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물국수를!

시원한 물국수가 불볕더위를 날려줍니다

등록 2005.06.25 11:08수정 2005.06.26 10:5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간단히 만들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물국수

간단히 만들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물국수 ⓒ 한성수

금요일 저녁, 퇴근시간에 아내가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국수를 삶을 테니 빨리 오세요!”

모임이 겹쳐 며칠 동안 계속 술을 퍼마셨는데, 아내는 기어이 국수로 내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사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빵(그러나 아내가 만든 빵은 좋아합니다)이나 수제비, 만두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거의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국수입니다. 아내는 같은 밀가루 음식인데도 국수만 좋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도 그 연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멸치에 새우, 파, 양파, 다시마를 넣고 끓인 육수를 베란다에 식혀 놓았습니다. 이제 삶은 국수를 씻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빡빡 힘을 주어 국숫발을 문질러 댑니다.

“이렇게 해야 미끈거리지 않을 뿐더러 밀가루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고 또 부드러워요.”


지금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이면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 집 우물물을 길어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집은 일가친척이 아니어서 별로 반기지도 않았고, 또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황소만한 사나운 개가 떡하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위를 식힐 별다른 수단이 없던 동네사람들에게는 여름에 없어서는 안 될 우물이었습니다.

여름철 한낮에 찬밥 한 덩어리를 우물물에 말아서 입 속으로 넘기면 목구멍부터 싸늘하게 식혀져 옵니다. 어머니는 어쩌다 한 번씩 오이를 썰어 조선간장을 푼 오이멱국을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그 또한 여름날의 별미였습니다. 그러나 아주 운이 좋은 날이면 국수를 삶아 그 시원한 물에 고추장을 넣고 부추나물을 고명으로 얹어 먹기도 했지요.


아내는 마늘과 고춧가루를 조선간장에 넣은 양념장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제 국수의 맛을 좌우할 고명을 만들 차례입니다. 아내는 부추를 삶아서 조선간장과 참기름에 무친 나물을 만들고 애기호박과 당근을 잘게 썰어서 각 기름에 볶습니다. 오이와 김도 잘게 썰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계란으로 황백지단을 만들어 둡니다.

이제 얼음을 띄워 육수를 더 차게 식힙니다. 국수발을 보시기에 담고 찬 육수를 부은 후 고명으로 장식을 합니다. 양념장을 넣은 국수보시기에는 벌써 찬 이슬이 송알송알 맺혀 있습니다. 나는 젓가락으로 휘휘 두어 번 저어서는 국숫발을 입에다 쑤셔 넣습니다. 아내는 역시 눈을 흘깁니다.

“당신은 제발 그렇게 국수를 드시지 마세요. 우리가 밥을 두 숟가락도 채 못 먹었는데, 당신은 국수 한 그릇을 이미 다 먹었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먹기 때문에 국수를 해주지 않으려는 거예요.”

아내의 가시가 돋친 말이 이어지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국물을 두어 모금 마신 후 다시 국수그릇을 내밉니다. 그 옛날 형님과 내가 ‘국수 빨리 먹기’ 내기를 하면 어머니도 지금 아내처럼 타박을 주었습니다. 보통은 형님이 더 빨랐는데, 10초나 걸렸을까요. 아무튼 두 젓가락 내지 세 젓가락이면 국수 한 그릇이 없어졌습니다.

나는 두 번째 그릇을 여남은 젓가락에 비워 내고서 다시 빈 그릇을 내밉니다. 아내의 잔소리가 이어지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더운 여름의 열기를 국수 한사발로 날려 보내는 쾌감만이야 하겠습니까? 가끔 밖에서 사 먹기도 하는데, 아내가 만든 국수 맛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나는 젓가락을 놓고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꺽’ 트림을 합니다. 물국수 요리가 그렇게 어렵고 복잡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아내는 몇 번을 당부해야 겨우 만들어줍니다. 여러분! 뜨거운 불볕더위를 가시게 할 시원한 물국수, 어떻습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4. 4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5. 5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