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200회

등록 2005.06.15 08:10수정 2005.06.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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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 장 성화대전(聖火臺展)

태행산(太行山)을 본산으로 하여 남북을 가로질러 그 맥(脈)이 천리(千里)에 달하고, 그 험준함이 빚어내는 절경을 가리켜 태행팔경(太行八景)이라 불렀다. 산서(山西)와 하북(河北)의 경계를 뚜렷하게 긋고 있는 태행산의 자락은 그 험준함으로 인하여 고래로부터 그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곳. 왕래가 가능한 몇 가지 통로 중 북쪽에 치우쳐 있으며 태행팔경 중의 하나인 거용관(居庸關)이 대명 초기 서달대장군에 의해 개축되어 변방의 요새로 사용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거용관에서 이백여리 남쪽으로 험준한 협곡을 끼고 돌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악귀들이 모여 산다는 천마곡(天魔谷)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십 년 전에는 사냥꾼들이 간혹 드나들기도 했었고,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도 들렸지만 호로병처럼 생긴 입구 커다란 바위에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는 네 글자가 새겨진 이후로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입곡자사(入谷者死)>

오리(五里)에 걸친 좁은 협곡은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에도 불편할 정도였지만 길은 그렇게 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좌우로 병풍처럼 펼쳐진 기기묘묘한 암석들과 그 틈으로 겨울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생명력을 질기게 이어가는 작은 나무들이 어울려 오히려 하나의 절경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렇듯 아름다운 곳에 악귀들이 모여 있다고 소문난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들어가서 나온 자가 없어 아마 그렇게 불렸던 것 같았다.

암천에는 하한이 흐르고 천마곡 깊숙한 곳 어디에선가 조용한 가운데 움직이는 군웅들이 있었다. 십여 장이 넘을 듯한 깎아지른 절벽은 마치 제단인양 서있고, 형형색색의 천이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전면에 늘어져 있는가 하면, 좌우로도 길게 사선을 그으며 늘어져 있었다. 유독 하나의 붉은 천은 길게 늘어져 전면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사람의 키 높이의 단(壇)이 세워져 있었다.


양쪽으로 사람의 키보다 두 배는 됨직한 깃발들을 줄을 지어 서 있고, 그 깃발에는 오색금실의 자수로 쓰인 글들이 눈에 띠었다. 달이 없어 매우 어두웠지만 그 글씨들은 깃발을 뛰쳐나와 허공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 미륵현신(彌勒現身)
- 명왕출세(明王出世)
- 출세현인(出世賢人)
- 만민천복(萬民天福)


제석(除夕:일년 중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이런 날 자시(子時)가 가까워오면 사람들은 대개가 잠자리에 들지 않고 교자(餃子, 만두) 등을 먹으며 새해를 맞는 것인데, 교자를 먹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속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지난해와 새해를 이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같이 먹고 있는 가족들의 길상(吉祥) 음식으로 인식된 탓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정지하자 단(壇) 앞으로 갑작스럽게 붉은 빛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몽롱한 연기를 피어오르듯 희미한 기류에 쌓여 있는 듯 했는데, 그것은 점점 선명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천히 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허공을 천천히 떠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점차 그 빛이 더욱 강렬해지기 시작하자 그 빛이 하얀색은 연화(蓮花) 위에 놓여진 하나의 붉은 보석임을 알 수 있었고, 그 연화의 아래로 길게 늘어진 대가 하나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손에 들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화령(聖火令)이었다. 모든 백련교도들이 무릎을 꿇고 복종하며 숭배해야 하는 성물(聖物)이었다. 그들의 염원이 담긴 신물(信物)이오, 구원을 상징하는 빛이었다.

그 붉은 빛이 단 위로 서서히 이동하여 위로 올라설 쯤 되자 그것을 잡고 있는 한 여인과 그 뒤를 따른 네 명의 소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옷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천을 걸쳤다고 하기에도 정확하지 않다. 속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그 천은 아주 간단하여 네모진 천을 겹쳐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목과 손만을 내놓고 있는 형태였다. 소매 부분만 바느질이 되어 있는 듯 했고, 허리에는 같은 천을 둘둘 말아 채대처럼 두르고 그 끝은 오른쪽 허벅지에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벗은 것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녀들은 속옷 같은 것은 전혀 걸치지 않고 있었다. 오직 그 천만을 걸친 상태여서 여인은 물론 그녀의 뒤를 따르는 네 명의 소녀들은 자신의 몸을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천이 접혀 있는 부분은 그래도 희미했으나 오히려 여자들의 굴곡이 심하게 나타나는 가슴과 엉덩이 부분은 맨살이나 다름없었다.

여인의 살결은 어둠 속에서도 확연할 정도로 희었다. 머리는 갈색이었고,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파란색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코와 붉은 입술은 그녀가 중원인(中原人)이 아닌 색목인(色目人)임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사실 색목인들은 당대(唐代)부터 본격적으로 중원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여, 원대(元代)를 거치면서 그 수가 꽤 많이 불어났다. 현 영락제의 명을 받아 수시로 남해원정을 떠난 정화(鄭和) 장군 역시 색목인으로 환관(宦官)인 자. 영락제를 보필해 그를 황권에 오르게 한 공신(公信) 중의 한명이었다.

여인은 단으로 올라가 천이 늘어져 있는 절벽 쪽으로 걸어갔다. 들고 있는 성화령의 붉은 빛이 점점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 빛으로 단 위의 모습은 어둠이 걷히며 일목요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단 위에는 향로로 보이는 둥그런 항아리를 올려놓은 낮은 대(臺)가 놓여 있었는데 여인은 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였다.

그녀의 조그만 동작 하나하나가 풍만한 나신과 더불어 색욕(色慾)을 불러일으키게 하건만 오히려 주위는 긴장감과 성스러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한손엔 성화령이 있었고, 또 한 손엔 칠채보석(七彩寶石)이 박힌 검을 들고 있었다. 길이는 석자 정도. 검이라 하기엔 너무 짧아 애매하였다. 마치 장식용으로 쓰는 검과 같았지만 그 날카로움은 바위를 무처럼 잘라낼 정도.

이 검이 바로 백련교도의 영혼이 서려 있다는 요서보검(妖書寶劍)이었다. 백련교에 있어 또 하나인 성물이자, 배신자를 처단하는 집행(執行)의 검이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백련교도들의 영혼이 깃든 검이어서 그 검에 베일 때 죄과의 유무가 결정된다는 전설 속의 검이었다.

진위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요서보검에 베인 후 백련교도들은 죄를 지은 자라면 죽을 때까지 고통을 느끼고, 죄를 짓지 아니한 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한동안 그녀는 그렇게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든 채 오색가지의 천이 늘어져 있는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들고 있던 성화령을 향로에 담았다.

팍---!

갑자기 불꽃이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향로에는 불이 솟구쳐 올랐다. 뜨겁게 타오른 불꽃은 기이하게도 향로 끝에서 좌우로 갈라지며 전면에 있는 절벽 아래로 불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도화선에 불을 붙인 듯 두 줄기 불길은 절벽 밑에 이르더니 다시 절벽의 양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줄기 불길은 꼭대기라고 생각할만한 곳에서 다시 합쳐졌다.

불길은 선을 그어 놓고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로 인하여 주위가 환해지자 절벽에 부조된 미륵불(彌勒佛)이 연화 위에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용화수인(龍華手印)을 짓고 있는 미륵불상은 너무나 거대했다. 미륵불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에 모여 있던 인물들의 입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외침이 계곡전체를 뒤흔들었다.

"미륵현신(彌勒現身)! 명왕출세(明王出世)!"

함성은 한번 터져 나오자 계속해서 이어졌다. 들고 있던 깃발들이 하늘로 치켜지고 이쪽저쪽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은 마치 노래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인물들의 수는 의외로 많은 것 같았다. 천마곡 안은 의외로 넓어 어느 한 저잣거리를 보는 듯 하였고, 둥글둥글 머리만 보이는 숫자가 마치 전장 터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늘어서 있었는데, 그 수를 셀 수 없었다.

도열해 있는 군웅을 헤치며 일곱 명의 남녀가 모습을 보이며 단을 향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금(琴)이 연주되는 소리와 적(笛) 소리도 들려왔다. 연주하고 있는 음악은 널리 알려진 광릉산금곡(廣陵散琴曲)인 것 같았는데, 군웅이 할거한 전국시대에 섭정이 부친의 복수를 위하여 입산(入山) 십년 동안 금을 배워 한왕궁에서 연주하며 기회를 틈타 한왕에게 복수를 노린다는 고사가 얽혀있는 곡이었다.

그들 일곱 명의 남녀는 대사형이란 인물을 비롯하여 방백린, 강명, 운령이 포함된 일곱 명의 사형제 들이었다. 이번 성화대전(聖火臺展)을 주재하고 있는 여인 역시 그들 사형제 중에 네 번째였다. 그들은 순서대로 자신의 약지에 요서보검을 갖다 대 살짝 긋자 피 몇 방울이 향로로 떨어져 내렸다.

사실 백련교가 무림에서 마교(魔敎)라 불리우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사교(邪敎)로 보인 가장 큰 이유는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매도당한 것도 있지만 그들끼리 모여 하는 의식의 배타적인 이질성도 한 몫 하였다. 백련교는 불교를 기반으로 일어선 것이지만 그 뿌리는 고래의 모든 종교의 일부를 흡수하고 민간신앙까지도 받아들인 혼합된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고래의 종교가 그러하듯이 양(羊)이나 수소를 잡아 그 피를 몸에 바르거나 뿌리는 등의 피의식과 배화교(拜火敎)에서 시작된 불의 숭배, 그리고 나신(裸身)의 순수한 처녀로 하여금 성화를 지피게 하는 등의 모습은 일반 백성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더구나 그것을 악용한 이단은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이어서 그러한 의식을 극단적으로 치몰고가 동물 대신 사람을 죽여 제단에 올린다던지, 몽환(夢幻)이나 최음(催淫)의 성질을 가진 약물 등을 성화에 태워 모여 있는 자들을 혼음(混淫)과 황음(荒淫)에 빠지게 한 일은 많았던 것이다. 굳이 백련교만 그러한 것도 아니었고, 당대나 송대의 일부 승려들이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되자 황음을 일삼았던 적도 많았고, 원대에 있어 라마승들까지도 색(色)을 통하여 해탈(解脫)의 경지에 오르고자 한 승려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렇듯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사악한 면을 부각시켜 사교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었다.

그들이 모두 피를 뿌리고 절벽에 모신 미륵불을 향해 배를 올리기 시작하자, 금과 적의 소리는 감추고 쟁(箏)과 고(鼓)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바라(鉢子)의 소리가 겹쳐지며 커지자 그것은 마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묘한 기운이 있어서 그들이 입에서 나오는 함성은 더욱 커져갔다. 계곡 안은 웅장한 함성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영락 칠년 원단(元旦)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향로에 뿌린 몇 방울의 피는 또 한번의 피가 강물을 이루게 하는 서곡임을 모르는 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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