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들고 구호 외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법원노조 출범식에 참석하다

등록 2005.06.18 09:13수정 2005.06.1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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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7일)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창원지부 출범식에 갔다. 등기소에서 근무하는 터라 직원들도 보고 싶었다. 물론 새로운 지부장의 간곡한 참석요청도 있었다. 행사는 오후 7시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에 노래연습도 하고 구호도 외쳤다.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철의 노동자’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하도 유명해서 나도 부를 줄 안다.


그런데 '철의 노동자'는 좀 생소하다. 글과 곡이 안치환으로 되어있다. 안치환. 반가운 이름이다. 나는 안치환을 좋아한다. 안치환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렇다고 내가 안치환의 노래를 많이 안다는 건 아니다. 고작해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정도다.

나는 안치환을 딱 두 번 보았다. 한번은 지리산 백무동에서였다. 2001년인가 그랬을 것이다. 백무동에서 빨치산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행사가 있었다. 그곳에서 안치환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타를 어깨에 비껴 멘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또 한번은 2003년 금산인삼축제에서였다. 그곳에서 안치환이 노래를 불렀다. 의외였다. 관객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을 했다. 노인들이 안치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데 막상 노래를 부르니 그게 아니었다. 안치환의 노래에 열광했다. 오죽했으면 "앵콜"을 다 외쳤을까.

노래연습이 끝났다. 이제는 구호연습 차례다. 사회자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차게 오른팔을 어깨 위에까지 끌어올린다. 사회자가 선창을 한다.

"법원노조 중심으로 법원을 개혁하자!"


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직원들이 멈칫멈칫한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과는 영 딴판이다. 그들은 잘만 따라한다. 팔놀림과 구호가 착착 들어맞는다.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사회자가 웃으며 말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않다. 팔 하나 들어올리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하물며 구호는 어떠했겠는가.

하도 오랜만에 해서 그런 걸까. 내 스스로 놀란다. 80년대는 이렇지 않았다. 그때는 구호도 곧잘 외쳤다. "독재타도, 독재타도" 하면서 길거리를 누빈 적도 있다. 마산이 어디인가. 민주의 성지가 아니던가. 3·15의거도 그렇고, 부마항쟁도 그렇고. 최루탄 가스를 뒤집어쓰는 건 항용 있는 일이었다.


a 몸짓패 축하공연입니다

몸짓패 축하공연입니다 ⓒ 박희우

50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인가. 나는 움츠려들 대로 움츠려 있었다. 나는 거푸 막걸리를 서너 잔 들이켰다. 이제 좀 낫다.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자신감도 조금씩 생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팔을 힘차게 아래, 위로 들었다 내렸다 했다. 팔에 힘이 들어간 것만큼이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법원노조 단결하여 사법개혁 쟁취하자!"

열기가 차츰 달아오른다. 여직원들도 힘차게 팔을 뻗어 올린다. 집단의 힘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가 보다. 한 사람이 하지 못할 일을 집단은 너끈히 해낼 수 있다. 이래서 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상기된 얼굴이다. 어떤 결의 같은 게 보이기도 한다.

사회자가 행사 시작을 알린다. 노조깃발이 들어서고 초청 인사의 축사가 시작된다. 지부장의 취임사가 끝나고 행사는 정점을 치닫는다. 장엄한 민중가요가 울려 퍼진다. 노래패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살아있는 민중의 소리가 저런 것이었을까. 나는 숙연함을 느낀다.

이제 내게 부자연스러움 같은 건 사라지고 없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직원들 대부분 다 그렇다. 모두 밝은 얼굴들이다. 희망에 가득 찬 얼굴들이다. 나도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 자꾸만 술을 마신다. 이렇다가 취하면 어떡하지. 에이, 무슨 걱정이람. 달이 저렇게 밝으니 집에까지 가는 건 문제가 없을 터.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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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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