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눈물에는 넉넉함이 배어있습니다

등록 2005.06.29 08:02수정 2005.06.2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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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넘으면 세 가지 이상한 징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첫째는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집니다. 둘째는 이빨이 흔들립니다. 셋째는 눈이 흐릿해집니다.


저는 지금 40대입니다. 정확히는 48살입니다. 이미 제 머리는 반백이 다 되었습니다. 새치를 솎아내기에는 제 흰머리가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심했으면 아는 분이 제게 염색약을 선물까지 했겠습니까.

머리카락만 그렇게 새버린 게 아닙니다. 이빨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금니 2개는 이미 2년 전에 빠졌습니다. 치과에서는 이빨을 심어야한다고 하는데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 내기가 여간 빠듯한 게 아닙니다.

두 눈 역시 좋지 않습니다. 눈가죽이 눈에 띄게 축 처졌습니다. 세파에 찌들어서 그런지 흰자위에 실핏줄이 여러 갈래 뻗쳤습니다. 아직 안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작은 글씨라도 읽을 때면 고개를 뒤로 쭉 빼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저는 20대의 총기와 30대의 열정을 잃었습니다. 그 많던 꿈도 대부분 접었습니다. 벌써 노후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래도 저는 좀 낫습니다. 공무원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년까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아닌가봅니다. 언제 그만둬야할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40대를 위기의 세대라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세대가 바로 40대입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40대야말로 돌연사 위험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물론 돌연사 위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 또한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저는 이것을 스트레스에서 오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제 저는 직장 동료인 김 계장과 술을 한잔했습니다. 횟집이었습니다. 퇴근 후에 하는 한 잔의 술은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입니다. 술집에서 중년의 남성이 할 얘기가 뭐 있겠습니까. 가족과 직장과 건강 얘기 아니겠습니까. 우리 큰애가 수학을 못한다고 하자 김 계장이 껄껄 웃습니다. 자기 큰애는 국어를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a 왼쪽이 김 계장이고 오른쪽이 필자입니다

왼쪽이 김 계장이고 오른쪽이 필자입니다 ⓒ 박희우

제가 요즈음 시력이 자꾸만 떨어진다고 하자 김 계장이 안경을 벗습니다. 그리고는 허공에 손을 휘저어봅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심 봉사가 따로 없습니다. 김 계장 하는 모습이 딱 심 봉사입니다. 저는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김 계장이 한 마디 합니다.


“형님, 사무관 승진공부 안 합니까?”

저희는 사무관 승진할 때 시험을 쳐야합니다. 저는 잠시 당황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머뭇거릴 수도 없습니다. “해야지, 해야지”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제 입사동기들은 지난해부터 사무관으로 승진하고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3명이 승진 발령 났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저는 그제야 김 계장의 속내를 눈치챕니다. 어제 술자리는 김 계장이 저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김 계장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승진에는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도 김 계장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뿐입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장어 국을 끓여놓았습니다. 웬 장어 국이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빙긋 웃습니다. 가장이 건강해야 집안이 온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아내는 지금도 10년 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아내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옷 한 벌 사 입지 않으면 한 달 생활비가 빠진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장어국 좀 드세요?”
“배가 부르오.”
“제 성의를 봐서라도 한 그릇 드세요.”

아내는 기어이 작은 그릇에 장어국을 담아옵니다. 저는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합니다. 그런데 먹다보니 그게 아닙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고소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저는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합니다. 아내가 활짝 웃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만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대부분의 40대가 이렇게 살고 있을 겁니다. 장어국 한 그릇에도 눈시울을 붉히는 세대가 바로 40대 아니겠습니까.

흔히들 40대를 불혹의 세대라고 합니다. 미망에 현혹되지 않는 세대가 바로 40대라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도 눈물만큼은 전 세대를 통틀어 40대가 가장 많을 겁니다. 40대는 작은 정성에도 곧잘 눈물을 흘립니다. 저는 40대의 눈물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40대의 눈물은 그 어떤 눈물보다도 각별합니다. 40대의 눈물은 금방 구워낸 고구마처럼 따뜻함이 있습니다. 40대의 눈물은 누구든 품에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40대의 눈물은 진솔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40대의 눈물을 이렇게 부릅니다.

“40대의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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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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