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꽃, 한 번 보시죠

아름다운 담배꽃에 깃든 이야기

등록 2005.06.20 18:43수정 2005.06.2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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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꽃이 예쁘죠?
담배 꽃이 예쁘죠?추연만
후텁지근한 날씨는 산골마을(경북 영천시 화북면)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해 가뭄에 목탄 오뉴월 들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도시와 달리 산골의 산들바람은 한여름에도 종종 불어, 땡볕에 일하는 농부의 땀방울을 씻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들판은 바람 한 점 없어 산골 날씨답지 않게 무척 덮다.


양철통을 거머쥔 채, 고추와 기장(오곡밥에 들어가는 잡곡- 노란색) 심은 밭에 물 주러 들판을 가로지른 발걸음이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속옷을 적셔오는 걸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어 더위를 더욱 실감한다.

“더위에 사람도 사람이지만 곡식이 타들어 가니 큰일이야. 곧 비가 와야 될 텐데….”

어머니는 더위와 가뭄에 타들어가는 밭곡식이 무척 안쓰러운 모양이다. 미리 심은 기장은 가뭄으로 메말라 죽어 밭고랑에 이빨 빠진 듯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잡초를 뽑으며 새로운 모종을 심으시는 어머니의 빠른 손놀림을 뒤따라 나는 인근 웅덩이를 오가며 양철통으로 밭고랑에 물주기를 반복했다.

어머니의 기장농사는 일종의 ‘계약재배’다. 중국산 곡물이 재래시장까지 잠식한 가운데 ‘국산기장’을 찾는 영천시장 곡물상의 부탁으로 어머님은 천 여 평 남짓한 밭에 기장을 심었다. 기장은 잘 지으면 곡수도 많이 나고 가격도 다른 밭농사에 비해 괜찮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두어 시간 후 기장심기가 끝나 휴식을 하는 동안 시선은 사진 찍듯 들판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문득 곱게 핀 담배꽃에 멈췄다.

꽃이 핀 담배밭. 보이는 산은 영천 보현산 줄기.
꽃이 핀 담배밭. 보이는 산은 영천 보현산 줄기.추연만
“담배 꽃이 예쁜 걸 오늘 처음 보네요. 원래 저리 고왔나요?”
“니는 어디 가도 촌놈이라 카지마라. 이맘때 피는 담배꽃도 잘 모르다니. 담배꽃은 피자마자 꽃대를 꺾어줘야 잎이 더 잘 크는기라.”


담배농사에 얽힌 어린 시절 추억은 진득진득한 담배진액으로 인해 유쾌하질 않다. 담배는 유독 한여름에 잎을 수확했다. 담뱃잎을 하나 둘 따면 진득진득한 진액이 양손을 금방 시커멓게 하고 거미줄처럼 착착 붙는 촉감은 더운 여름을 더욱 후텁지근하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담뱃잎 따는 날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 도망가기 일쑤.

담배농사는 힘든 데 비해 다른 농사보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고 한다. 30년째 담배농사를 짓는 숙부님은 “비록 몸은 고달프나 담배는 한 몫에 큰 돈을 만질 수 있다”고 하신다. 담배농사가 다른 작물에 비해 ‘안정적인 수입 보장’이란 것은 담배인삼공사가 계약물량을 모두 수매하고 가격도 미리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할 뿐 아니라 판로가 막히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올해도 모내기 전에 심은 배추가 중국산에 밀려 '똥값'이 돼 논에 전량 폐기했단다. 그러나 담배농사도 마냥 안정적일 순 없다. 수매가는 제자리고 수매량도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 이에 숙부님은 “막내인 연찬이가 올해 대학을 졸업하면 담배농사도 이젠 그만해야지. 나이도 곧 환갑인데…”하신다.

담배 꽃이 필 때면 농부들은 담배밭을 오가며 꽃대를 딴다. 영양분이 꽃으로 가는 걸 막아 담뱃잎이 더 잘 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담배 꽃은 미처 열매를 맺기 전에 봉오리가 꺾이는 운명이 된다.

여름에 피는 담배꽃
여름에 피는 담배꽃추연만

꽃이 핀 담배밭  옆에 밤나무도 꽃을 피우고..
꽃이 핀 담배밭 옆에 밤나무도 꽃을 피우고..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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