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투기꾼들에게 백기를 든 것인가?

[주장] 공급확대론의 망령에 당정이 굴복해서야

등록 2005.07.10 18:09수정 2005.07.1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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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발표될 정부의 부동산 종합대책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지난 6일 주목할 만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와전의 우려가 있으니 언론보도를 직접 요약하는 것이 좋겠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6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강남, 분당, 판교 신도시 등 수도권 지역 전역에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을 늘리고, 특히 강남지역 등지의 재건축 규제완화도 긍정 검토키로 했다.

… 당정은 이날 회의에서 ▲부동산 실거래가 파악 등 거래 투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세제보완을 통한 투기이익 철저환수 등 투기수요 억제 ▲중대형 아파트 공급확대 ▲서민주거 안정을 우한 공공부문 역할 확대 등 4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

-<연합뉴스> 7월 7일 '수도권 전역 중대형 아파트 공급 확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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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불패 혹은 공급확대론의 승리?

6일 당정이 합의한 4가지 원칙 중 단연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강남 등지에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리겠다는 합의이다. 이 합의가 주목을 받는 것은 기존에 정부가 천명했던 원칙의 중대한 수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6.17 회의 이후 정부는 부동산 거래 투명화, 초과이익 환수를 통한 투기억제, 공공부문 역할 확대의 3대 원칙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대내에 표명했다.

이른바 부동산 3대 원칙이 나온 근저에는, 현금의 국지적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런데 6일 당정이 새로이 합의한 '중대형 아파트 공급확대'라는 원칙은, 현금의 국지적 부동산 가격 앙등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에서 찾기 보다는 '공급 부족'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중대한 방향수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세간에서는 '공급확대론'과 '투기적 가수요 억제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6일 당정이 합의한 원칙을 보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투기적 가수요는 없다!

그렇다면 여야정치권과 보수언론, 경제관료, 주류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강력히 옹호되고 있는 '공급확대론'은 얼마나 현실을 잘 설명하며, 이론적으로도 옳은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먼저 이른바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도록 하자!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고 강남, 분당, 용인, 과천 등지의 아파트 가격이 국지적으로 상승하는 원인은 무엇보다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강남 등지에 재건축 아파트 규제 완화 등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 줄만한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충분히 늘려야 한다"

공급확대론자들-이들은 자신들을 '시장주의자'라고 부른다-은 현재의 국지적 부동산 가격 폭등이 투기적 가수요에 의한 것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수요와 투기적 가수요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구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부족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주택공급을 늘리라는 시장의 신호이므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공급확대론자들의 핵심적 주장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부동산도 상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언뜻 들어보면 이들의 주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경제학상으로도 옳은 듯 하다. 그러나 이들은 투기적 가수요를 인정하지 않는 치명적 잘못을 저질러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엉뚱하게 제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부동산 가격 앙등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실수요로 볼 것인지에 따라 처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즉,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로 볼 경우 부동산 세제개혁 등을 통하여 투기적 가수요를 제거하는 정책이 채택되어야 할 것이고,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실수요로 볼 경우 택지와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실수요로 볼 것인지, 투기적 가수요로 볼 것인지 여부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공급확대론자들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이들은 말하곤 한다. "투기적 가수요라는 말이 경제학 교과서에 있나요?"

놀랍게도 공급확대론자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개념이나 현상은 세상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쯤 되면 기존 경제학 교과서-이들의 압도적 다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기술되었다-에 대한 공급확대론자들의 신뢰는 거의 종교적 맹신의 수준이라 할 만하다.

경제학 교과서가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면 경제학 교과서를 바꾸어야 할 일이지 경제학 교과서에 없으니 현실에서도 투기적 가수요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태도일까?

불로소득을 쫓는 '투기적 가수요'가 저금리 등을 원인으로 한 풍부한 유동성을 원군으로 하여 간단없이 부동산 가격 메커니즘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 현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핵심임을 감안할 때, 학문적 도그마에 사로잡혀 공급확대론을 외치는 자칭 시장주의자들의 행태는 무익함을 넘어 유해하기까지 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통계는 공급확대론이 거짓임을 증명한다

실증적인 통계-시장주의자들이 그렇게도 애용하는-들도 공급확대론이 완전한 허구임을 명명백백히 증거하고 있다. 이제부터 '강남 등지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부족'이라는 최신판 '공급확대론'이 '지적 사기'라는 실증적 증거를 낱낱이 들어보겠다.

첫째, 실수요에 의해서 특정지역에 주택 가격 상승이 일어나는 것은 급격한 인구유입이나 주택물량의 절대적 부족이 주요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강남벨트'라 불리는 강남, 서초, 송파구의 인구추이를 보면 90년대 후반부터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향상되어 지금은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둘째, 이른바 '강남벨트' 등에 주택 소유 편중이 극심하다. 지난 2003년 11월 24일 행자부가 발표한 '전국 가구별 주택소유 현황'을 보면 강남(강남, 서초, 송파구)은 5만5천여 가구가 20만여채(평균 3.67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4만2천여 가구가 전국에 집을 세 채 이상(평균 5.1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8천여 가구는 아파트만 3채 이상(평균 3.8채)을 소유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통계는 2000년 이후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취득자의 60% 가량이 3주택 이상의 다주택 보유자라는 사실이다. 즉 다주택 보유자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가격상승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권역에 소재한 아파트들을 집중적으로 매수한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강남 지역의 평균 아파트가격은 2000년 1월 3억 7700만원이었지만 올 6월에는 10억 6500만원으로 무려 2.82배나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 이른바 '강남벨트' 등에는 대출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열린우리당 오제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과 경기도 분당, 용인 지역의 올해 주택담보 대출은 지난해 말과 비교할 때 7.9%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증가율보다 무려 세 배에 가깝다.

또한 올 들어 강남, 분당, 용인의 주택 담보대출증가액이 전국 증가분의 43%를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같은 기간 전국평균 집값상승률이 1.6%였는데 반해 이 지역 집값은 8.4%나 올랐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서 강남, 분당, 용인 등지의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매수한 결과 이 지역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이 전국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넷째, 전세가격의 안정이 두드러진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2001년 51.4%에서 16일 현재 31.7%로 떨어졌으며 분당은 34.4%, 용인도 32.6%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주택 소유자들과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강남, 분당, 용인 등지의 아파트를 사재기 하고 있는 마당이니 주인이 살지 않는 빈집이 넘쳐나는 것은 정한 이치일 것이고, 그 당연한 결과로 전세가격은 유례없이 안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정, 공급확대론 미련 버려야

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금의 강남, 분당, 용인 등지의 국지적 아파트 가격 상승의 진정한 원인은,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불로소득을 쫓는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다. 이론과 현실이 모두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렇듯 공급확대론의 허구성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시장참여자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해도 좋다는 신호를 줄 참인가?

다행히 7일 이후 여당의 정책 수뇌부들이 '중대형 아파트 공급확대' 원칙이 당정 간에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사태 수습에 나서고는 있지만. 여당의원들 그 중에서도 경제통이라는 의원들이 공급확대론에 미련을 버리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8월에 발표될 참여정부의 부동산 종합대책은 참여정부의 운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부동산 문제가 국민경제 더 나아가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이번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마저 시장참여자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된다면, 참여정부의 국정 후반기는 말 그대로 식물인간 상태에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의 실패는 한 정권의 실패만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꾼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이미 부풀 데로 부푼 부동산 거품은 폭발점을 향해서 줄달음칠 것이고, 결국 붕괴된 부동산 거품은 국민경제 전체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 자명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투기의 근본원인이 투기적 가수요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보유세 강화 등을 입법화해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하는데 총력을 경주할 시기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바야흐로 정부와 투기세력 간의 건곤일척의 승부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싸움에서는 패배하면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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