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야기 5] 손으로 돈을 만드는 사람들

새우잡이 포구, 신안 임자도 전장포

등록 2005.07.06 06:02수정 2005.07.0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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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길 듯 잠길 듯,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뱃사람의 질긴 명줄 마냥 이어져있다. 오죽했으면 읍내사람들이 '한 삽거리'라고 했겠는가, 삽질 한 번하면 '섬놈'인데 까불지 마라는 의미일 것이다.

무안에 이르러 현경과 해제 방향으로 접어들어 지도에 이르는 길 좌우로 바다와 갯벌을 볼 수 있다. 임자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곳은 한반도에서 새우젓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지만 전쟁 중에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a 새우젓으로 유명한 전장포

새우젓으로 유명한 전장포 ⓒ 김준


간나이 맹기로 뿌옇게 이쁘요

임자도에 사람이 북적댔던 적이 있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민어파시로 유명한 '타리파시'와 새우잡이 멍텅구리배들이 백여척씩 있을 때였다. 임자도 '민어파시'는 '섬타리'와 '육타리' 두 개의 작은 섬과 본섬(임자도) 사이 모래밭에서 일제강점기 이루어진 파시로 일본사람들에게 '타리파시'로 잘 알려져 있다.

전장포 포구에 들어서자 기대했던 것과 달리 조용하다. 빈집들이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예외 없이 인구감소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지난 1990년대 멍텅구리배 보상이 이루어지고 나서 상당수 어민들이 섬을 빠져나갔고, 배를 탔던 사람들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면서 빈집이 더 늘었다.

새우잡이 전장포. 그곳에 배들은 새우잡이를 닻 그물과 팔랑개비 그물을 이용해서 잡는다. 닻배를 마련하는데 1억 원가량 든다면, 팔랑개비는 5-6천만 원이면 가능하다. 여기에 닻배는 몇 명의 선원이 필요하지만 팔랑개비는 가족노동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팔랑개비를 선호한다.

특히 멍텅구리배가 모두 사라지면서 많이 들어선 것이 팔랑개비 그물이다. 문제는 닻배는 새우를 중심으로 어획하지만 팔랑개비 자루그물은 잡어들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뒷손질(새우추리기)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a 팔랑개비 그물로 잡아온 꽃젓과 육젓용 새우를 추리고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팔랑개비 그물로 잡아온 꽃젓과 육젓용 새우를 추리고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 김준


포구에는 잡아온 새우를 추리는 일로 온 가족들이 모여 앉아 손놀림이 바쁘다. 꽃젓과 육젓을 추려내던 할머니 '보기도 안 이쁘요. 간나이 맹기로 뿌여가지고' 육젓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작은 통 '꽃 젓'이 몇 천 원일 때 '육젓'은 오만 원에 이른다니 비교가 안 된다. 그래서 손으로 하나씩 추려내는 것이다.

자꾸 말을 거는 필자가 귀찮았던지 한 마디 불쑥 내 던진다.


"손으로 돈을 만든다니까. 기계화가 안돼요. 너무 식구 데리고 하면 돈이 얼마나 남겠어요. 기계화를 못하고 인력으로 하려니까. 식구대로 이것을 하면 고생해요."

금요일은 인근 송도에서 보고, 화요일은 목포에서 위판을 본다. 육젓 한 드럼에 가격을 잘 받을 때는 700여만 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이 젓갈하면 광천새우젓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 젓갈이 모두 이곳에서 올라간 것들이다.


a 전정포구에 담겨진 새우젓, 인근 송도나 목포 위판장으로 옮겨져 판매된다

전정포구에 담겨진 새우젓, 인근 송도나 목포 위판장으로 옮겨져 판매된다 ⓒ 김준


a 팔랑개비 그물을 손질하는 어민

팔랑개비 그물을 손질하는 어민 ⓒ 김준


2시간 일하고 4시간 잔다

다른 수협은 적자를 봐도 신안수협은 흑자란다. 모두 새우 덕이다. 작은 새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은 변화시키는지 대견하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은 육지에서나 어울리는 말이지 섬에서는 맞지 않다. 새우는 조류를 이용해 드는 물, 나는 물 네 번 그물을 올린다. 그래서 하루에 '너 물 본다'고 이야기한다.

이것도 부지런한 사람들 이야기이다. 하루에 너 물을 보려면 2시간 일하고 4시간 자는 자투리 잠을 자야한다. 그게 쉬운 일인가. 팔랑개비 그물은 자루그물로 되어 있어 물 보는 시간이 좀 늦어도 이상이 없지만 닻그물처럼 물 보는 시간이 늦어 조류가 바뀌면 그물에 걸린 새우는 영영 놓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그동안 지내지 않았던 용왕제도 정월이면 성대하게 지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바다모래 채취를 둘러싸고 어민들과 지자체간에 실랑이도 있었다. 이들 새우가 서식하는 곳이 모래갯벌이기 때문에 바다모래를 채취하는 것은 새우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새우는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새우잡이를 금하는 나라들도 있다.

새우추리는 일은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일손이 많을 때는 걱정 없는 일이었지만 돈을 주고도 일손을 구하기 어렵고, 일당을 주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새우잡이 배가 들어오면 가족들이 모두 새우추리기에 나선다.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이라 스스로 '고무다리'로 생각하고 일한다고 한다.

a 닻 그물로 새우를 잡은 후 배 위에서 밴댕이 등을 추려낸 후 소금에 버무린다.

닻 그물로 새우를 잡은 후 배 위에서 밴댕이 등을 추려낸 후 소금에 버무린다. ⓒ 김준


이렇게 해서 추린 새우는 신안의 특산물 천일염과 만나서 오젓이 되고 육젓이 된다. 오월에 잡은 새우로 만들어 '오젓'이고 유월에 잡은 새우라 '육젓'이다. 이들은 젓갈에 최고봉이다. 겨울을 난 봄 새우가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좋다. 추젓보다 높이 쳐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에 달고 고소한 맛의 신안 천일염은 오월과 유월 소금을 최고로 쳐준다. 바람이 좋고 햇볕이 좋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봄볕에 며느리 내놓고 가을볕에 딸 내놓는다고 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남도에서 발행하는 <예향 남도소식>에도 연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라남도에서 발행하는 <예향 남도소식>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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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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