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중대 멋있죠? 지금은 힘들지만 고진감래..."

[총기 난사사건] 고 이건욱 상병이 가족에게 보낸 10통의 편지

등록 2005.06.21 08:34수정 2005.07.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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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건욱 상병이 그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이건욱 상병이 그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a 고 이건욱 상병. 그는 지난 20일자로 병장으로 특진됐다.

고 이건욱 상병. 그는 지난 20일자로 병장으로 특진됐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어머니'라고 크게 부르고 우리 예쁜 어머니 끌어안고 싶어요. '아버지'라고 크게 부르고 큰절하고 싶어요. '할머니'라고 크게 부르고 우리 할머니 주물러 드리고 싶어요."(2004. 6. 26)

19일 새벽 2시30분 7명의 병사들과 경기도 연천 최전방에서 동료의 총탄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이건욱 상병(20일 병장으로 특진). 위와 같은 그의 작은 희망은 이제 이 세상에서는 이뤄질 수 없게 됐다.

<오마이뉴스>가 21일 단독 입수한 고 이 상병의 편지에는 부모님과 함께 모시고 사는 친할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이 편지는 훈련소 시절(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가족에게 보낸 10여통이다.

3형제 중 막내인 이 상병은 "애교 덩어리"였다고 한다. 힘든 군생활 중이었지만 늘 가족 걱정이 우선이었다.

"설날 연휴도 끝나고 추위도 많이 사그라지었어요.…(중략)…건희형(맏아들) 장사 잘 돼? 가격 내렸으면 잘 되야 할텐데… 어머니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건욱이는 우리 어머니 같은 여자한테 장가가서 효도할께요. 멋진 아버지, 힘들면 항상 아버지를 생각해요. 아버지 같은 강인하고 인자하신 것 배울께요. 우리 할머니! 전역할 때까지 아프면 안돼요. 건욱이가 할머니 용돈 5만원 드릴께요. 맛있는 것 사 드시고 목욕탕도 다니세요." (2005. 2. 14)

위 편지는 이 상병이 GP 근무를 2일 앞두고 쓰여졌다. 이 상병은 이후 3개월 동안의 GP 생활을 마친 뒤 나온 휴가에서 수당을 모아 할머니 용돈을 드렸다.

3형제 중 막내 '애교 덩어리'


편지에는 군대에서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군대 온지 100일도 지나고, 아는 것이 많으니까 자동적으로 할 일도 많아지고… 군대는 잘해도 혼나고 못해도 혼나는 것 같아요." (2004. 9. 19)


"(GP) 올라가면 3개월 동안 어떻게 버텨요? 집에 전화하고 싶은데… 못하면 답답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라에서 임무 부여하면 기꺼이 올라가서 생활하다 올께요." (2004. 11. 28)

GP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최전방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배어나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전시국가라서 위험하지만 군인이라도 1% 이내의 사람밖에 못 간다는 (GP에 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겠습니다." (2005. 2. 14)

모든 군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집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아직도 내 눈엔 내 머리속엔 우리집, 우리 동네, 가족얼굴이 생생한데…. 자야겠어요. 벌써 새벽 2시." (2004. 6. 18 훈련소)

"이제는 집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집에 갈 것에 대한 기다림이 더욱더 절실한 시간입니다." (2005.1.16)

"아직도 내 눈엔 내 머리속엔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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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군생활 중 선임병들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내용도 소개되고 있다.

"지금은 막내고 이등병이라서 모르는 것도 많고 말투도 어설퍼서 매일 혼나고 긴장되는 하루를 살고 있어요." (2004. 7. 31)

"이등병이 아닌 일병이 되니까 일하는 양도 많아지고, 이젠 못하면 욕도 더 많이 먹어요. 그래도 5개월만 참으면 상병 진급합니다. 그때까지 참고 견디겠습니다." (2004. 11. 28)

이 상병이 지난해 10월 13일 쓴 편지를 보면 "지금은 공부 못하고 내년에 공부해볼께요. 부모님께서 원하는 것 한 번 도전해볼께요"라고 적혀있다.

어머니 최선자씨는 "한번은 건욱이가 '엄마 아빠 소원이 뭐냐'고 물어와 '치과의사'라고 말했더니 제대하면 치대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며 "부모님 소원을 위해 수능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효자였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군 입대 전 이 상병은 안산공과대학 호텔외식산업과 04학번으로 재학 중이었다.

"수색중대 멋있죠? 남자라면 한 번 뿐인 군인 멋있게 다녀와야죠. 근데 지금은 힘드니깐 '고진감래'. 나중에 행복하고 기쁜 날이 오겠죠."

여느 대한민국의 청년처럼 '고진감래'를 마음에 새기며 지내왔던 이 상병. 가끔 집에 전화 할 때 "엄마 사랑해"라고 말문을 열었다는 그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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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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