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게 끝난 나무 우듬지 산책

[호주 골드 코스트 여행기 4] 래밍턴 국립공원의 오레일리 고원에서

등록 2005.06.09 07:05수정 2005.06.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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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에서 테마 파크 세 곳이 딸아이 동윤이의 선택이었다면 그 사이사이에 박아놓은 이틀간의 자연 탐사 일정은 나의 선택이었다. 동윤이의 선택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듯이 나의 선택 역시 절반의 성공이었다. 먼저 실패한 곳부터 말해보자.

'씨 월드'를 다녀온 다음 날인 4월 25일 월요일,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서 이곳 사람들이 '힌터랜드(Hinterland)'라고 부르는 내륙 쪽을 향해 출발했다. 목적지는 래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nal Park)내에 있는 '오레일리 고원(O'Reilly's Plateau)' 거기서 그 유명하다는 나무 우듬지 산책(treetop walk)을 즐기고 올 생각이었다.


a 오레일리 고원에 있는 나무 우듬지 산책길에서 포즈를 취한 딸아이

오레일리 고원에 있는 나무 우듬지 산책길에서 포즈를 취한 딸아이 ⓒ 정철용

국립공원 입구의 마을인 카눙그라(Canungra)까지는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길이 그 마을을 지나자마자 구절양장 고갯길이 되었다. 그 길을 40여분 동안 힘겹게 운전하고 나니 마침내 꼭대기에 올랐는지 가파르게 오르기만 하던 길이 드디어 순해졌다. 나는 한숨을 놓았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약 20분 정도는 대낮인데도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도로. 익숙한 길이었다면 분명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을 그 숲길을 초행 운전자인 나는 부릅뜬 눈에 전조등을 켠 채 잔뜩 긴장하고 달렸다.

11시쯤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런 오지에 마련된 주차장치고는 제법 넓은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월요일인데 웬 인파람? 아참, 그렇지, 오늘이 안작데이(ANZAC Day :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날로서,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똑같이 기념하는 공휴일이다)지.

다른 곳으로 놀러가지 않고 하필이면 이곳으로 몰려온 사람들을 원망하며 주차장을 서너 바퀴 돌았지만 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 빈 주차공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주차장 아래 쪽 도로로 내려서니 갓길에 주차해놓은 차량이 여러 대 눈에 띄었다. 나도 그들처럼 갓길에 주차를 하고 드디어 차에서 해방!

'부용 트랙'이라는 팻말이 붙은 울창한 숲길을 이젠 차를 버리고 걸어서 가노라니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확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곳도 그 전날 갔던 '씨 월드' 못지 않게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숲 속 길가에 여러 그루 서 있는, 밑동 부근이 기기묘묘한 부용나무를 마음껏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정은 잔뜩 기대를 하고 갔던 '나무 우듬지 산책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키 큰 나무들의 우듬지 사이에 나무판으로 된 현수교 9개를 놓아서 서로 연결한 이 이색적인 산책길은 다리에 걸리는 하중이 5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뒷사람이 의식되어 다리 위에서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떠밀려서 걸어나오다 보니 그 우듬지 산책은 고작 10분에 불과했고, 동윤이와 아내의 사진 한두 장 찍어주기도 바쁠 지경이었다.


a 나무 우듬지 산책길은 나무들 사이에 설치한 현수교를 연결한 것이다

나무 우듬지 산책길은 나무들 사이에 설치한 현수교를 연결한 것이다 ⓒ 정철용

호주에서 열대 우림 우듬지의 생태를 연구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생물학자 마거릿 D. 로우먼이 쓴 <나무 위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나는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나무 우듬지 산책'에 있을 거라며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와서 그 위를 걸어보니 참 별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120m에 불과한 산책길의 길이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나무들의 우듬지 사이를 걸어가면서도 새나 곤충은커녕 나무 잎사귀 하나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딸아이는 "에게, 이게 다야?"하고 내게 반문했고 아내는 "사기다!"라는 단 한 마디로 자신의 느낌을 토로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책을 다시 펼쳐보니, 마거릿은 1985년 오레일리 가족이 설치한 이 우듬지 통로 덕택에 자신의 연구를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이를 아주 획기적인 창안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생태학자가 아니라 관광객으로 그 곳을 다녀와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탓인지, '나무 우듬지 산책'은 실망스러운 기억으로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곳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을 터이다. 규모의 웅장함과 자극의 강렬함을 항상 따지는 스펙터클에 내 눈과 마음 역시 많이 물들어 있음을 아프게 확인한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써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가 시간 선택을 잘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의 한적한 시간이었다면 분명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들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만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지는군요. 오레일리 고원에는 숙박 시설도 있으니 자연을 좋아하는 이라면 하루쯤 머무르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을 써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가 시간 선택을 잘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의 한적한 시간이었다면 분명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들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만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지는군요. 오레일리 고원에는 숙박 시설도 있으니 자연을 좋아하는 이라면 하루쯤 머무르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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