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새들이 몰려들어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꽃이 피어난 듯 하다.정철용
사람들 접시로 몰려든 잉꼬들
동물원 직원들이 둘러 선 사람들에게 은색 접시들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딸아이 동윤이도 잽싸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접시 하나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서 직원들은 주전자를 들고 다니면서 금속통에서 덜은 쌀뜨물 같은 새의 먹이를 사람들의 접시에다 부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바람개비 모양의 철골 구조물 두 개에도 새의 먹이를 가득 담은 접시 몇 개를 올려놓았다.
과연 잉꼬들이 날아들 것인가.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은 단 몇 초가 지나기 전에 탄성이 되어 터져 나왔다. 잉꼬 몇 마리가 그 접시들 위에 날아들고, 그 무게 때문에 철골 구조물이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옆에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나무에도 잉꼬들이 수십 마리 몰려들어 마치 단풍 곱게 든 가을 나뭇잎처럼 보였다. 그 주위 나무들에는 족히 수백 마리가 넘어 보이는 잉꼬들이 앉아 마치 꽃이 핀 것 같고 주변 하늘에도 소식을 듣고 몰려드는 새들로 새까맸다.
눈치만 보고 있던 수백 마리의 그 새들 역시 오래지 않아 광장으로 내려와 앙상한 나뭇가지에, 다시 철골 바람개비에, 그리고 마침내는 사람들이 들고 서 있는 접시 위에까지 날아가 앉았다. 얼굴 가득 웃음을 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야생의 진홍잉꼬들은 전혀 두려움 없이 접시 위의 먹이를 홀짝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탄성과 웃음소리. 비록 먹이를 매개로 한 새와 인간과의 만남이었지만, 그 모습은 감동적인 데가 있었다. 천진난만한 자연의 친구였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사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동윤이가 서 있는 쪽으로는 어쩐 일인지 좀처럼 잉꼬들이 날아들지 않았다. 동윤이는 부러운 눈으로 반대편 쪽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접시에도 잉꼬들이 날아들기를 안타깝게 기다렸다. 그렇게 아무 소득도 없이 벌받는 자세로 30분 정도를 보냈을까. 잉꼬들이 몰려들어 먹이 먹이기에 성공한 한 떼의 사람들이 무리에서 빠져나가자, 참지 못한 동윤이는 마침내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새들은 이미 배가 많이 불렀는지 좀처럼 날아들 기미가 안 보였다. 거의 울상이 다 된 동윤이의 얼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와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윤이에게 그만 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딸아이는 새들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을 평생토록 간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