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몬드가 주도한 '무차별 파괴' 후폭풍

[한국전쟁 산성리 오폭의 진실②] 도진순 창원대 교수 기고

등록 2005.07.04 18:59수정 2005.07.0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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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 자락의 산간마을 산성리에 무차별 폭격이 있었다. 당시 마을에 남아있던 '네이팜' 탄피.
1951년 1월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 자락의 산간마을 산성리에 무차별 폭격이 있었다. 당시 마을에 남아있던 '네이팜' 탄피.안동MBC 제공

1951년 1월 19일 산성리 폭격은 당일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여러 차례 보고됐다. 그러나 한국군 2사단에서 실제 조사한 폭격 결과와는 너무나 달랐다. 아래 1951년 2월 3일자 [문서 3]을 보자.

성공적인 폭격 결과로 136명의 민간인 사상자 발생?

[문서 3] KMAG의 건의가 담긴 보고서(1951년 2월 3일자).
[문서 3] KMAG의 건의가 담긴 보고서(1951년 2월 3일자).
산성동 피해 상황(1951. 2. 3)
인명
피해
사망남 8명여 26명합 34명
중상남 20명여 22명합 42명
경상남 14명여 16명합 30명
실종남 14명여 16명합 30명
가옥소실62채
파괴7채
ⓒ KMAG Report
[문서 3]에 따르면, 산성리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는 136명이나 발생하였던 반면(1항), 적군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2항). [표]로 정리한 민간인 피해 상황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종자가 30명으로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연이은 네이팜 폭격으로 시신이 지나치게 손상돼 신원 확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실종자의 숫자는 폭격의 강도와 비례한다.

둘째, 여자(80명)가 남자(56명)보다 인명 피해가 훨씬 심하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격 당시 남자들은 노인과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무하러 갔고, 여자들은 마을에서 모여 길쌈을 하다 많이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 자료들을 보면 "여자와 아이만 있기 때문에" 폭격을 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사상자 가운데 여자·아이의 비율은 폭격의 정당성과 반비례하며, 여자 사상자가 많다는 것은 산성리 폭격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이다.

셋째, 실제 피해는 더 심했겠지만 일단 한국군 2사단의 보고만 보더라도 피해 규모가 컸다는 점이다. 136명에 달하는 사상자, 69채에 달하는 가옥 손실은 마을이 완전히 초토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주민들은 집이 산의 경사면에 바로 붙어 있어서 폭격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집들이 불탔다고 증언했다.

[문서 3]에 따르면, 주한미군사고문단(KMAG)은 미 8군에 산성리 폭격사건을 조사할 것을 권유했다(5항). 이로인해 미 8군과 미 5공군의 감찰감이 합동으로 일주일간 조사해, 1951년 2월 13일 양쪽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것이 산성리 폭격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보고서'이며, [문서 4-1]과 [문서 4-2]는 그 초록이다.


학가산 적정, 신전동 소개, 산성리 폭격, 결론은 오폭

[문서 4-1] 합동조사보고서(1951년 2월 13일) 중에서.
[문서 4-1] 합동조사보고서(1951년 2월 13일) 중에서.

이 '합동조사보고서'에서 비로소 산성리를 폭격한 이유와 과정이 비교적 자세하게 밝혀져 있다. 이에 의하면 인근 882고지(학가산)에 북한군 10사단이 결집한다는 적정(敵情)이 있었으며(4항), 뛰어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882고지(학가산)에서 2마일도 되지 않는 최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5항) 산성리가 폭격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지역의 모든 마을"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리고 난 뒤 폭격하였다고 주장한다(7항). 이러한 적정(敵情)과 소개령은 폭격이 정당하다([문서 2-2]의 14항)는 결론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경북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과 산성리·신전리 일대.
경북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과 산성리·신전리 일대.파란닷컴 지도
'합동조사보고서'는 "문제지역의 모든 마을"(7항)이라는 표현으로 애매하게 호도했지만, 폭격 이전 학가산 주변에서 적정(敵情)이 여러 차례 보고됐고, 소개령이 떨어진 곳은 산성리가 아니라 신전리였다.

산성리와 신전리는 자연 여건이 비슷하지만, 학가산 정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반대편에 있다('지도' 참고).

학가산 서남 측면인 산성리(좌표 DR6457)는 폭격 이전 한 번도 적정이 보고되지 않았고 소개령도 없었다. 반면, 학가산과 동북 측면의 신전리에는 여러 차례 적정이 보고됐고, 소개령으로 주민들이 피신했다. 그러나 폭격된 곳은 산성리었다. 즉 산성리 폭격은 신전리로 착각한 명백한 오폭이었다.

폭격 합리화의 논리

[문서 4-2] 합동조사보고서(1951년 2월 13일) 결론부.
[문서 4-2] 합동조사보고서(1951년 2월 13일) 결론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동조사보고서'의 결론([문서 4-2])에서는 학가산의 적정(14항)과 신전리에 대한 소개령(17항)을 "인근지역", "모든 마을" 등의 표현으로 물타기해 산성리 폭격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합동조사보고서'의 결론에서 재미있는 것은 "폭격 당시 폭발(explosions)이 있었기 때문에 적군의 군수물이나 연료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폭격을 애써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6항). 그러나 다른 한편, '보고서'는 "마을 사람이 민간인들이 북한군인지, 남한군인지, 게릴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오폭을 변명(13항)하고 있다. 민간인 여부는 분간하지 못하면서도 폭발은 적의 군수물에 의한 것이라고 분간할 수는 있다는 논리다.

[문서 5] 최종보고서(1951년 3월 13일) 중에서.
[문서 5] 최종보고서(1951년 3월 13일) 중에서.

'합동조사보고서'는 "더 이상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19항)는 것을 최종 권고사항으로 해 1951년 2월 13일 제출됐다. 그 후 한 달이나 지난 3월 13일에야, 미 8군은 리지웨이의 지시(By Command of Lieutenant General Ridgway)로 '합동조사보고서'의 마지막 조항을 결론으로 요약해 "폭격은 정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주한미군사고문단에 통고했다(3의 2항).

최종보고서는 폭격 횟수도 축소했다. '합동조사보고서'에서는 네이팜이 구사된 이날 14시 50분의 제1차 폭격과정도 자세하게 수록했다([문서 4-1]의 10항). 더욱이 정찰임무보고에 의하면 1951년 1월 19일 15시 40분에도 네이팜 폭격이 있어서, 산성리는 세 차례나 폭격을 당했다. 그러나 미 8군에서 '최종보고서'를 통고하면서 다시 폭격은 네이팜이 없는 3차 폭격 하나로 축소됐다([문서 5]의 1-c항).

"오폭 아닌 오폭"의 비밀

2005년 2월 안동 MBC의 강병규 PD는 미국 취재 중에 이상한 일을 경험하고 당혹해했다. 그것은 산성리 폭격에 직접 관련된 미군들, 즉 산성리 폭격을 처음 요청했던 187연대의 스튜어트(Stuart) 대위, 정찰기 조종사나 관측자들, 심지어 산성리 폭격의 문제점을 전달한 주한미군사고문단의 쿠취(Cooch) 대위까지도, 산성리 폭격이 오폭이라는 것은 물론, 사건 자체를 거의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 단서를 산성리 폭격이 "정당"하며, "상부 사령부와 일치한다"는 '합동조사보고서'와 '최종보고서'의 결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폭격을 처음 요청은 스튜어트(Stuart) 대위도 실제 조사과정에서 산성리 폭격은 "미 10군단 및 미 8군의 정책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문서 4-1의 8항]).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고서'는 산성리 폭격과 일치하는 상부 사령부의 정책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을 해명하는 것이 산성리 폭격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다. 즉 산성리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 증거가 있는 명백한 오폭의 전범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명백한 오폭도 오폭이 아닐 수 있는 정책이 당시에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해명할 수 있다면, 산성리 오폭은 한 산간마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선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는 문제다. 그것이 미 10군단 사령관 알몬드(Edward. M. Almond)가 주도한 무차별 조직 파괴정책(Methodical Destruction Polic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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