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선생인 어머니로부터 배운 지혜

[산채원 촌장일기 11] 산나물 재배 섞어짓기에 해답이 있다

등록 2005.06.28 12:03수정 2005.06.29 09:2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는 내 농업선생님이었다


콩밭에 열무를 심었던 어머니는 내 선생님이었다. 비를 촉촉이 맞아 잘 자라고 있겠네.
콩밭에 열무를 심었던 어머니는 내 선생님이었다. 비를 촉촉이 맞아 잘 자라고 있겠네.김규환
수건을 두른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김을 매고 계셨다. 200여 평 되는 밭은 사실 콩밭이 아니다. 무슨 전시회라도 열려는 걸까? 땅이 좁아 섞어 심어놓은 건지 콩밭이라기보단 작은 도서관이다. 밭에서 나는 모든 작물이 함께 어울려서 자란다. 어머니와 소년이 밭에 있는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다.

젤 위엔 옥수수와 수수가 있었고 그 아래로 율무와 기장, 조가 고개를 쑤욱 내밀고 있다. 차차 아래로 콩 밭이다. 고추 키도 유난히 작아보였다. 오이와 호박도 밭 가장자리에 자리를 차지하며 산 쪽으로 쭉쭉 뻗어나갈 준비를 한다. 내 눈엔 그것이 다였지만 20여 가지가 넘게 뒤섞여 있다. 뽕밭에 말이다.

곰취 밭엔 키가 크고 잎이 넓은 피마자(아주까리)를 심어봤다. 내년에 우리 식구들도 이사를 가야하니 1년생을 심었다.
곰취 밭엔 키가 크고 잎이 넓은 피마자(아주까리)를 심어봤다. 내년에 우리 식구들도 이사를 가야하니 1년생을 심었다.김규환
호기심이 많았던 나였다.

"엄마 왜 콩밭에다 무시(무) 씨를 뿌려?"
"땅뙈기가 좁기도 하지만 이렇게 심으면 여름에도 부드럽게 자란단다."
"참말로?"
"잉. 병치레도 하지 않어."
"왜라우?"
"한 가지만 많이 심어 놓으면 달짝지근한 것이 많이 생길 것이 아녀?"
"그런디라우?"
"긍께 벌레와 병이 모두 모이게 되쟈?"
"잉."
"조금씩 한꾼에 숭구면 그럴 일이 없다더라."

어릴 적 어머니는 내 농업 선생님이었다. 걷기 시작하여 일곱 살 때부터 지게를 지고 쫄래쫄래 밭을 따라다니며 직파와 김매기를 돕다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는 든든한 애제자가 되어 있었다. 몇 년 따라 다니다보니 어머니 의중을 알아차리기도 쉬웠다.


중학교에선 내리 3년간 농업에 대한 기초이론을 배웠다. 웬만한 건 집에서 다 해본 것이라 농업과목은 100점을 놓치면 못내 아쉬웠다. 친구들도 전략과목이 농업이었던 건 다들 농군의 아들이라 학교를 파하면 곧장 들로 나가 실전을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콩밭에 열무를 심은 까닭


참나물 밭에 콩을 옮겨 심었는데 며칠 전에 가보니 곧 따라 잡을 기세였다. 참나물도 이젠 땅 기운을 한껏 받기 시작했다.
참나물 밭에 콩을 옮겨 심었는데 며칠 전에 가보니 곧 따라 잡을 기세였다. 참나물도 이젠 땅 기운을 한껏 받기 시작했다.김규환
콩밭에 심으면 정말 부드러워질까? 정말 그렇다.

위아래가 층이 지게 재배하면 첫째 적당한 그늘이 있어 수분을 유지해준다. 둘째 콩과식물 고유 특성인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는 질소를 잎에서 흡수하여 뿌리에 모아 토양을 거름지게 한다. 척박한 땅에도 콩이 자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콩밭에 비료를 줬다간 잎만 무성할 뿐 주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큰 낭패를 맛본다. 질소덩어리가 뭉쳐 있으니 옆에 있던 작물도 잘 자라게 하며 같은 콩과(荳科)인 아카시나무가 아무 땅에서나 미치도록 잘 자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냥 올려 본 콩 뿌리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 2개.
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냥 올려 본 콩 뿌리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 2개.김규환
사실 유기농도 그렇다. 예전 어른들이 하던 방식대로 농사를 지으면 화학비료값 줄이기에도 좋고 그 냄새 풀풀 나는 농약통을 지고 다니다 쓰러지는 일마저 없다.

우린 최근 20여년 동안 편리한 방법만을 찾고 대량생산을 기치로 도시와 농촌이 단절된 생활을 하다보니 유기농법을 다 잊어버렸다. 이제 와서 다시 농법을 개발한다거나 수입하는 모습에 무척 씁쓸한 기분이다. 다시 찾으면 그만일 텐데 말이다. 새로운 농법이 아닌 우리 어른들이 늘상 해왔던 농법을 되찾으면 그게 바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나도 콩밭에 열무를 심었다. 우리는 그늘이 지면 잘 자라지도 못하거니와 볕이 없어 쉽게 죽을 걸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단 며칠만 잘 버텨주면 오히려 대단한 신의 선물을 받는다. 7, 8월에도 콩 아래에서 자란 열무를 통고추 갈아 물김치를 담그면 얼마나 야들야들 부드럽고 맛이 좋았던가.

연중 부드럽고 향 좋은 산나물을 얻는 비결

된장과 고추장에 박아둔 곰취, 참나물, 더덕, 엄나무순, 두릅, 땅두릅, 머위 장아찌를 며칠 전부터 꺼내먹기 시작했다. 입맛 없을 때 물 말아서 먹으면 그만이다.
된장과 고추장에 박아둔 곰취, 참나물, 더덕, 엄나무순, 두릅, 땅두릅, 머위 장아찌를 며칠 전부터 꺼내먹기 시작했다. 입맛 없을 때 물 말아서 먹으면 그만이다.김규환
일단 빈 땅에 콩을 심는 건 콩잎이 무성하게 자라기 전까지만 김을 매주면 더 이상 아래에서 절기마다 얼굴을 바꿔 올라오는 잡초를 맬 필요가 없다. 덧붙여 강렬한 태양빛에 갈수록 딱딱해지는 채소를 부드럽게 먹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준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곰취와 참나물 등 산나물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면 대체로 수확기간이 아주 짧다. 그게 산나물 재배를 가로막아 전통 음식 발전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농민 처지에선 장아찌에 박아두기도 한계가 있고 말리자니 속이 쓰리고 아리다. 도시 소비자는 상추가 맛없는 철엔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근 한 달은 되어야할진대 실상은 보름 이내이다 보니 그 한철 한두 번 따먹고 제대로 즐기자면 이미 세어져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 맛을 오래 가까이 하지 못하매 서럽기까지 한다. 그게 바로 산나물 등 우리 자생 산야초가 시장에서 일반 채소와 비교하여 경쟁에서 밀리는 주요한 원인이다.

이른 봄 새싹이 났을 때 느끼는 보드랍고도 진한 향이 배어나오는 산나물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방법, 대안을 이미 우리 어른들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봐도 귀한 나물이 자라는 곳은 숲이 우거진 활엽수림 아래였다.

농사꾼의 자식인 내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은 섞어짓기다. 섞어짓기 혼작(混作)은 같은 경작지 땅을 놀리는 일이 없이 온전히 활용이 가능케 하여 단위면적당 소출을 최대로 끌어 올린다.

역발상을 해보았다. 어린 엄나무가 뿌리 박기를 하는데 무척 힘들어해서 아예 키가 큰 옥수수를 심어 놓았더니 가뭄에도 끄덕없이 죽지 않고 모두 살았다.
역발상을 해보았다. 어린 엄나무가 뿌리 박기를 하는데 무척 힘들어해서 아예 키가 큰 옥수수를 심어 놓았더니 가뭄에도 끄덕없이 죽지 않고 모두 살았다.김규환
둘째, 섞어짓기는 잡초제거에 들어가는 품을 줄이니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셋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어짓기 연작(連作)의 피해를 덜고 병충해로부터 자유로우니 안전한 나물을 생산할 수 있다.

여기에 자연 상태에서 자란 나물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게 되는 바 그것은 바로 습도와 온도를 적절히 조절해준다는 데 있다.

일단 산채의 한 축이 된 뽕나무, 엄나무, 두릅, 오가피, 옻나무, 가죽나무를 각각 널찍하게 심어둔다. 사이사이 하부에 취나물, 곰취, 곤달비, 수리취, 곤드레 따위 진짜 얻고자하는 나물을 심는 방식이다.

위에서 잎이 피기 전에 한번 수확하고 봄비를 축축이 맞아 잎이 무성해지면 그늘이 생기고 난 뒤에 다시 생산한다. 장마철에 한 번 더 거두고도 8월까지 품질 좋은 나물을 얻을 수 있으니 대체 몇 번인가.

섞어짓기 이로운 점 한두 가지 아니다

당뇨에 좋고 변비치료와 비만에 특효라는 뽕나무를 적절히 활용하면 국수나 수제비, 쌈, 장아찌로 좋고 차로 끓여 먹어도 좋다. 벌써 아내는 차를 다 끓여 먹었다고 한다.
당뇨에 좋고 변비치료와 비만에 특효라는 뽕나무를 적절히 활용하면 국수나 수제비, 쌈, 장아찌로 좋고 차로 끓여 먹어도 좋다. 벌써 아내는 차를 다 끓여 먹었다고 한다.김규환
그늘은 단지 햇볕만 가려주는 게 아니다. 보습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도록 늘 습기가 차 있게 돼 있다. 온도를 최저로 끌어내리는 건 시설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도 하거니와 기대 효과는 적당한 차광과 습도 조절에 의한 방법에는 미치지 못한다. 야생 상태에 가깝도록 환경을 조성하면 작물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한몫 단단히 할 수 있다.

이 방법이 가장 잘 적용된 사례는 산림 관리에 있다. 산림청에서는 가능한 한 어린 묘목은 밀집하여 심도록 하는 한편, 키 큰 나무 아래에 묘목을 심어 일정한 기간 원 줄기 이외에 쓸모없는 가지가 나오는 걸 방지하는 방편으로 수하식재(樹下植栽)를 권장하고 있다.

적절히 해가림을 함으로써 직경생장을 돕고 맹아의 창궐을 막으며 서쪽 사면(斜面) 작물에 해가 되는 빛을 차단하는 것이다. 나중에 적정한 거리를 두고 간벌을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생채기나 옹이가 없는 질 좋은 목재를 얻는 게 가능하다. 집을 지을 때도 서쪽에 나무를 심는 건 같은 이치다.

몇 가지 추가해야 할 사항이 있다. 한 곳에 동일 작물을 1000평 이상 짓지 않고 멀찌감치 떼어 재배한다. 끝으로 토양과 기후조건에 맞는 적재적소를 찾아 자연스레 키우자는 것이다. 녹비작물(綠肥作物)인 자운영이나 콩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도 발휘해야겠다. 요즘 농사는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평이 조금 안 되는 묵은 논을 빌려 온갖 채소와 산나물을 심었다. 근 70여 가지로 올해 확보할 작물은 대체로 구한듯 싶다. 어젠 오이도 4개나 따왔다. 굳이 시장에 갈 일 없으니 잃었던 입맛을 되찾은 기쁨으로 산다.
200평이 조금 안 되는 묵은 논을 빌려 온갖 채소와 산나물을 심었다. 근 70여 가지로 올해 확보할 작물은 대체로 구한듯 싶다. 어젠 오이도 4개나 따왔다. 굳이 시장에 갈 일 없으니 잃었던 입맛을 되찾은 기쁨으로 산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산채원(山菜園)에 먹을 수 있는 나물을 모두 모아 유기농으로 재배하려고 귀향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요새는 밭에 오가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답니다. 봄나물 장아찌 꺼내 먹는 재미도 쏠쏠하군요. 함께 드실 분은 cafe.dum.net/sanchaewon으로 놀러 오십시오.

덧붙이는 글 산채원(山菜園)에 먹을 수 있는 나물을 모두 모아 유기농으로 재배하려고 귀향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요새는 밭에 오가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답니다. 봄나물 장아찌 꺼내 먹는 재미도 쏠쏠하군요. 함께 드실 분은 cafe.dum.net/sanchaewon으로 놀러 오십시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