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선이 '싹쓸이'한 텅 빈 바다

[르포] 한숨만 남은 대청도 어민들...군경과의 갈등으로 뒤숭숭한 분위기

등록 2005.06.11 17:58수정 2005.06.1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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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도의 선진동 포구.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도의 선진동 포구. ⓒ 김덕련

"중국 어선 때문에 어획량이 줄어 배 유지비도 안 나온다. 빚이 늘어 배와 집이 가압류된 사람도 많다. 배를 내놔도 살 사람이 없다. 잡을 고기가 없는데 누가 배를 사겠나."(어민 김봉률(58)씨)

"갈등의 근본 원인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인 만큼 군대와 주민 사이에서 빚어진 불상사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이 문제를 풀어갈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70대 주민 김모씨)


해군 부대 내에서 발생한 주민과 군인 간의 충돌로 세간의 관심을 모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도. 10일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인천에서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대청도는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포구에는 적지 않은 어민들이 출항하지 않고 모여 있었다. 어민들은 "경찰에서 조사받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만 출항하는 것도 좀 그렇고 요즘은 중국 어선 때문에 잡을 고기도 별로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인천해양경찰서 대청지서에 따르면 대청도의 어선 89척 중 7일 밤 해군과의 충돌 사건 이후 조업을 위해 출항한 어선은 8일 8척, 10일 4척이며 9일에는 한 척도 출항하지 않았다.

포구에서는 이번 갈등과 관련해 해군 등을 성토하는 어민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해군이 지난 3월 21일과 23일에 조업구역을 이탈한 어선을 적발해 해경에 이첩한 이래 누적된 감정이 적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 앙금을 씻고 군경과 다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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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어획량, 3년 전의 10분의 1 수준... "중국 배 싹쓸이에 잡을 게 없다"

이처럼 군경과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한 의견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번 갈등이 근본적으로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 때문에 어족 자원이 고갈돼 어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어민들은 수온에 따라 이동하는 꽃게 떼가 이곳 어장에 내려오기 전에 중국 어선이 저인망을 활용한 쌍끌이식 조업으로 다 걷어간다고 입을 모았다.

어민 손규진(60)씨는 "중국 어선 때문에 바다에 나가도 잡을 게 없다"며 "요즘은 중국 배들이 우리 바다에서 잡은 꽃게가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동호(46)씨도 "예전엔 꽃게철이 되면 육지에서도 뱃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조업 자체가 적다 보니 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며 손씨의 말에 공감했다.


"한 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꽃게를 비롯해 이 지역의 어획량은 최근 급감했다. 인천 지역 꽃게 어획량은 2002년 1만4281t, 2003년 6547t, 2004년 1390t으로 2년 사이에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옹진수협에 출하되는 물량도 줄고 경매 횟수도 확연히 줄어든 상태다.

늘어나는 빚, 가압류되는 배와 집... "배 내놔도 살 사람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민들은 빚더미에 몰리게 됐다. 그 전에도 빚이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극성을 부리면서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a 대청도 어민 김봉률(58)씨. 김씨는 "이 지역 어장은 우리 민족의 것이니 북쪽 배가 조업한다면 아무 상관 없지만 중국 어선이 올 곳은 아니지 않느냐"고 개탄했다. "월선 때문에 조사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한 김씨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끝내 눈물을 보였다.

대청도 어민 김봉률(58)씨. 김씨는 "이 지역 어장은 우리 민족의 것이니 북쪽 배가 조업한다면 아무 상관 없지만 중국 어선이 올 곳은 아니지 않느냐"고 개탄했다. "월선 때문에 조사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한 김씨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끝내 눈물을 보였다. ⓒ 김덕련

김봉률(58)씨는 "중국 배가 들어오기 전에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최근엔 수입이 형편없이 줄어들어 배를 유지할 돈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기름값, 인건비, 그물수선비 등 조업을 위한 최소 비용을 충당하기도 어려워 빚을 졌으나 어획량이 계속 줄면서 빚은 점점 늘어만 간다고 어민들은 입을 모았다.

한 어민은 "몇 년 사이에 빚이 1억 5천만원으로 늘어났다"며 "수협에서 대출한 돈을 못 갚아 정부 융자를 받고 그마저 못 갚아 다른 데서도 빌리다 보니 이젠 연체 이자 감당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수천만원대의 빚을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다른 어민은 "나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며 심한 경우 빚이 4억~5억원대로 불어난 사람도 있다"고 말한 뒤 "빚 때문에 배와 집이 가압류된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재산 목록 1호인 배를 팔려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어민들은 말한다. 조업이 침체되고 있기 때문에 배를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을 전하는 이들은 어민 뿐만이 아니었다.

수협의 한 관계자는 "대개 1억원 이상씩 빚지고 있어 배를 팔겠다고 나서지만 공매에 붙여도 계속 유찰되는 경우가 많다"며 "배가 없는 젊은층 중엔 섬을 떠나는 이들이 많지만 배를 못 팔고 있는 선주들은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단속 강화, 구역 확대 요구... 어민과 군경의 엇갈리는 상황 인식

몇몇 어민들은 "이처럼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로한계선을 넘어 조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오죽하면 최전방 지역 어민들이 군 부대에 항의하러 갔겠느냐"고 호소했다.

한 어민은 "3월에 월선한 어민들은 우리 중에서도 특히 빚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전한 뒤 "조업 구역은 넓어지지 않고 중국 어선은 계속 극성을 부리는 상황에서 달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이 지역 어민들은 그동안 섬 동쪽으로 1마일 더 조업 구역을 넓혀달라고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역 확장 요구는 중국 어선들이 출현하기 전부터 제기됐지만 최근 더 절실해졌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조업 구역과 관련해 상당수 어민들은 해군과 해경을 원망섞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어민은 "군경은 중국 배들은 제대로 못 막으면서 우리만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며 "중국 배들은 NLL 뿐 아니라 그보다 아래에 있는 우리의 어로한계선까지 넘어와 조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해군 및 해경 관계자들은 "어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레이더 등을 통해 배의 위치를 정확히 감시하다가 중국 어선이 NLL을 침범하면 즉시 출동하고 있다"며 "중국 어선이 야간에 조명을 켜면 육안으로는 실제보다 훨씬 가깝게 보이기 때문에 어민들이 오해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까운 곳에서 어민들의 어려움을 지켜보기에 안타까운 심정이 들 때가 많아 최대한 배려하려 노력하지만 법과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에 어민들을 막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선 '감축'이라도 해 달라"

어민들은 중국 어선 단속 강화, 조업 구역 확대와 함께 '어선 감축'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획량이 계속 줄어들고 어장이 넓어질 전망마저 없다면 정부가 나서서 어민들의 배를 구매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한중어업협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인 만큼 정부가 중국 어선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청도를 비롯한 서해 5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지난해 정부를 상대로 3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데 이어 지난달엔 중국 정부를 상대로 879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동호(46)씨는 "최소한 지금 있는 배의 절반은 감축해줬으면 좋겠다"며 "감축 대상에 들면 그 돈으로 빚부터 갚고 싶다"고 말했다. 상당수 어민들도 이씨와 같은 생각이었으며 그 중에는 "지금 상황에서는 조업 구역 확대보다 어선 감축이 더 절박한 문제"라고 말하는 어민들도 여럿 있었다.

한 어민에게 '만약 감축 대상에 포함되면 어업을 그만두고 여길 떠날 생각이냐'고 묻자 그는 "그래도 고향에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한 뒤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여기서 남의 배 선원 노릇하며 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10일 오후 어느새 맑게 갠 대청도 하늘 아래에는 삶의 터전인 바다와 이제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배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어민들이 있었다.

a 10일 오후 포구에 모여 있는 대청도 주민들. 바다와 배를 바라보며 이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10일 오후 포구에 모여 있는 대청도 주민들. 바다와 배를 바라보며 이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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