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캤던 감잔데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이렇게 싹을 틔웠는지 놀라웠다. 이 억센 자생력을 높이 사서 자라게 놔 두고 있다.전희식
들깨 심을 밭을 갈고 있는데 동네 입구 노인회관 공터에 차를 세우는 사람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는 품새가 나를 찾아오기로 한 손님 같았지만 모른 척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저어. 길 좀 묻겠는데요."
부러 뒤돌아 선 채 일을 하고 있는 내 등 뒤에서 그가 어물쩍거리며 길을 물었다.
"모든 길은 결국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 아니겠소!"
나는 밀짚모자 눌러 쓴 머리를 더 숙이며 목소리를 꾸며 동문서답을 했다.
"네? 아 네에… 여기 전희식씨네 집 가는 길이 어느 쪽인가요?"
"사람을 찾소? 집을 찾소?"
"네. 사람 좀 만나려고요."
"거 참. 앞에다 두고서 사람을 찾는다니 멍청한 사람이로고!"하며 돌아섰더니 감쪽같이 속은 이 친구가 맥이 탁 풀린 표정으로 법석을 떨었다.
'풀밀어'라는 수동식 풀매는 기계를 보러 멀리서 온 친구다. 콩을 심었는데 자연농법이니 태평농법이니 하는 말들만 듣고 제초제를 안치다보니 점점 풀을 감당하기 힘들어져서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상태가 좋을 경우 이 '풀밀어'는 한 시간이면 콩밭 400여 평을 너끈히 맨다. 덴마크에 선진농업 견학을 갔던 '정농회'의 선배 한분이 이걸 발견하고는 스케치를 해 와서 보급하고 있는 농기구다. '풀밀어'는 이랑 사이를 매고 '딸깍이'라는 농기구는 포기 사이를 매는 기계다.
'풀밀어'를 가지고 실습을 하고 난 이 친구가 디카를 들고 우리 밭을 샅샅이 이잡듯이 돌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