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계곡, 어때요?

계곡에서 아이들과 놀았습니다

등록 2005.06.15 09:11수정 2005.06.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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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무덥습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가 봅니다. 웬만한 식당에는 모두 에어컨을 켭니다. 물론 우리 사무실은 아닙니다. 아직 에어컨을 켜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후 두세 시만 되면 덥습니다. 근무의욕도 많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직원 중 한 분이 아이스크림을 사옵니다. 여간 반가운 게 아닙니다. 저는 일부러 팥이 든 아이스크림을 찾습니다. 팥이 들어가면 맛이 색다릅니다.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합니다. 저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뭅니다. 아이스크림이 입에 살살 녹습니다.

a 계곡 물이 시원합니다

계곡 물이 시원합니다 ⓒ 박희우

그때 문득 멱감던 계곡이 생각납니다. 이름 없는 계곡이었지만 물이 참 맑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12일)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전남 광양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우리 가족만 간 게 아닙니다. 모두 다섯 가족이 갔습니다. 아이들까지 합치면 20명이 넘습니다.

광양은 매실로 유명합니다. 아이들은 매실 따기 체험을 좋아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이들 얼굴이 빨갛게 익었습니다. 아무래도 물놀이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바로 앞에 섬진강이 보입니다. 그곳으로 갈까하다가 그만둡니다. 오후 2시라서 햇볕이 너무 따갑습니다. 아이들이 혹시 더위를 먹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계곡 맞은 편 산이 그 유명한 '백운산'입니다. 백운산 정상이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2명인데 대학생쯤 되어 보였습니다. 검은 수영복 팬티를 입었습니다. 계곡 물이 고인 곳에서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a 어휴, 시원해?

어휴, 시원해? ⓒ 박희우

물이 엄청나게 깨끗합니다. 명경지수가 따로 없습니다. 이곳이 바로 명경지수입니다. 차갑기는 또 얼마나 차갑습니까. 발이 다 시릴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애, 어른 할 것 없이 계곡 물에 풍덩풍덩 뛰어듭니다.


계곡 물 고인 곳은 작은 연못 크기만 했습니다. 작은 폭포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미끄럼을 탑니다. 아낙네들은 물에 발만 담그고 있습니다. 발목이 뽀얗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우물이 바로 멱감는 곳이었습니다. 우물 주위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꼬맹이들은 저녁을 먹고는 부리나케 우물가로 뛰어갑니다. 나무 틈새에 꼭꼭 몸을 숨깁니다.


밤이 좀 깊어지면 동네 아줌마들이 우물에서 몸을 씻습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아줌마들을 훔쳐봅니다. 아줌마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눕니다. 간혹 남의 집 흉도 봅니다. 아무개 집 큰딸은 바람이 났는지 매일같이 읍내에 나간다고 합니다. 아무개집 며느리는 일할 때만 되면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고 합니다.

a 마치 물고기 같습니다

마치 물고기 같습니다 ⓒ 박희우

아줌마들이 옷을 입고 우물가를 벗어납니다. 이제는 동네처녀들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숨을 죽입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킵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영수가 귓속말을 합니다. 아무개 누나는 젖이 크다고 합니다. 저는 짜릿한 전율 같은 걸 느낍니다. 몸을 푸르르 떨기도 합니다. 도대체 여자의 벗은 모습은 어떨까. 저는 떨리는 가슴을 틀어쥡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물벼락이 쏟아집니다. 처녀들이 우리를 향해 바가지 채 물을 퍼붓고 있습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향나무 숲을 뛰쳐나옵니다. 죽어라 하고 도망갑니다. 어느 정도 도망갔다 생각하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처녀들은 제 자리에서 달리는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툭탁, 툭탁. 여전히 발자국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때는 그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어, 그런데 말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처녀들의 뜀박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디 뜀박질 소리뿐입니까. 물 끼얹는 소리도 들립니다.

"여보, 뭐해요. 물도 좀 끼얹고 해요."

a 큰애 '새하'입니다

큰애 '새하'입니다 ⓒ 박희우

아내가 얼굴에 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저는 바지가랑이를 걷어올립니다. 발을 물에 담급니다. 여간 시원한 게 아닙니다. 저는 물을 들여다봅니다. 물 속에 제 얼굴이 있습니다. 그런데 48살의 사내가 아닙니다. 여덟 살 꼬맹이가 '히히' 하며 웃고 있습니다. 앞 이가 두 개 빠진 게, 바로 어릴 적 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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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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