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코스트에 '골드'는 없다? 아니 있다!

[호주 골드 코스트 여행기 ①] '인공 낙원' 골드 코스트

등록 2005.06.01 06:46수정 2005.06.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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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코스트(Gold Coast)는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브리즈번(Brisbane)의 남쪽 해안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 소문난 휴양지이다. 혹자는 그 명칭에서 서구 제국주의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서아프리카 기니아만의 '황금해안'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호주의 골드 코스트에 금광은 없다. 호주의 골드 코스트는, 남태평양의 푸른 파도를 거칠 것 없이 온몸으로 받고 있는, 40km가 넘게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고운 금빛 모래사장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호주의 골드 코스트에서 '골드'는 광산에서 캐낸 값비싼 금(金)이 아니라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지고 있는 바닷가 모래밭에 무수히 널려 있는 잘디잔 모래[沙]알들인 셈이다.

하지만 시선을 바다에서 내륙 쪽으로 돌리면 생각이 다시 바뀌게 된다. 해안선을 따라 마치 바닷가의 방풍림처럼 늘어서 있는 초현대식의 숱한 고층 건물들은 골드 코스트가 금(金), 즉 돈으로 세워진 휴양지임을 여실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있는 곳이기도 했던 골드 코스트의 중심지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는 하루 24시간 내내 돈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파도소리보다도 훨씬 더 요란스러워서, 그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쇼퍼스 파라다이스(Shoppers Paradise)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쇼핑센터와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고층 아파트가 밀집한 그 지역은 인파로 흥청대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거친 대자연의 생명력이나 일출이나 일몰 전후의 고요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 압도적인 자본의 풍경 때문에 나의 아침 바닷가 산책은 단지 하루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사람마저도 그런 풍경을 닮는 것인가. 단 하루뿐이었던 아침 바닷가 산책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아무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려고 해도, 가까이 마주치는 순간 외면해버리는 그들의 시선 앞에서, 함께 산책 나온 자신의 개나 동행에게만 몰두하고 있는 그들의 무관심 앞에서, 헤드폰을 끼고 달리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그들의 단호함 앞에서, 나는 움츠러들었다.


골드 코스트에서는 비수기에도 유동인구의 10% 정도가 관광객이며 휴가철에는 이 수치가 훨씬 더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따라서 아침 바닷가 산책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곳 주민들이 아니라 나처럼 뜨내기 여행객이었을 게라고 애써 위안을 삼는다 해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골드 코스트에서의 아침 산책은 내게는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런 기분으로 바라보는 바다가 어떻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는가. 섬은커녕 갯바위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와 짙푸른 방풍림이 아니라 온통 회색의 볼품없는 고층 건물로 포위된 모래사장이 참으로 밋밋하게만 여겨졌다.


떠나오기 전, 이번 여행이 아름다운 자연도, 유서 깊은 문화유산도,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도 거의 없는 '인공 낙원'에서의 1주일이 될 것이라고 미리 짐작은 했어도, 뜻밖의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밤늦게 도착해서 보지 못한 이러한 풍경들을 여행 둘째 날 미리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찾으러 가면서 보았을 때, 나는 어떻게 이 곳에서 1주일을 견디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러나 이런 나와는 달리 딸아이 동윤이는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서 듣기만 했던 골드 코스트의 테마 파크들을 세 군데나 다녀올 기대에 들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글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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