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꽃이 예쁘죠?추연만
후텁지근한 날씨는 산골마을(경북 영천시 화북면)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해 가뭄에 목탄 오뉴월 들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도시와 달리 산골의 산들바람은 한여름에도 종종 불어, 땡볕에 일하는 농부의 땀방울을 씻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들판은 바람 한 점 없어 산골 날씨답지 않게 무척 덮다.
양철통을 거머쥔 채, 고추와 기장(오곡밥에 들어가는 잡곡- 노란색) 심은 밭에 물 주러 들판을 가로지른 발걸음이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속옷을 적셔오는 걸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어 더위를 더욱 실감한다.
“더위에 사람도 사람이지만 곡식이 타들어 가니 큰일이야. 곧 비가 와야 될 텐데….”
어머니는 더위와 가뭄에 타들어가는 밭곡식이 무척 안쓰러운 모양이다. 미리 심은 기장은 가뭄으로 메말라 죽어 밭고랑에 이빨 빠진 듯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잡초를 뽑으며 새로운 모종을 심으시는 어머니의 빠른 손놀림을 뒤따라 나는 인근 웅덩이를 오가며 양철통으로 밭고랑에 물주기를 반복했다.
어머니의 기장농사는 일종의 ‘계약재배’다. 중국산 곡물이 재래시장까지 잠식한 가운데 ‘국산기장’을 찾는 영천시장 곡물상의 부탁으로 어머님은 천 여 평 남짓한 밭에 기장을 심었다. 기장은 잘 지으면 곡수도 많이 나고 가격도 다른 밭농사에 비해 괜찮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두어 시간 후 기장심기가 끝나 휴식을 하는 동안 시선은 사진 찍듯 들판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문득 곱게 핀 담배꽃에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