사들을 서서히 뒤로 물렸고 장판수가 거느린 병사들이 재빨리 그 틈을 메워 청병들을 막아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