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반환미군기지 문화유산 조사 서둘러야

파주 찰스블럭, 미군기지 훼손 대표적 사례

등록 2005.07.04 14:00수정 2005.07.05 14:20
0
원고료로 응원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전세계 미군의 재배치가 추진되고 있다. 주한미군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통폐합을 위해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LPP)협정에 따라 미군공여지가 반환되거나 신규 공여가 이뤄지고 있다. 주한미군측은 LPP협정에 명시된 반환시기보다 빨리 반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통폐합이 예상보다 진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환 미군공여지는 ▲LPP협정, 개정협정에 의한 반환 ▲용산기지협정에 따른 반환 ▲주한미군의 10대 임무 이양에 따른 반환 ▲일반 SOFA과제(수시반환) 등에 근거해 추진된다. 따라 반환되거나 신규 공여되고 있다.

반환미군공여지는 환경관련특별양해각서와 이행합의서 등을 통해 환경오염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오염사고 발생이후 처리내용만 담고 있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이 한반도에 불법 주둔해 훼손하고 짓뭉개버린 문화유산에 대한 한미간의 합의조항이 전무하다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파주 스토리사격장 등의 문제를 통해 한미SOFA합동위원회 환경분과위 산하에 공동실무작업반이 설치되긴 했지만 아직도 본격적인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말 경 한미간 상견례를 한 이후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미측 반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재 미국 본토로 후송된 관계로 정상적인 만남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미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형식적인 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군이 수십 년 간 주둔하며 불법적으로 훼손한 문화유산을 점검하고 그 책임을 물을 방책도 없이 미군기지는 반환되고 있다. 미군주둔지 어느 곳에 문화유산이 존재했고 어떻게 훼손되어 사라졌는지조차 한국정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미군이 가지고 있는 기초조사자료에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역사가 일천한 미국의 수준에서 수천 년 간 켜켜이 쌓여온 한민족의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a 파주시 봉서산에 자리하고 있는 미군공여지 '찰리블럭' 입구. 봉서산성 위에 주저앉아 문화재를 훼손했다.

파주시 봉서산에 자리하고 있는 미군공여지 '찰리블럭' 입구. 봉서산성 위에 주저앉아 문화재를 훼손했다. ⓒ 박신용철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문화유산, 미군은 떠나면 그만이고 반환받은 뒤 문화재지표조사를 통해 문화유산의 흔적을 발견한다 해도 원형이 훼손되어 가치가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역사적 연관 고리를 찾기 어려워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


반환받고 나서 미군에 의한 문화유산 훼손이 확인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것이 미군공여지를 반환받기 전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LPP협정, 용산협정에 의해 반환되는 공여지는 그나마 존중받는 격이다.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태도로 모든 계획수립 시 사전에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하도록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SOFA 과제(수시반환)로 반환되는 공여지는 대한민국 주권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소위 수시반환은 한미양측이 불필요하거나 필요하다고 요구되는 곳을 합의하에 반환받거나 신규 반환하는 것을 말하는데 국방부조차 수시반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절차상은 한미SOFA합동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미군의 처분만 기다리는 꼴이다.

이런 곳이 바로 파주시 봉서산에 위치한 봉서산성이다. 산봉우리에는 주한미군의 AFKN 송신소로 이용된다는 미군시설이 들어서 있고 아래 7부~8부 능선에는 한국군 포대 진지가 구축되어 있다. AFKN 송신소는 미군 방송 송출탑이지만 실제는 정보부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경기도 파주시 주내면 봉서리에 위치한 214m 높이의 봉서산.

"백제시에 축조했는데 선조조에 중수하였다. 둘레가 2,905척이며 대로의 요충지로 우뚝 솟아 그에 상대할 만한 봉우리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미군 송신소가 있는 봉서산이 백제시대 축조된 성이었다는 기록은 <동국여지지> <대동지지> <조선보물고적자료> 등의 문헌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육사박물관이 1994년 경기도 파주시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에도 봉서산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봉서산성은 봉서산의 9부 능선상 굴곡을 따라 석재로 축조된 전형적인 산성으로 높이 3m, 길이 1천여m에 달했던 산성이다. 현재 원형대로 남아 있는 곳은 없고 붕괴된 형태로 북서부 지대에 도합 1백여m정도와 동남부 지대 산성의 기단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일부가 남아 있다.

a 석축을 기준으로 윗쪽에는 찰리블럭이 자리하고 있고 아랫쪽은 한국군 포대 교통로가 산성을 훼손해 들어서 있다.

석축을 기준으로 윗쪽에는 찰리블럭이 자리하고 있고 아랫쪽은 한국군 포대 교통로가 산성을 훼손해 들어서 있다. ⓒ 박신용철

봉서산성이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 1593년 권율 장군은 28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행주산성에 주둔해 3만여 명의 왜군을 격퇴시켰다. 행주산성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얻은 승리였지만 전면적인 공세나 장기전에는 취약했다. 이때 이전지로 선정된 곳이 바로 봉서산성(당시 명칭은 파주산성)이다.

왜군은 행주산성의 대패를 만회하려 했고 봉서산성으로 이동한 권율 장군을 위시한 조선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왜군은 봉서산성까지 진격해 공격하려 했지만 주위에서 배회하다가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지형적으로 봉서산성 주위는 평야지대여서 산성을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이었고 봉서산까지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기암절벽 등으로 산세가 험하고 흙산으로 산을 타고 산성에 올라 공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백제시대 축조되어 임진왜란 시 조선군 군사전략요충지로 톡톡한 역할을 해낸 봉서산성은 1963년 주한미군에게 공여되면서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조사한 대로 원형대로 남아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미군이 문화유산 위에 깔고 앉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현장을 방문한 결과, 단순한 AFKN 송신소가 아니었다. 미사일 4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도 해당 지자체도 봉서산에 문화유산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지정문화재가 아니면 법적, 행정적 책임이 없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방부는 한미SOFA합동위원회에서 다루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미군은 한국민의 생존권과 생명을 담보로 불법적으로 공여지를 사용해왔고 각종 살인, 강간 등 인명피해와 환경오염 등을 유발시켜왔다. 이제는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이 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사이에 수많은 역사의 현장이 미군에 의해 사라져 간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미군공여지 상당수에 문화유산이 존재했다. 미군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몇 십 년 주둔 동안 원형이 훼손되고 역사적 연관성을 파헤칠 고리들은 사라져 갔다.

LPP협정상 폐쇄시기와 반환시기 사이에는 평균 1년 가량의 공백이 발생한다. 미군이 기지를 반환하기 위한 정리작업에 필요한 시간이다 미군에게 공여지를 반환받은 후에는 훼손된 문화유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폐쇄된 기지에 대한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하고 훼손책임이 발견되면 명백히 물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라는 말처럼 이제라도 미군공여지에 대한 전면적인 문화유산조사와 정부차원의 보존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바로 잡는 길이며 미래세대에 올바른 문화유산을 남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소식지 <평화누리 통일누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소식지 <평화누리 통일누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