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사진도 맘대로 못 찍는다

<호주는 지금> 아동 성범죄 방지책... 가족증명서 제출해야 촬영 허가

등록 2005.06.04 20:28수정 2005.06.0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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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서양 사람들은 어린 아이라도 머리를 쓰다듬거나 엉덩이를 두드리는 등 몸을 만지며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일은 삼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잘 아는 동네 꼬마가 귀엽다고 무심코 신체접촉을 했다가는 아동성추행으로 오해를 받거나 부모로부터 언짢은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10년 넘게 호주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그런 경우를 접하지는 않았지만, 호주인들은 우리처럼 아이들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머리나 볼 등을 쓰다듬으면서 칭찬이나 관심을 드러내는 일은 좀체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여린 새순 같고 갓 깬 병아리 같은 어린 아이들이지만 초등학생들을 그저 귀엽게만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연한 의심을 받고 싶지 않다면 처음부터 아예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추행이나 성폭행, 포르노물 제작, 유통 등 이른바 호주의 아동 성범죄는 사실상 위험수위에 놓여있다. 특히 아동 포르노물은 지속적인 단속과 검거에도 불구하고 뿌리가 뽑히지 않는 상황이다.

호주의 아동 성추행 및 어린 아이들을 등장시킨 포르노물 제작은 초등학생, 심지어 5. 6세 유아들을 희생 대상으로 삼을 만큼 병적으로 심각하며, 두 살 난 유아들까지 희생이 되고 있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해 말부터 지금까지 연방경찰이 일제 단속 및 급습 형식의 수사를 벌이며 '아동 포르노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우려했던 대로 일반 가정에까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심각성만을 확인한 단계이다. 지난 해 말 압수된 아동 포르노 화상은 전국적으로 2백만 개가 넘고, 이 같은 화상이 저장된 컴퓨터는 400여대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다 충격적인 것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아동 포르노물의 주 검색자가 교사와 유치원 원장, 의사 등 아동들을 보호해야 할 처지에 있는 직업군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성직자나 경찰관, 간부급 군인, 공무원 등도 주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파장이 더욱 크다.

지난 해 말 일제 소탕을 벌인 결과 아동 포르노물 소지자 2백여 명이 그 자리에서 연행되고, 제작과 유통에 연루된 나머지 7백여 명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이 파악한 용의자 가운데는 무려 3만 개 이상의 화상을 저장하고 유통시킨 10대 청소년이 포함되기도 해 경찰 발표를 지켜본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컴퓨터에 아동 포르노물을 저장하고 있던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은 사회적 망신과 처벌이 두려워 수사망이 압축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에 앞서 아동 포르노물에 중독된 한 노인이 급기야는 손녀와 손녀의 친구가 샤워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몰래 담았다가 경찰에 적발된 일도 있다.

이처럼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 강화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는 아동 성추행을 막기 위해 호주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자구책 마련에 고심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전국 1800개 학교에서는 학교 운동장이나 학내 행사가 열리는 공공장소에서 재학생 '아무개'의 부모임을 증명하는 가족 관계가 명시된 서류를 사전에 제출하지 않는 한 일체의 사진촬영을 금지시킬 것에 합의했다.


육상경기나 수영, 풋볼, 네트볼, 하키 등 다양한 스포츠 행사가 학교별로 1년에 수차례 열리는데다, 많게는 3~4천명의 관중이 몰리는 운동장에서 수없이 찍혀진 아동들의 사진 일부가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아동 성추행 및 포르노물 제작 등 미성년 성범죄에 악용되는 출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우려다.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일수록 아이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사는 재미이자 부모 된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특히 마냥 응석을 부리던 아이가 학교에서는 의젓하게 제 몫을 하는 것을 볼 때면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에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되곤 한다. 더구나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학교마다 체육대회뿐 아니라 작품 전시회, 연극 발표회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잇달아 열린다.

자녀들의 특별활동에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부모들의 학교 나들이가 부쩍 늘어날 때이지만, 이제는 호주의 학부모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학교 측의 사전허가 없이는 자녀들의 사진을 맘대로 찍을 수 없게 됐다. 합의를 한 학교 측은 당국의 협조를 얻어 아동들의 사진촬영금지를 바닷가나 유원지, 휴양지로까지 확대할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현재는 일반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서만 적용할 뿐, 카메라 폰에 대한 규제는 제외하고 있어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난과 함께 그 같은 미봉책이 실효를 거둘지 미심쩍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덧붙이는 글 | 교총 발행 <한국교육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교총 발행 <한국교육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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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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