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어머니여, 모성을 벗어던져라

[책소개] 주디스 워너의 <엄마는 미친 짓이다>

등록 2005.06.12 17:35수정 2005.06.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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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즘하우스

한국의 어머니상 하면 떠오르는 배우 두 명이 있다. 김혜자와 고두심씨. 물론 이 두 사람은 각각이 가진 어머니의 이미지가 있다. 김혜자씨가 만들어낸 어머니의 이미지는 온화하고 남편을 조용히 내조하며 자식에게 인자한 어머니이다. 반면 고두심씨는 남편의 부재 속에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

그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연기하는 어머니 속에 공통점은 바로 '자식'이다. 자식에게만은 모두들 약해진다. 그리고 모성본능을 발휘하며 이해와 포용력을 보여준다.


엄마. 이 땅위에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두 두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물론 가족의 해체로 자식을 버리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는 듯하지만, 그래서 자식들 또한 성장하고 철이 들면서 엄마 하면 늘 코끝이 찡해지는 것도 한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일전 우리나라 에세이집 <친정엄마>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미국의 엄마의 모습을 그린 에세이집이 나왔다. 바로 <엄마는 미친 짓이다>라는 책이다. 전자의 책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친정엄마>는 저자가 받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고마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보다 더 전투적이다.

<엄마는 미친 짓이다>에서는 미국 어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왜 그런 대우와 처지에 놓여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회가 좀 더 그들의 존재에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세이집이지만 주장하는 강도를 보면 논설문으로 오해할 정도이다.

뉴스위크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고 다양한 논픽션을 써온 저자 주디스 워너가 프랑스에서 첫 딸을 낳고 양육을 경험한 뒤 미국의 엄마들이 열악한 사회보장제도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 일반화되어 있는 '엄마'라는 환상(신화) 때문에 받는 억압과 심적 고통이 어떠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쉽고 친근한 언어로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그 원인을 역사, 언론, 페미니즘, 문화 자료의 분석을 통해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실제 미국 중산층 가운데 자녀를 둔 주부 150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자신의 경험이 중첩되면서 생생한 현실 속의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룻바닥에 떨어진 속옷을 줍고, 아이들을 위해 놀이 약속을 잡아 놓게 하고, 모녀가 참가하는 독서 모임에 나가고, 치과 의사에게 진찰 받으러 가고, 형편 없는 의사를 만난 건 아닌지 걱정하고…. 겹겹이 쌓여있는 일들을 하다가 어머니가 이렇게 외친다. '난장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생생함이 살아있고, 딱딱하지 않아 독자들이 읽기에 편하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픽션을 써온 베테랑 작가인 저자는 이를 에세이 형태로 누구나 읽기 쉽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성들의 미온적 태도와 정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비단 미국의 엄마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엄마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동차 벤으로 장만했다. 운동에 소질도 없는 딸에게 축구 교습을 시켰다. 딸아이 반의 동급생들은 체조·미술·수영·음악 등의 교습을 따로 받고 있었다. 그래서 딸에게 발레 교습도 시켰다."

저자는 모성에 덫에 갇혀 허우적대는 엄마들에게 '엄마 노릇'에 대한 환상을 벗어던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 역사와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언론, 무관심한 정부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는 망령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가정과 자기에게 향한 통제를 해제하고 바깥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엄마들이 진정 통제하고 참여해야 할 것은 삶의 질을 회복하기 위해 사회와 정부를 독려하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고 있다 보면 한국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어려서는 어리기 때문에 이것저것 돌봐줘야 하며, 학교를 다니면서 부터는 성적에 신경을 쓰게 되고, 수험생이 된 후에는 입시공부를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어머니들이 전전긍긍해 한다. 이런 모습이 한국 어머니들의 현주소이다. 물론 이 책은 미국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어머니가 별반 다른 게 없는 글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모성으로 감싸주어야 한다고 착각에 빠진 어머니들에게, 어머니는 한없는 사랑으로 무조건의 희생을 강요하는 자녀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길 적극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엄마는 미친짓이다. 주디스 워너지음/ 임경현 옮김
프리즘하우스/ 1만 200원

덧붙이는 글 엄마는 미친짓이다. 주디스 워너지음/ 임경현 옮김
프리즘하우스/ 1만 200원

엄마는 미친 짓이다

주디스 워너 지음, 임경현 옮김,
프리즘하우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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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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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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