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고구려를 찾아서

고구려 유물 특별 전시회 관람, 그리고 최종택 교수님 강연

등록 2005.06.13 15:03수정 2005.06.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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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원주 YMCA에서는 원주 시내 청소년들과 함께 ‘고구려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2년 계획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구려 프로젝트’는 국내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고 마지막으로 올 여름방학에 중국의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할 예정입니다.

이기원
그 과정의 하나로 지난 11일에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한국 고대의 Global Pride 고구려’란 주제로 특별 전시 중인 고구려 유물을 관람하고 최종택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님을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인솔 교사 및 학생 32명이 버스에 타고 출발한 게 낮 12시였습니다. 전시회와 초청강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라서 점심은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해결했습니다. YMCA 청소년 수련관 구내식당에서 구입한 김밥입니다.

양이 적은 김밥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이제는 나이도 들만큼 들어 식탐도 먹는 양도 제법 줄었지만 김밥 달랑 두 줄 썰어 담은 도시락 하나로 한 끼 해결이 부족할 거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많이 먹는 게 미덕이라는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내면화시켜 배만 키우며 살아온 탓이겠지요. 이번 김밥은 도시락을 꽉 채워 양이 많았습니다. 김밥 먹고도 허전해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분들의 넉넉한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김밥을 먹은 뒤 이경훈 대성중학교 선생님이 오늘 일정과 고구려 유적에 대한 안내를 했습니다. 답사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열심히 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선생님입니다.

이기원
설명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선생님의 열정만큼 진지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유물에 대한 호기심과 역사 스페셜에 출연했던 유명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된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부담 없는 나들이 길에 나선 즐거운 마음과 들뜬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그래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부분에서는 눈 동그랗게 뜨고 분개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한국 고대의 글로벌 프라이드(Global Pride) 고구려

천문학적 돈을 투자해서 만들었다는 고려대 박물관은 웅장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았습니다.


웅장하고 세련된 건축물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건 감자 꽃 보며 살아온 강원도 촌사람의 티를 벗지 못한 탓일까요. 아니면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소심한 성품 탓일까요.

고구려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앞서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세련미까지 갖춘 박물관 앞에서 낯설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기원
그래도 고구려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호기 있게 박물관에 들어섰습니다. 남북에서 발견된 다양한 고구려 유물들이 유리관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금동 유물에서부터 소박한 기와 파편까지, 거대한 광개토대왕비 탁본 자료부터 손톱만한 귀걸이까지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둘러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무 설명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면 다리도 아프고 재미도 없는 게 박물관입니다. 그래도 사전에 섭외가 되어 박물관 측에서 강사가 나와 전시된 유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귀 기울여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습니다.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는 아이들도 있고 강사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강사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직접 보고 듣는 것보다 더 좋은 수업이 없다는 게 입증되는 것이지요. 다만 그 귀한 유물을 눈에만 담아두어야 했습니다. 카메라에 담아 오면 수업 시간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몰래 찍을 만큼의 배짱이 없는 걸 보면 소심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살아 숨쉬는 고구려를 위하여

발굴 중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인 강원도에서 오는 손님이라는 반가움에 짬을 내어 달려온 최종택 교수님의 강연은 흐르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알차게 진행되었습니다.

최 교수님은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다녔던 학교를 돌아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회고하면서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에 삶을 묻고 살아온 과정을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그 모습에서 한 분야에서 우뚝 선 학자적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기원
중국과 북한을 답사하면서 찍은 다양한 유물과 유적을 보여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답사할 지역이라는 호기심에 눈과 귀를 모두 열고, 열심히 보고 들었습니다.

산 사람들의 집이 절반이고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 절반이라는 집안 지역의 거대한 고분군을 보면서 엄청난 고구려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을 보면서 휴전선 이북의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북한의 유명한 단고기가 담겨진 접시를 보면서 공연히 군침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중국인이 아닌 친근한 우리의 이웃 사람들의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최종택 교수님의 마지막 당부는 살아 숨쉬는 역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대립에 감상적으로 매몰되지 말고, 살아서 숨쉬고 있는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 되살려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구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잊혀진 역사는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미국 땅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이 이제 와서 미국 땅은 원래 우리들의 땅이었다고 주장해봐야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합니다. 그들에게서 역사는 잊혀지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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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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