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90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6.14 10:09수정 2005.06.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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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안도 운산 광산.
군기창 창장 박 서방이 십 오육 세 가량 되는 소년과 같이 발 아래에서 벌어지는 작업을 지켜보았다.


“수항아, 잘 보거라. 화약은 저렇게 염초(焰硝)와 유황(硫黃) 그리고 숯을 섞어 만든다. 그 중에 염초란 것이 화약 제조의 으뜸 요소로서 이 염초란 것을 통해 유황과 숯을 폭발적으로 연소시키게 되느니라.”

“예, 이미 <신전자초방 (新傳煮硝方)>에서 접한 바가 있습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하였을 나이임에도 의젓함이 배어 있었다.

“그으래? 어찌 어린 나이에 그런 책을 보았는고?”

“선친께옵서 곁에 두고 보시던 서적이옵니다.”


“흐흠......그 애비에 그 자식이오로고.”

수항이란 소년의 아버지와 박 서방은 인연이 깊었다. 쇠 불리는 솜씨가 좋은 장인으로 조정의 군기시 시절 박 서방과 일한 바가 있었는데, 후일 평양에서 유기전을 열어 꽤 큰 돈을 모았다 했다. 안성 쪽이나 타지의 유기를 가져다가도 팔고, 직접 만들어도 팔았는데 벌이가 꽤 쏠쏠해서 금세 평양에서는 굴지의 상점 주인이 되었다.


“네 아비는 재주도 깊고 한도 깊었던 이니라. 재물로도 천한 장인이란 멍에는 끝내 벗을 수가 없었던 게지.”

어린 나이였지만 수항도 그 점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끝내 풀리지 않는 그 무엇인가에 몹시 분노했던 사람이란 것도. 늦은 밤 홀로 쇠를 만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에 혼자 있을 땐 밤과 밤을 이어가며 만든 화승총 두어 자루를 한의 껍질인양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참을 무슨 생각인가에 골몰하곤 하였다. 수항은 그런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아버님이 대동계원이신 줄은 여기 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랬겠지. 워낙 조심성 있고 찬찬한 위인이었으니. 결국 내가 대동계로 끌어들여 네 애비의 명을 짧게 한 것 같아 너희에게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는 의롭게 돌아가셨습니다. 생존해 계실 때도 어느 한 순간 존경을 아끼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아버님이 안 계신 지금 더 큰 느낌입니다.”

“사주전을 맡아 운영해 주어 계의 운영에 도움을 주는 바가 컸는데, 결국 그렇게 자기 입을 막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

평양의 사주전 조직이 드러나 체포될 때 수항의 아버지는 혀를 깨물었다. 한 달여 짬을 보아 백호대원들이 유가족들을 평양에서 빼냈고, 흑호대원들이 광산까지 이들을 인도해 왔다. 광산촌 아랫마을에 잘 정착했으나 두 아들 수항과 기항은 기어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싶어했다.

“형님은 개화군에 지원을 했습니다. 저도 희망을 하였습니다만 아직 나이가 어리다 하여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개화군 모집은 대개 광산 경비나 광물 호송에 무장 호위대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신체조건에 적합한 자들을 가려 약 보름에서 한 달 간 사전 조련을 하며 품성이나 생각이 부적격한 자를 추려내는 엄정한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들 형제는 이미 대동계원의 유족이었으므로 체력만 허용이 되면 무조건 합격이 될 것이었으나 열 여섯의 수항은 너무 어렸다.

그러나 형 기항은 들돌 들기, 백 보 달리기, 뜀뛰기 모두 좋은 점수를 받았다. 더구나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있거나 권술에 능하면 가산이 되고, 문자 해독 능력이 있으면 또한 가산이 되는 까닭에 기항은 유족이라는 특례가 아니어도 썩 우수한 점수로 개화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수항은 그런 형이 부러웠다. 그러다 자신도 나름대로 선친의 뜻에 일조할 방법을 찾았으니, 그것이 어려서부터 익숙한 풀무간 경험을 살려 무기와 군수품을 만드는 군기창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친과의 인연으로 자기 가족을 극진히 보살펴 주던 박 서방을 찾아와 보름을 넘게 졸라대었다. 그러다 결국 박 서방의 허락을 받아내고 지금은 수습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대개 수습과정은 각 분야에 배속되어 제조 밑에 보조로 있으며 배우는 것이었는데 수항을 마음에 둔 박 서방이 창장의 직속 견습공으로 데리고 다니는 중이었다.

“수항아, 혹 염초의 제조과정을 아느냐?”

“우선 흙을 모읍니다. 검고 매운 흙이 으뜸이겠지만, 달거나 쓴 것도 모두 쓸 수는 있습니다만 짠 흙만은 종내에 물기를 빨아들이기에 불가합니다. 그리고 다북쑥이나 곡식의 줄기, 나무 등을 불에 태워 재를 얻습니다. 역시 소나무만 불가합니다. 흙과 재를 일대일의 비율로 섞고 체 위에 얹어 물을 부어서 염초 성분을 추출해 냅니다.
추출된 용액을 가마솥에 넣고 졸여서 반쯤 줄면 찌꺼기를 가라앉혀 걷어낸 후 걷어낸 후 다시 끓여서 결정을 얻어냅니다. 이 때의 결정이 털 같다 하여 모초(毛硝)라 하옵는데 이 모초를 물에 넣고 아교를 섞어가면서 휘저어 끓이면서 거품을 걷어내기를 반복합니다. 불순물이 모두 제거되면 식혀서 순순한 염초, 즉 정초의 결정이 생성되게 합니다. 만들어진 염초가 좋지 않으면 이 방법을 한 더 되풀이 합니다.”

어린 수항이 막힘이 없이 줄줄 뇌였다.

“그런 후엔?”

“염초가 얻어지면 염초 1근, 버드나무 숯 3냥, 유황 1냥 4돈을 넣고 쌀뜨물로 반죽하여 방아로 한나절을 찧습니다.”

“흐흠. <신전자초방>의 제조공법이구나. 그럼 배합이 대략......?”

“예. 화약을 100이라 하였을 때 염초가 78.4, 석류황 6.9, 숯 14.7, 반묘 0.01 가량이옵니다.”

“그래, 근래 조선 화포에는 염초가 76 가량, 조총에는 ‘왜약’이라 하여 염초가 78.3 가량 되는 화약을 쓴다.”

“<화포식언해>의 공법대로 말이옵니까?”

“<화포식언해>도 읽어 보았느냐?”

“예, 조금......”

“그럼, 만들어 보기도 하였느냐?”

“직접 제조를 하신 분은 아버님이옵고 저는 그저 옆에서 시중만......그것도 아버님의 화승총에 쓸 것이었는지라 그리 많은 양은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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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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