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제대로 하려 대학 다닌 창녀의 고백록

넬리 아르캉의 <창녀>

등록 2005.06.14 09:08수정 2005.06.1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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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서 '창녀'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길거리의 여자라고 하지만 현실과 달리 그 만남이 어색하지 않다. 최근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도 등장했고 스테디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에서도 등장했다. 특히 최근에 창녀를 보는 데는 <11분>의 역할이 한몫 단단히 했다.

성(性)을 통해 성(聖)을 이야기했던 <11분>의 창녀 마리아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창녀이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사회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 있음을 생생이 보여준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그러할까?


발표되면서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넬리 아르캉의 <창녀>를 보고 있노라면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게 된다. '창녀는 창녀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작품은 창녀의 고백록이다. 창녀의 이름은 신시아. 물론 어느 창녀가 그러하듯이 본명은 아니다. 작품에서 화자는 신시아가 죽은 누이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것 또한 믿을 수는 없다.

물론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창녀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건 '창녀는 창녀다'라는 사실이다. 창녀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창녀의 존재를 깊이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 자신의 손님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창녀의 감정을,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여자들에게 '자매애'는커녕 동지감조차 품을 수 없는 그 현실을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사회 권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성 인권이 신장되었다고 하며 농담조로 여성 상위 시대라고 하지만 그건 농담에 불과하다. 아직도 여성은 남성이 만들고 있다. 여성은 남성에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미미한 권력을 움켜질 뿐이다. 창녀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터다.

창녀는 백 명의 여성이 있어도 존재할 수 없다. 단 한 명이라도 남성이 있어야만, 남성의 요구대로 성행위를 한 뒤에 지폐를 받아야만 연명할 수 있는 존재다. <창녀>의 신시아도 그러하다. 그것은 분명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시아는 다르다. 더 많은 스머프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단 한 명의 '스머페트'가 되기를 바라던 그녀는 창녀 노릇 한 번 번듯하게 하기 위해 대학에 간다. 그리고 문학도가 된다. 창녀를 다루는 많은 작품들이 대학생이 돈을 벌기 위해 '갈보짓'을 하기 시작한다고 설정했다. 그러면서 비정한 사회를 욕했다.


그러나 <창녀>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것을 두고 고고한 이들이나 최근의 창녀 소설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저자를 향해 '억지스럽다'고 쓴소리를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을 테다. 이 소설은 체험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상상이나 희망이 아니라 '실제'를 다뤘다. 그래서인가. 어디에서도 창녀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들은 찾아볼 수 없다.

작품은 시종일관 고된 노동을 마친 섹스노동자(창녀)가 지쳐도 계속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의 모습과 같은 음울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언어도 그렇거니와 언어들이 만드는 장면들도 그렇다. 창녀를 찾는 남성들의 모습, 창녀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모습, 창녀를 향해 성행위를 요구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결단코 즐겁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은 아니다.


또 자신의 존재를 통해 창녀의 존재를 토로하는 언어들은 숨을 막히게 한다. 이토록 집요한 작품이 있을까? 아니 에르노처럼 한 가지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글쓰기로 유명한 이들의 작품도 <창녀>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질 정도다. 더군다나 그 세밀함과 현실적인 그림들은 비명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할 정도다.

그러나 <창녀>는 단순한 고백록이 아니다. 또 새 삶을 살아보기 위해 과거를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비명 속에 간혹 드러나는, 신시아의 조롱하는 모습들이 심상치 않다. 그렇다. 신시아는 다르기에 말한다. 스머프들이 스머페트를 만들고 남성들이 여성들을 만들었지만 여자는 성을 창조해냈다고 말한다. 인생에 속은 데 대한 분풀이로 창녀가 되는 것보다 나은 게 어디 있냐고 덧붙이면서.

<창녀>는 도발하고 있다. 연민으로 혹은 동정으로 바라보던 이들을 향해 한껏 조롱하는 그 태도, 그것을 어찌 도발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비록 이 도발이 남성과 여성의 권력까지 뒤엎을 정도의 위력은 없을지라도, 오디세우스를 유혹하지 않은 세이렌을 등장시켜 오디세우스를 우습게 만들었던 카프카의 글쓰기처럼 저자의 글쓰기는 분명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창녀>는 '문제작'이다. 창녀 노릇 한번 번듯하게 하기 위해 대학을 갔다는 사실이나 고객으로 찾아올 아버지를 언급하는 장면부터 그 상징성까지 생각한다면 문제작이다. 그 정도가 너무나 심각해서 아예 '무시'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낼 정도의 보기 드문 '진정한' 문제작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창녀

넬리 아르캉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동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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