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흔적 만드는 그을음의 신화 '먹'

먹 만들기 기능 전승자 유병조씨

등록 2005.07.05 15:18수정 2005.07.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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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던 우리의 먹이 옛 명성을 되찾았으면 한다는 유병조씨가 자신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던 우리의 먹이 옛 명성을 되찾았으면 한다는 유병조씨가 자신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 도성희

천년이라는 세월을 지켜내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으로서 천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먹으로 쓴 글은 태워도 종이만 없어질 뿐 재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다. 그만큼 질긴 생명줄을 가지고 있는 게다. 그래서 먹은 천년의 흔적을 만드는 그을음의 신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표현 같다.


서가(書家)의 으뜸 '먹'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역사의 한 자락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희생이라는 명목으로 남겨진 흔적은 아주 오랫동안, 또는 그 자체가 역사가 되곤 한다. 그런 일들이 어디 사람들만의 일이겠냐마는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초'나 몸이 갈리면서 새로운 글자들을 세상에 뱉어내는 '먹'은 무생물이면서도 생명의 그것들보다 더 큰 존재로 우리의 가슴에 새겨지곤 한다.

'칠십 평생 벼루 열개의 바닥을 밑창내고 붓 일천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추사 김정희 선생은 그런 먹의 희생적 삶과 중요함을 알았으니 '서가의 으뜸은 먹'이라고 했으리라. 옛날, 선비들의 목숨과도 같았던 문방사우(文房四友-종이, 붓, 먹, 벼루)는 그 어느 것 하나만 빠져도 안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사와 같은 대가가 묵을 그 으뜸으로 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대저 먹은 '십육세 처녀가 삼년 병치레 끝에 일어나 미음 끓이듯 갈아야'한다고 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섬세하며 정성을 다해서 갈라는 말이다.

이는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갈면 먹빛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먹을 갈면서 글쓰기 전 흐트러진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고 정화시키는 효과를 얻기 위한 자기 다짐의 뜻도 담겨 있으리라. 우리나라 유일한 먹 기능전승자 유병조(65세)씨는 이러한 먹의 마음을 닮아가며 평생을 살았다.


13세부터 시작된 '먹' 인생

a 좋은 송연묵은 최고의 그을음을 얻었을 때 가능하다. 최고의 그을음을 얻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는 그가 직접 만든 그을음 제조기

좋은 송연묵은 최고의 그을음을 얻었을 때 가능하다. 최고의 그을음을 얻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는 그가 직접 만든 그을음 제조기 ⓒ 도성희

유씨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주 어릴 적, 죽어서라도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던 조부의 유언에 따라 가족 모두가 귀국했다. 고향인 경주시 산내면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배고픈 유년시절을 서럽게 보낸 유씨는 13살 되던 해, 울산에 있는 작은 아버지의 먹공장에 취직했다. 작은 아버지인 유재근씨와 유종근씨는 소나무 그을음을 주원료로 아교와 섞어 만드는 송연묵(松煙墨)과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드는 유연묵(油煙墨)을 만들었는데 그 품질이 좋아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전국의 여러 필방에 납품도 하고 '세신당'이라는 상호로 문향묵 등을 판매하는 숙부 밑에서 10여년 동안 먹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우리나라 먹은 주로 황해도 해주와 평안도 양덕에서 많이 났는데 숙부는 한국전쟁 당시 울산으로 피난 온 이북 사람에게서 먹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태화먹 1세대로 불리던 숙부에게 먹을 배운 유씨는 1965년 고향으로 와 가내공업 형식으로 먹공장을 열었다. 그때부터 그는 품질이 좋은 전통먹을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최상의 소나무 그을음을 얻기 위해 직접 기구를 만들기도 하고 까다로운 건조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을음과 아교를 혼합해 만드는 먹은 여름철에는 아교 특성상 빨리 쉬어 냄새가 나고 겨울철에는 잘 마르지 않아 애를 먹기 때문에 봄, 가을철에 만드는 것이 제일 적당하다. 또 정성을 들여 아무리 잘 만든 상품도 기온이 맞지 않는 등 조건이 잘못되면 깨져버리거나 굽어버리기 일쑤다. 90%를 완성한 먹이 하루아침에 파손됐을 때의 심정을 수도 없이 겪어온 그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몸가짐도 철저히 했다.

a 그가 만든 채색먹, 공예대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그의 꿈이기도 한 먹전시관을 만들면 전시할 계획이다.(사진 좌) 좋은 묵향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그는 좋은 향기 찾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가 만든 채색먹, 공예대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그의 꿈이기도 한 먹전시관을 만들면 전시할 계획이다.(사진 좌) 좋은 묵향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그는 좋은 향기 찾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 도성희

1970년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산내면을 떠나 경주시 건천읍 조전리로 자리를 옮긴 그는 '신라조묵사'란 상호를 걸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먹공장을 운영한다. 그는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단단하면서 가볍고 벼루에 갈면 부드럽게 잘 갈릴 뿐 아니라 찌꺼기가 적어 먹색이 맑고 붓이 잘 내리며 은은한 묵향이 배어나오는' 그의 자부심이 담긴 먹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서울 인사동 등 필방이 있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먹을 판매했다. 처음엔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먹었으나 그의 먹을 한번 써본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찾았고 좋다는 입소문을 통해 단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쯤 스승이기도 한 숙부가 자신의 평생 업이었던 세신당과 전통 먹 만들기의 모든 것을 물려주었다. 먹 만들기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며 최고의 먹 만들기에 전념해온 그는 1997년 10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으로부터 '먹 만들기 고유전승기능자'로 선정됐다.

그때의 기분을 "목이 메어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며 힘들었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더라"고 회상하는 그에게서 한 길을 지키고 걷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난관에 봉착했으면서도 굽히지 않은 한 인간의 승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것이 설 땅을 잃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a 자신의 흔적을 철저하게 남기는 먹처럼 그도 먹기능장으로서 기술을 전하고 싶어한다. 사진은 자신의 먹공장에서 금형판을 보여주고 있는 유병조씨

자신의 흔적을 철저하게 남기는 먹처럼 그도 먹기능장으로서 기술을 전하고 싶어한다. 사진은 자신의 먹공장에서 금형판을 보여주고 있는 유병조씨 ⓒ 도성희

그는 살아온 65년 인생이 결코 짧지만은 않다고 느끼지만 요즘은 그 지나간 세월에 대해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이렇다 할 전수자 한 명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이 자신의 가업을 돕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성에 차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먹의 역사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긴 역사에 비해 우리의 먹은 위태롭게 그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먹을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3개국만이 쓴다 해도 중국 한나라 이전부터 만들어진 먹이 일본 법륭사의 금당벽화를 그린 담징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역사적 사실을 두고 볼 때 일본의 먹이 훨씬 인정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먹 전승에 소홀히 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다. 3대 가업을 자랑하는 일본 업체의 먹이 수십만 원에 팔리고 우리나라 먹 기능전승자의 상품은 훨씬 저가로 팔리는 지금의 현실에서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전통먹을 만드는 자신이 오히려 죄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50여 년간의 먹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먹'의 중요성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희망한다. 그저 개인의 욕심에서가 아니라 긴 역사와 훌륭한 제묵법(製墨法)으로 한때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먹이 그 맥을 잃을까 겁나기 때문이다.

그을음을 채취하는 과정을 빼고도 45일이 걸려 만들어지는 '먹'. 상처 입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관솔의 그을음이 최고의 먹을 만들어내듯 험난하게 지켜낸 그의 먹 인생이 우리나라 문방사우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내는 한 필 휘지의 힘으로 자리하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7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7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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