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순이는 담배 피우면 안돼? 왜?

'담배 사려던' 삼순이에 대한 네티즌 논란을 지켜보며

등록 2005.07.05 13:47수정 2005.07.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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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순이 열풍이다. '삼순이'라는 촌스럽지만 정겨운 이름을 가진 서른 살의 그녀는 매주 수, 목요일마다 내 방으로 초대되어 약 한 시간 동안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는 다음 회를 기약하며 사라진다.

웬만하면 불청객(?)으로 분류되어 절대 내 방에 들어오지 못하는 다른 드라마 주인공들과 삼순이는 다르다. 왜? 그녀는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사랑때문에 힘들어하는, 그다지 예쁘지도 특별히 운이 좋지도 않은 나와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a 상반된 이미지의 드라마 캐릭터 '삼순' 과 '전경'

상반된 이미지의 드라마 캐릭터 '삼순' 과 '전경' ⓒ MBC홈페이지

날씬하고, 예쁘고 마냥 착하기만 한 여주인공이(내 주변에서는 도저히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외모와 재력을 겸비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온갖 주변의 질투 어린 시선을 이겨낸 후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전형적 신데렐라 류의 드라마나, 경쟁관계에 있던 주인공 둘이 알고 보니 배 다른 형제나 자매였다는 뻔한 반전 드라마에 식상해진 시청자들이, 뚱뚱하고(화면 속 김선아는 여전히 귀엽지만),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인 삼순이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진헌'이나, 희진의 옆에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헨리'의 존재를 보면서 "그래, 결국엔 드라마야"라고 또 좌절하곤 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은 김삼순>에는 현실적인 따뜻함과 다른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가득하다. 그렇기에 회를 거듭할수록 이 드라마에 대한 나의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자폐증을 겪고 있는 미주에게 "모모는 말이야~"하면서 동화 얘기를 해 주는 모습이나,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준 그네에 앉아서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모습, 예쁜 과자와 먹음직스런 케이크를 행복한 표정으로 구워내는 모습의 그녀는 정말 사랑스러운 만화 주인공 같다. 그녀가 하는 말에 공감하게 되고, 행동에 웃음 짓게 된다. 설사 삼순이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어때,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감싸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삼순이가 담배를 사러 슈퍼에 갔다가 구설수에 휘말렸다. 삼식이, 아니 진헌 때문에 힘들어하던 삼순이 동네슈퍼 총각과 아래와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눈다.

"담배랑 라이터 좀 줘."
"누나 담배 끊었잖아?"
"한 가치만 피울려구."


삼순이와 슈퍼 총각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는 삼순이의 흡연에 관한 네티즌들의 설전이 오갔다.

"삼순이가 담배? 삼순이를 너무 타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삼순이랑 이미지도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동안 보아왔던 삼순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장면인 것 같아요" "우리 나라에 여성흡연 인구가 많기는 하죠.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삼순이는 좀 어울리지 않더군요" 등 부정적 반응과, "담배 피는 것이 무슨 죄인가요?" "작가의 현실적인 감각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삼순이의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 신이었다. 오죽하면 안 피던 담배까지 다시 피려고 했겠는가" 등 옹호하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삼순이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방영조차 되지 않았지만, 이 장면과 관련된 기사가 나올 만큼 '담배를 피웠었던, 담배 피려던' 삼순이에 관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나는 '삼순홀릭'들이 모여 있는 시청자 게시판의 글을 읽어내리다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삼순이'가 담배를 피우려 했다는 게 문제인 거야, 아니면 '담배'가 문제라는 거야?" 금방 답이 내려졌다. 담배를 피우려 했던 주체가 삼식이도, 삼순이 언니도 아닌 '삼순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을 살아가는 스타들은, 혹은 유명인사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우아하며 학구적인 이미지' '귀엽고 순수한 이미지' 혹은 '진취적이고 당당하며 숨겨놓은 뒷돈 없을 듯한 이미지' 등등.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로 '먹고 살며', 때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그 속에서 도태되기도 한다.

대중매체는 만들어진 그들의 이미지를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대중들은 그들의 '실체'가 어떻든, 보여지는 '이미지'에 의해 많은 것을 판단하고 그들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곤 한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시청률 40퍼센트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명랑,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인기 캐릭터인 삼순이가, 여성 흡연율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식이 좋지 않은 '흡연'을 하려 했다는 사실은, 삼순이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반(反)하는 행위였기에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2002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이 피우던 담배는 오히려 '멋지다'는 다수의 의견을 양산해내지 않았던가? 남들이 고민하는 인생사 따위에는 관심없다는 듯, 자신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는 락 밴드 멤버 전경의 이미지는 희뿌연 담배연기와 어울렸기에 대중들은 '전경'의 흡연을 문제삼지 않았다. "흡연은 몸에 좋지 않아요"라는 의견은 있었어도, "전경 이미지와 담배는 어울리지 않아요, 전경을 너무 타락시키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미지에 맞는 언행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막말로 '생긴 대로 놀지 않으면' 비난 받게 되는, 이미지 메이킹이 그 사람의 행동 반경조차 제약하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현실이 왠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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