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또 불심검문에 걸리는 거 아냐?"

외모 때문에 불심검문을 당하다

등록 2005.06.04 13:06수정 2005.06.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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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혹시 불심검문 당해본 경험 있으세요? 있다고요. 기분이 어땠어요? 몹시 불쾌했다고요? 맞아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생각해보세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나만 딱 잡힐 때 기분이 좋겠어요. 엉망이지요. 그 황당함은 또 어떻고요. 오죽했으면 제가 인간적 굴욕감까지 느낀다고 했겠습니까.


1998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입니다. 아내가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세 살짜리 큰놈이 아내 손을 잡고 있습니다. 아내가 아랫배를 쓸어내립니다. 배가 볼록합니다. 둘째를 가졌는데 7개월째입니다. 저는 아내더라 그만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는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봅니다. 아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저는 아내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여보, 이번에는 기필코 합격하겠소!”

저는 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법전부터 펼칩니다. 서울까지는 4시간 남짓 걸립니다. 그 시간이면 민사법과 형사법을 한번 정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민법부터 펼칩니다.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맣습니다. 저는 씩 한번 웃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시험 두 달을 남기고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합격을 자신했습니다.

버스가 김천을 지나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서울입니다. 제가 무척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짐칸에서 가방을 꺼냈습니다. 가방이 묵직합니다. 책을 너무 많이 가져왔나 봅니다. 그래도 책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저는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멨습니다. 점퍼에 작업복 바지 차림입니다. 시험에 방해가 될까봐 일부러 간편하게 입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겉모습이 말이 아닙니다. 추레한 건 고사하고 얼굴마저 볼썽사납습니다. 머리도 길고, 수염이 까칠까칠 솟은 것이 흡사 산적 같습니다.


저는 승강장을 빠져나옵니다. 사람들이 많기도 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저 같은 몰골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뭡니까. 이동파출소가 제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가슴이 뜨끔합니다. 불심검문에 걸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공연히 불안합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거 또 불심검문에 걸리는 거 아냐?'


불행히도 제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경찰관이 저를 부릅니다. 눈매가 날카롭습니다. 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경찰관 앞에 섰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한 듯 저를 바라봅니다. 경찰관이 제게 신분증을 요구합니다. 저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습니다. 지갑을 열고 주민등록증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당연히 있어야 할 주민등록증이 없습니다. 호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이지 그 황당함이란 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경찰관이 제 팔을 잡습니다. 이동파출소까지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초소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기웃거립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경찰관이 제게 가방을 열어도 좋으냐고 묻습니다.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가방을 열어봤자 법률서적밖에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경찰관이 가방을 열었습니다. 순간 경찰관의 표정이 변합니다. 제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시공부 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 신분을 밝혔습니다.

“저는 00법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승진시험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는 길입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옷차림이 너무 추레하십니다. 전화로 신원을 확인해도 좋겠습니까?”
“좋습니다.”

저는 전화번호를 가리켜주었습니다. 경찰관이 전화를 합니다. 몇 번 “예, 예” 하더니 전화를 끊습니다. 경찰관이 미안하다며 제게 거수경례를 합니다. 저는 괜찮다며 이동파출소를 나섰습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간 씁쓸한 게 아니었습니다.

a 웃고 있는 제 모습, 어때요?

웃고 있는 제 모습, 어때요? ⓒ 박희우

물론 그 날만 그렇게 불심검문을 당한 건 아닙니다. 버스 안에서도, 기차에서도, 심지어 배를 타고 가다가도 불심검문을 당했습니다. 제 인상이 험악하냐고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얼굴 한번 보시겠어요? 웃고 있는 모습 어때요? 마음씨 착한 이웃집 아저씨 같지 않으세요? 그런데도 저는 매번 불심검문을 당하곤 했답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저는 외모에 퍽 신경을 쓰고 있답니다. 물론 신분증도 확실히 챙기지요. 그럼 승진시험은 합격했냐고요? 하하, 죄송합니다. 떨어졌습니다. 다음 해인 1999년에 합격했답니다. 물론 그때는 불심검문에도 걸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합격했을 거라고요? 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단속의 추억>에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단속의 추억>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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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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