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강남과 판교 등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를 더 공급해서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최근 공급확대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다.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른바 '강남벨트'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 이를 보완해주리라 여겼던 판교 신도시의 중대형 평형 아파트 공급물량이 애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수요를 흡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강남, 서초, 송파구 소재 아파트 가격이 중대형 평형 위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상승여파가 분당과 용인, 평촌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와 정부는 이제라도 세금을 통해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생각을 접고 강남과 판교 등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를 공급해서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다.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 부족이 이른바 '강남벨트' 등의 국지적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는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은 한층 세련되고 진화한 공급확대론의 최신 버전이라 할 만하다.
중대형 아파트 부족이 주택가격을 상승시킨다고?
공급확대론자들은 현금의 문제는 주택의 양 - 소형 아파트 - 이 아니고 주택의 질 - 중대형 아파트 - 이라고 하면서, 청와대와 정부가 이런 시장의 변화와 실수요자들의 욕구는 도외시한 채 세금을 통해 가수요를 억제하겠다는 단견(短見)에 사로잡혀 있다고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쉽게 말해 최근의 국지적 주택 가격 상승은 시장의 생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만을 고집한 참여정부에 내리는 시장의 복수라는 것이다.
언뜻 들어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강남권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이 현금의 국지적 가격상승을 낳았다는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이 진정 참일까?
강남권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이 현금의 국지적 가격상승을 낳았다는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은, 아쉽게도 이렇다할 구체적이고도 실증적인 근거가 없기에 이러한 주장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진위를 밝힐 수밖에 없다.
수고롭지만 어쩌랴! 좋은 일은 이루기가 어렵고,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따르는 것이 세상이치인 것을.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이 허구인 5가지 이유
이제부터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이 허구인 5가지 이유를 차근차근 밝히고자 한다.
첫째, 이른바 '강남벨트'에 주택 수요를 촉발시킬 만한 인구 증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강남, 서초, 송파구의 인구추이를 보면 90년대 후반부터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통계를 보면 1996년 55만7533명이던 강남구 인구는 2004년 53만1517명으로 줄었고, 1996년 40만8781명이던 서초구 인구는 2003년 40만220명으로 줄었으며, 1996년 67만1560명이던 송파구 인구는 2003년 62만3267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주택기획과와 서초구 건축과, 송파구 주택과에서 발행한 자료를 보면, 2003년 기준 강남구의 주택보급률은 94%, 서초구는 90%, 송파구 85%에 이른다.
실수요에 의해서 특정지역에 주택 가격 상승이 일어나는 것은 급격한 인구유입이나 주택물량의 절대적 부족이 주요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의 통계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현재 강남권에는 급격한 인구유입도 없으며, 주택물량의 절대적 부족 현상도 없다.
둘째, 지금도 이른바 '강남벨트'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들은 그리 모자람이 없다. 아래〈한겨레〉6월 14일자를 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있는 아파트도 강남권 3개구는 30평 이상이 63%로 서울 평균(54%)보다 높다. 40평 이상은 강남구는 27%로 서울 평균(16%)의 두 배에 가깝고 서초(31%), 송파구(24%)도 훨씬 많다. 강남권 안에서 중대형 평형으로의 이동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셋째, 추가 공급 물량이 넘친다. 아래〈한겨레〉6월 14일자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건교부는 서울 강남지역의 내년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6천 가구 가량 증가한 1만 5천 가구에 육박해 1982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구별로는 강남구 8077가구, 송파구 3857가구, 서초구 3035가구 등이다. 이는 서울시 전체 입주 물량 4만 4508가구의 33.6%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물량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대형이다. 2007년에도 1만 가구 이상이 공급될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판교신도시에 25.7평형 초과 중대형 아파트 등 6343호가 건설되고, 판교 신도시 이외에 7곳에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중대형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전망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대형 평형 아파트의 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가격폭락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넷째, 전세가격의 안정이 두드러진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2001년 51.4%에서 16일 현재 31.7%로 떨어졌으며 분당은 34.4%, 용인도 32.6%에 불과하다고 한다.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에 해당될 만큼 낮다는 것은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서 주택을 여러 채 사놓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특정 지역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으려면, 인구유입의 급증으로 인해 전세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주택 소유자들이 대부분 1가구 1주택을 소유해서 전세를 줄만한 여분의 주택이 적어야 한다. 강남권역은 둘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강남, 서초, 송파 주택구입용 대출비중 대폭 늘어
다섯째, 이른바 '강남벨트'에는 대출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택구입용 가계대출비중추이>를 보면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권은 2001년 1월부터 1년 3개월 간 가계대출 중 주택구입비중이 19.1%에서 48.2%로 1.5배 이상 뛰었고, 서울은 26%에서 53.1%로 100%늘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각각 65%, 49% 늘었다.
특기할 점은 2000년 대비 2003년 집값이 강남 - 서울 - 수도권 -지방 순으로 많이 상승하여 가계대출 중 주택구입의 비중이 높은 순서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남권역에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위에서 조목조목 살핀 바와 같이 강남권에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이 부족해서 국지적 가격 상승이 초래되고 있다는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은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근거가 없는 '선동'에 가깝다.
또 공급확대론자들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일부 왜곡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좋은 예가, 판교에 공급될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물량이 애초 계획과 달리 격감해서 강남권의 가격 상승을 촉발했다는 주장이다.
애초 판교 신도시에 분양될 25.7평 초과 공동주택은 7465호였고 그 중 아파트가 5611호였다. 이것이 공동주택 6343호, 아파트 4566호로 각각 변경되었다. 즉,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고작 1000호가 줄었을 따름이다.
주장하는 이론이나 서 있는 처지가 사뭇 다를 수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관계마저 왜곡하는 공급확대론자들의 위와 같은 태도는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른바 '강남벨트'의 주택 가격 앙등이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고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라는 또 하나의 자료를 덤으로 밝히겠다.
지난 2003년 11월 24일 행자부가 발표한 '전국 가구별 주택소유 현황'을 보면 강남(강남, 서초, 송파구)은 5만5천여 가구가 20만여 채의(평균 3.67채)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4만2천여 가구가 전국에 집을 세 채 이상(평균 5.1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8천여 가구는 아파트만 3채 이상(평균 3.8채)을 소유하고 있었다.
결국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른바 '강남벨트'의 주택 가격 폭등의 배후에는, 불로소득을 노린 투기적 가수요가 도사리고 있었음이 명명백백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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