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역사의 찌꺼기를 없애야 한다"
고이즈미 "장기적 해결하는 자세 필요"

[한·일 정상회담] 두 정상은 끝내 '평행선'을 좁히지 못했다

등록 2005.06.20 10:41수정 2005.06.2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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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악수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한·일 정상회담 결과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악수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한·일 정상회담 결과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4신 : 20일 밤 11시20분]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마디씩 한·일 정상


의제를 둘러싸고 밀고 당기는 신경전과 여니 마니 하는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났다. 유일한 성과라면 두 정상이 "다음 정상회담은 올해 중에 일본에서 개최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0일 오후 2시간 동안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청와대 녹지원에서 공동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번 회담에 대해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나눌 수가 있어서 결실이 많은 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어쩌면 아무 것도 양보한 것이 없는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실제로 '결실이 많은 회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했던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회담이 되고 말았다.

고이즈미 "솔직하게 의견을 나눌 수가 있어서 결실이 많은 회담이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은 지난 2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을 통과시켜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을 계기로 노 대통령이 ▲독도 영유권 ▲역사 왜곡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3대 현안'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반성하고, 그리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한 연후에 화해해야 한다"라고 표출된 노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과거사 규명→사과·반성→배상→화해'라는 과거사 청산의 4단계 해법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 기획단'이라는 거창한 기구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의 얘기다. 결론이 날 수 없는 것이 뻔하므로 독도 문제를 의제로 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는 얘기다.


막연하게나마 한 가닥 기대를 모았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건에 대해서도, 정우성 외교보좌관은 "두 정상 사이에서 보다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이 교환되었고 고이즈미 총리가 앞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겠다,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앞으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 하겠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셈이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전쟁에 참가한 많은 일본인들을 추도하고 앞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위해 참배를 해왔던 것"이라며 "과거 전후 60년간 일본은 비핵화 원칙 등 방위문제로 주변국에 위협을 준 적이 없고 군사력을 억제하면서 경제발전을 추구해오는 등 평화지향적인 정책을 써왔다"고 해명했다.

물론 노 대통령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공동회견에서 "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해서 2001년 10월 한·일 정상회담 시에 논의된 바 있는 제3의 추도시설 건립 검토 문제를 제기했다"며 "이에 대해서 고이즈미 총리는 새로운 추도 및 평화기념시설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새로운 추도 및 평화기념시설을 검토하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조건부 입장'은 오히려 지난 2001년 10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합의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참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노 대통령 "진지하게 대화를 했지만, 어떤 합의에 이른 것은 없다"

그나마 두 정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의제는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였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밝혔듯이 두 정상은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산하에 교과서위원회 신설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제3의 추도 및 평화기념시설 검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이를 위한 외교적 노력의 계속, 그리고 한·미·일 공조 합의라는 양국의 외교채널이 사전에 조율해놓은 합의내용을 점검해 확정하는 데 10분을 사용하고 나머지 1시간 50분 정도를 역사 문제의 대화에 할애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를 보는 기본적인 인식문제에서부터 역사교과서 문제,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한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에 제기돼 왔고 또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논점에 관해서 아마 빠짐없이 대화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서로의 인식과 의견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했지만, 어떤 합의에 이른 것은 없다"고 덧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두 정상이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의 평행선을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교과서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률에 관심을 표명했다. 지난 2001년에도 교과서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지만 그때는 채택률이 낮아 그냥 넘어갔는데, 올해는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핵심세력이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을 지원하지 있다는 보도가 있어 깊은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두 정상은 일본의 교과서 검인정 제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정부에서는 검인정 교과서 제도에 대해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역사 인식의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자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를 추켜세우는 한편으로 '역사의 찌꺼기'를 없애자며 솔직히 이런 말을 했다.

"고이즈미 총리와 이렇게 자주 만나서 사진도 찍고 양국간의 협력방안을 논의하지만 역사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한·일간에 어떤 조그만 계기가 있어도 양국관계가 폭발할 소지가 있고 또 상호불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이즈미 총리와 같은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계실 때, 한·중·일 관계에서 근본적 해결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말 우리 한·중·일 지도자들이 미래의 동북아 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날의 동북아에는 확실히 '전선'이 있었다. 우리 마음 속에 이런 대결전선이 남아있는 한 진정한 미래의 평화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이런 대결전선을 없애려면 역사의 찌꺼기를 없애야 한다."


고이즈미 발언은 결국 '노 대통령 재임 중에는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

그러나 노 대통령도 "어떤 합의에 이른 것은 없다"고 말했듯이 두 정상은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이런 나라 간에는 전체를 보면서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특히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서 발전시켜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해결하자"는 고이즈미의 얘기는 결국 "노 대통령 재임 중에는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 중에 일본과 한국에서 활약했던 유일한 한국인 와카(和歌) 시인 고 손호연씨를 거론했다. 와카의 원형이 우리의 단가(短歌)인데도 왜색문학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손씨는 만년에 이르러 한·일 문화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그 2년 후에는 일본 정부에서도 표창을 받았다. 일본에는 와카의 대가인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네 개나 서있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공동회견에서도 '절실한 소원이 / 나에겐 하나 있지 /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이라는 손씨의 시를 인용하며 "이런 노래는 손호연씨의 마음뿐만 아니라 일본과 양국 국민의 희망이고 바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그가 인용한 시인이 일본에서는 대가이지만 한국에서는 배척받은 문인이라는 사실은 현해탄을 사이에 둔 역사인식의 파고가 여전히 험난함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3신 : 20일 저녁 7시28분]

"교과서위원회 및 제3 추도시설 건립 검토"
역사인식 평행선... 노 대통령 "저녁은 좀 가볍게 먹을 생각"


a 20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약 두시간의 정상회담을 마친 한·일 양 정상이 녹지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약 두시간의 정상회담을 마친 한·일 양 정상이 녹지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당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의 역사왜곡 논란과 관련, 새로 발족하는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산하에 교과서위원회를 신설, 연구결과를 양국의 교과서 편수 과정에 참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 제3의 추도시설 건립 필요성에 대한 노 대통령의 문제제기에 대해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새로운 추도 및 평화기념시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2시간에 걸쳐 정상회담을 가진 뒤 가진 공동회견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회담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상회담 결과는 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당시 일본이 행한 과거사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시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파트너십에 합의한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이상의 것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또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새로운 추도 및 평화기념시설을 검토하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조건부 입장'은 오히려 지난 2001년 10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합의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참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 두가지 낮은 수준의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제하고 "지난 2001년 10월 논의된 '제3의 추도시설' 검토 문제를 제기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새로운 추도 및 평화 기념시설 건립은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상황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다만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 인식문제와 관련, "수개월 동안 일·한관계가 걸어온 것을 바탕으로 과거에 대한 심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일본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그위에 미래를 향해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이 양국 신뢰 우호관계 발전과 강화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일본이 두번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대해 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어 ▲강제징용자 유골 반환 ▲한국 거주 원폭 피폭자 지원 ▲사할린 거주 한인 지원 등에 대해 "가능한 인도적 관점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양국 정상은 김포-하네다간 항공편을 오는 8월 1일부터 현재의 하루 4편에서 8편으로 증편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남북관계 및 북핵문제와 관련 고이즈미 총리는 "남북장관급 회담의 성공과 남북협력의 진전을 기대한다"며 "특히 북핵문제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는 데 최선의 해결방식인 6자회담의 조기 개최와 한·미·일 지속적 공조에 대해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고이즈미 총리는 양측은 다음번 정상회담을 실무회담 형식으로 연내 일본에서 개최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공동회견 말미에 정상회담 2시간 중에서 약 10분 가량만 양국 외교 당국이 사전에 조율해 합의한 것을 점검하고, 나머지 1시간50분 동안은 양국간 역사인식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오늘 저녁(정상 만찬)은 좀 가볍게 먹을 생각이다"고 말해 2시간 동안의 정상회담이 매우 '무거웠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두 정상이 서로 '할 말'은 다 했지만 그 역사 인식의 '평행선'을 좁히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2신 : 20일 오후 4시55분]

노 대통령 "정치는 심통스러워 덥기도 하고 바람도 분다"
고이즈미 총리 "겨울이 추울수록 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a 악수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악수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지난해 12월 가고시마현 이부스키(指宿) 정상회담 이후 6개월만에 재회한 한·일 두 정상은 일단 '철지난 봄' 이야기로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잡았다.

정상회담 시작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라는 게 욕심으로는 항상 봄처럼 되길 바라지만 실제 정치는 심통스러워서 덥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그런다"고 운을 떼었고, 고이즈미 총리는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말로 받았다.

청와대 안에서 외빈접견 등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한옥 건물인 상춘재(常春齋)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나눈 환담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0일 오후 3시 전에 청와대에 도착해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상춘재로 올라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과 상춘재 앞 정원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격의없는 실무회담'으로 진행된 지난해 정상회담과 달리 노 대통령은 청색 계통의 정장에 회색 사선무늬의 넥타이 차림이었고, 고이즈미 총리는 회색 정장에 보라색 계열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먼저 "어서오십시오"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이즈미 총리는 "가고시마에서 본 나무들과 비슷하다, 오늘은 날씨 좋고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고맙다"면서 "좋은 회담이 될 것 같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노 대통령이 이어 "더운 데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다시 인사를 건네자, 고이즈미 총리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축하드린다"고 화답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이 위치가 청와대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며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 지어진 곳이다"고 정상회담 장소로 쓰인 상춘재를 소개했다.

두 정상은 이어 상춘재 안으로 입장해 도열해 있는 양국 공식 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에 사진기자들의 악수 요청에 따라 사진기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눈 뒤에 회담장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노 대통령은 "이 집이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상춘재) 이름을 이승만 대통령이 지었는데 뜻이 있다"고 다시 한번 상춘재를 소개했다.

그러자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에서도 한자를 쓴다"며 "상춘재는 일본어로도 한자를 보고 뜻을 알 수 있다"고 화답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밖의 정원을 보니 지난번 이부스키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고 전제하고 "많은 것들이 한반도로부터 들어왔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지난 번 회담 때 심수관 선생 집에 들렀을 때 감격 받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이부스키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작별인사를 나눈 뒤에 임진왜란 때 이곳 가고시마현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의 후손으로 일본도예의 명가(名家)를 이룬 심수관가(沈壽官家)를 찾아, 14대손(孫) 심수관옹(77) 및 15대손 심수관씨(46)와 환담했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지난번 경관이 아주 아름다웠으며 일본 건축물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면서 "일본에서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좋았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고이즈미 총리는 "그 때는 폭탄주를 안마시고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만찬이었다"고 농담섞인 답을 했다.

이어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노 대통령은 "정치라는게 욕심으로는 항상 봄처럼 되길 바라지만 실제 정치는 심통스러워서 덥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그런다"고 운을 떼었고, 고이즈미 총리는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말로 받았다.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상춘재(常春齋)는?

▲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군과 어머니를 초청해 상춘재 앞 정원에서 담소하는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청와대 안에서 외빈접견 등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한옥 건물인 상춘재는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지은 청와대 부속건물(116평)이다.

건평 383㎡에 기와를 올린 목조 한옥으로 방 2칸, 부엌, 마루, 화장실, 대기실 각 1칸에 지하실이 갖춰져 있다.

원래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일식 목조건물 '상춘실'을 철거하고, 1978년에 그 자리에 천연슬레이트 지붕의 양식 목조건물을 지어 '상춘재'로 명명하다가, 1983년에 형태의 변경 없이 목재로 보수하여 연건평 382㎡의 목조 한옥을 완성했다.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이 집이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며 "이름을 이승만 대통령이 지었는데 뜻이 있다"고 상춘재를 소개했으나, 이는 노 대통령이 잘못 알고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되는 상춘재는 청와대 경내에 최초로 건립된 전통 한옥으로서, 주기둥에는 200년 이상된 춘양목(홍송)을 사용했다. 이 건물은 국무총리 공관의 삼청당(三淸堂)보다는 건축양식이 떨어지지만, 그 이전까지 외국 손님에게 소개하지 못했던 한국의 가옥 양식을 보여 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노 대통령은 이곳을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노 대통령보다 권양숙 여사가 이곳을 더 자주 이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이곳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적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곳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적이 있다.

또 노 대통령과 권 여사는 지난 4월 1일 영화 <말아톤>의 실제 모델인 배형진(21)씨와 어머니 박미경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상춘재에서 '자장면 오찬'을 한 바 있다.

[1신 : 20일 오전 10시41분]

노 대통령, 오늘 오후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과거사 문제와 북핵 문제 등 양국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청와대 상춘재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회담을 한 뒤, 오후 5시20분경에 20분 동안 녹지원에서 양국 언론을 상대로 회담결과를 발표하는 데 이어 저녁에는 7시부터 실무회담을 겸한 만찬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참여정부 출범 후 7번째이며, 이른바 '셔틀 외교'로 불리는 양국간 실무형 정상회담으로는 지난해 7월 제주 정상회담, 12월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指宿) 정상회담에 이어 세번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두 정상이 '넥타이를 풀고 격의없이' 만난 지난 두 번의 실무회담 취지와는 달리 '넥타이를 매고 격식을 차리고' 만나는 형식을 취하게 될 예정이다. 어느 때보다도 분위기가 '무거운 회담'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회담에선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인식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돼 두 정상이 이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입장을 정리할지 주목된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는 노 대통령이 지난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면담 결과를 고이즈미 총리에 직접 설명할 예정이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한일양국의 공조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튿날인 21일 오전에 만 하루도 안되는 짧은 방한기간을 마치고 이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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