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용두, 양철동이, 물동이에 물지게와 바가지를 총동원해보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냥 있기 뭐해서 나간 것이고 살기 위해 뙤약볕에 나갔습니다.장성군
그예 어제는 동네 아저씨 한분이 도깨비에 홀려 객사(客死)할 뻔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남의 일을 다니며 거들어 하루하루 연명하던 그는 마땅한 벌이가 없자 옆 동네로 목을 축이려고 신작로를 따라갔다.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고 한다.
저 멀리 칠흑 같은 밤 불빛이 하나 보이더니 이내 다가와서는 술꾼을 데리고 장난을 치더란다. 손을 잡고 논두렁으로 끌고 가더니 보릿대만 남은 논에서 씨름을 하잖다. 한판 두판 이어지더니 어느새 열댓 판을 넘기고 있었다. 이젠 일본씨름도 하자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자는 대로 응수하던 아저씨에게 또 다른 제안이 있었다. 다름 아닌 모내기를 누가 더 빨리하는지 내기를 하잔다. 무논에 들어가 밤새 모내기를 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지 모를 일이었다.
한마지기를 거의 끝낼 무렵 날이 환하게 터왔다. 가까스로 술과 잠에서 깨어난 그이는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길을 가던 동네사람이 발견하여 흔들어 깨워보니 반쯤 넋이 나간 사람이 되었다.
"어이 박샌 지금 여그서 뭐한당가?"
"으…도채비 이놈 나한테 왜그냐?"
"뭔소리여. 나란 말이시."
"요망한 놈 가만두지 않을 테다. 봐라 내가 모숭구기 이겼지?"
"허허 이 사람하고는…. 이놈의 날씨가 사람까지 잡는구먼. 어이 일어나더라고."
밤새 아저씨는 취한 건지, 뭐에 홀린 건지 평소 다니지 않던 참난쟁이 쪽 논두렁에 밤이슬을 맞으며 자다가 일어나더란다. 들길과 텅빈 마른 보리밭, 못자리와 마르지 않은 논을 오가느라 옷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흙으로 범벅이었다. 손엔 나뭇가지 하나를 부여잡고 있었다.
내가 들은 도깨비는 참 괴상한 놈이었다. 여름철에 빈번히 출현하여 경계령이 내려지곤 했던 장난꾸러기는 집안 부엌에 있던 몽당 빗자루나 부지깽이에 혼백이 붙어 사람을 밤새 가지고 놀아 진이 빠지게 한다. 이런 때마다 늘 어른들은 우리가 손에 난 물사마귀를 죽이려고 피를 묻히면 "도채비가 붙은깨 조심혀라"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