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매개자, 죽은 자와 산자의 만남

[이철영의 전라도 기행 43] 진도 씻김굿(국가지정문화재 72호)

등록 2005.06.10 17:52수정 2005.06.1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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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도 씻김굿에서 '고풀이' 장면. 헝겁에 일곱 개의 매듭을 지은 '고'는 망자의 한을 상징하는데, 이것을 흔들어 풀어냄으로써 망자의 한을 풀어준다.

진도 씻김굿에서 '고풀이' 장면. 헝겁에 일곱 개의 매듭을 지은 '고'는 망자의 한을 상징하는데, 이것을 흔들어 풀어냄으로써 망자의 한을 풀어준다. ⓒ 이철영

어릴 적,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는 동네의 이곳저곳을 지나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천천히 흔들리며 나아가는 울긋불긋한 몸체는 희뿌연 아침 햇살의 풍경 속에서 아득하기만 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누가 목을 죄는 듯 답답했다. 상여꾼들의 소리가 무겁게, 무겁게 가라앉으며 내 몸을 땅 속으로 잡아끄는 것만 같았다.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러다 한 눈 판 사이, 길 위의 상여는 가는 소리의 꼬리만 남기고는 희뿌연 대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누가 죽었는지도 몰랐다.

아, 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슬픔과 공포에 나는 엄마의 치마폭을 붙잡고 한참 울어야 했다. 인생은 항상 길 위에 있으며 항상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 막막함 이었다. 그 길의 끝에 저승이라 불리는 것이 있음을 안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a 송순단 씨가진도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진도씻김굿을 재현하고 있다.

송순단 씨가진도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진도씻김굿을 재현하고 있다. ⓒ 이철영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고개 마루에서 우리는 경계인이 되어 머뭇거린다. 태어나 아이가 어른이 되고, 결혼하여 늙고, 죽어 제삿밥을 먹게 되기까지 그 모든 문턱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길 주저하게 마련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매우 선명한 만큼 또한 모호하다. 극명한 경계에서 살아 있는 자는 죽은 자를, 죽은 자는 산 자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만든 업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그곳에서 의지 할 곳을 찾지 못하여 고통 받는다. 부질없는 인연과 한을 함께 나눈 때문이다. 그것을 씻어 주지 못하면 죽은 자는 영원히 산 자의 주변을 배회한다.

전라도의 씻김굿은 그런 원과 한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려 풀어내는 마당이다. 굿은 초상날 시신 옆에서 치르는 ‘곽머리 씻김굿’,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벌이는 ‘날받이 씻김굿’, 물에 빠져 죽은 이의 원한을 풀어주는 ‘넋 건지기굿’, 결혼 못하고 죽은 이들을 혼인시켜 주는 ‘저승 혼삿굿’ 등 여러 형태가 있다.

a 당골(무당)이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지전춤'을 추고 있다. 지전(紙錢)은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노잣돈이다.

당골(무당)이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지전춤'을 추고 있다. 지전(紙錢)은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노잣돈이다. ⓒ 이철영

그러나 보통의 차례는 먼저 조왕신(부엌신)께 고한 다음 조상신께 고하며, 굿청의 부정함을 씻어내고, 떠도는 혼을 불러들이는 혼맞이굿을 행한다. ‘초가망석굿’에서는 망자와 친구, 조상님들을 청하고 ‘손님굿’에서는 마마신(천연두이자 손님이라고 함)이나 생전의 친구들을 불러 들여 대접한다.

다음엔 제석님께 고하는 ‘제석굿’을 행하고 ‘고풀이’로 이어진다. 고풀이는 망자를 상징하는 기둥에 무명 한 끝으로 쌀 담은 주발을 묶어 맨 후 나머지 헝겊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든다. ‘고’는 망자의 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흔들어 풀어냄으로써 한을 풀어내고 산 자들은 함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a 씻김굿의 악사는 남자들이 한다.

씻김굿의 악사는 남자들이 한다. ⓒ 이철영

이어서 가장 중요한 ‘씻김’이 행해지는데 먼저 ‘영돈말이’를 한다. 영돈은 곧 망자의 몸으로, 죽은 이의 옷가지를 짚자리에 둘둘 만 후 일곱 마디를 세워 묶는다. 그 위에 넋과 돈을 담은 주발을 올리고 솥뚜껑을 덮는다. 굿을 주관하는 당골(무당)은 쑥물과 향물로 ‘영돈’을 씻고 신 칼로 솥뚜껑을 두드린다. 이것은 저승문을 여는 과정인데 ‘영돈’을 붙잡고 있던 가족들은 울음바다를 이룬다.

그리고는 독 안의 물위에 띠워 둔 바가지 위에 넋이 담긴 주발을 얹는다. 바가지는 배가 되고 독 안의 물은 강이 되어 넋을 싣고 저승으로 떠난다. 마지막으로는 다리를 의미하는 무명천을 팽팽히 길게 늘여 놓고 망자가 저승으로 갈 길을 닦는 ‘길닦음(질닦음)’을 한다. 당골네는 넋과 지전을 담은 넋상자(당석)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신칼을 들고 노래하며, 조금씩 움직여 길을 닦는다. 망자는 가족에게 하직하고 저승고개를 넘는다. 이후 당골은 가족들을 모두 발복, 축원해 주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신명나는 춤판을 벌인다.


a 길닦음.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음.

길닦음.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음. ⓒ 이철영

씻김굿의 원형은 신이 내려 무당이 된 이들(강신무, 降神巫)이 아닌 대대로 무업(巫業)을 전수해 온 세습무(世襲巫)들이 지켜왔다. 그러나 오랜 사회적 천대 속에서 이들은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소위 ‘선무당’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귀신들과 가까운 그들에게 도움 받으면서도 오히려 신과 가깝다는 이유로 보통의 삶에서 그들을 추방해 버렸다. 그들의 노래에서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치밀고 올라오는 슬픔의 덩어리, 한의 응어리가 만져진다.

당골은 그들 스스로에게 응축된 한과 슬픔으로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진 공동체의 훌륭한 영적 치료사였다. 진도에서는 사정만 된다면 아직도 대부분의 상가(喪家)에서 씻김굿을 행한다.

a 영돈말이 뒤에 하는 이슬털기. 망자가 깨끗이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깨끗이 씻기는 의례. 망자의 신체를 상징하는 기둥을 일곱마디로 묶고(영돈말이) 그 위에 주발을 얻고 솥뚜껑을 덮었다. 당골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리는데 그것은 저승문을 여는 행위로 보통의 가족들은 이 과정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한다고 한다.

영돈말이 뒤에 하는 이슬털기. 망자가 깨끗이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깨끗이 씻기는 의례. 망자의 신체를 상징하는 기둥을 일곱마디로 묶고(영돈말이) 그 위에 주발을 얻고 솥뚜껑을 덮었다. 당골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리는데 그것은 저승문을 여는 행위로 보통의 가족들은 이 과정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한다고 한다. ⓒ 이철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사보 6월 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oil'사보 6월 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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