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해강이는 아침밥 잘 먹어요"

꿈쩍 않던 아이가 결국 30분 대화와 라디오 선생님 이야기로 풀렸다

등록 2005.07.06 07:34수정 2005.07.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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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고 씻기고 나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수차 실랑이가 벌어지고 한번 울다가 입에 넣고 가만히 있지요. 마지못해 먹다가 급하면 밥상에서 머리를 묶어주기도 합니다. 참 아이들과 아침전쟁은 언제 끝날까요? 그래도 아침은 꼭 먹이렵니다.
깨우고 씻기고 나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수차 실랑이가 벌어지고 한번 울다가 입에 넣고 가만히 있지요. 마지못해 먹다가 급하면 밥상에서 머리를 묶어주기도 합니다. 참 아이들과 아침전쟁은 언제 끝날까요? 그래도 아침은 꼭 먹이렵니다.김규환
낮에 보면 반은 어른인데 해질 무렵부터 해뜰 때까진 징징거리는 아이, 어린이집에선 동료들 사이에 활달하기로 소문난 아이가 유난히 졸음과 피곤함 앞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제 거의 컸다 싶도록 의젓한 아이가 비웃기라도 하듯 낮과 밤이 확연히 구분되는 이 현상에 어미아비 된 우린 이중성격을 갖고 있는 걸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누굴 닮아서 잠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인가? 역시 솔강이보다 한살 위인지라 누나노릇 하는 의젓함에 대견하기까지 한데 이도 시간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니 과연 해강이의 진면목은 무얼까?

낮잠을 재우는 작년까진 이런 일이 없었다. 올 초부터 6세반 아이들에게 단잠을 빼앗은 이후로 저녁 때 집으로 데리고 올 무렵 이미 녹초가 되니 반쯤 감긴 상태에서 업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며 간신히 집으로 온다.

저녁밥을 준비하는 동안 곤히 잠에 떨어지기 부지기수다. 끼니를 거른 채 오늘도 12시간을 넘겨 꿈나라로 가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잠이 보약이라고 깨우지 않고 내버려둬 봤지만 이도 하루 이틀이지 부모 마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아이들은 자는 동안 큰다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잘 먹고 푹 자야 전날과 차이가 있을진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동안은 일찍 자게 되면 밤 한두 시에도 일어나 밥을 찾던 아이였다. 아침에 밥을 주지 않으면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도록 제 밥그릇 챙기기 도사가 최근 부쩍 달라졌다. 어르고 달래지 않아도 김치만 있으면 밥 먹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급기야 두어 달 전엔 어린이집 선생님을 찾아가 해강이만 따로 재울 수 없냐고 부탁을 드려봤지만 단체 생활이라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이제 적응을 했거니 생각했더니만 더 악화가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사이 솔강이는 부쩍 커서 이미 아이가 아닌데 미운 다섯 살(태어난 달이 1월이라 둘 다 1년 빠른 아이들과 동급반이다)이 실감나도록 밉다.

내가 이런데 엄마와 사이는 좋을 리 없다. 모녀간에는 언제 연쇄적으로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도화선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아내는 이를 악물고 아이를 잡으려하고 아이는 그런 어미에게 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덤빈다.


약한 펀치만 슬슬 날려대는 형국이니 관전하는 쪽에서도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버릇을 고치려면 단번에 혼쭐을 내줘야하는데 슬슬 건드리는 수준이니 오히려 악순환의 연속이다. 밥 먹을 때는 더 했다.

몇 번은 뜯어 말려보고 아내에겐 아이 정신이 말짱할 때 이해하도록 찬찬히 설명하자고 했다. 이 정도 컸으면 충분히 알아들을 나이라며 괜히 성질머리 버리는 일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 밥상 앞에서 우리가 어릴 적 목이 메도록 잔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으니 좋지 않은 관습은 바뀌어야 되지 않은가.

큰 여우와 작은 여시(?)가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하루 이틀이지 반복되는 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중간에 낀 사람은 더 난감하다. 애를 잡는다고 잡히지도 않거니와 반대로 모난 성격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정신이 있을 때는 뭐든 잘 먹습니다. 저도 어릴 적 자고 깨어보면 저녁밥 때 마침 아침인듯 착각할 때가 많았답니다. 해강이는 닭백숙을 만들어 먹을 땐 꼭 뼈를 골라 골을 빼먹는답니다. 그 맛을 알지요.
정신이 있을 때는 뭐든 잘 먹습니다. 저도 어릴 적 자고 깨어보면 저녁밥 때 마침 아침인듯 착각할 때가 많았답니다. 해강이는 닭백숙을 만들어 먹을 땐 꼭 뼈를 골라 골을 빼먹는답니다. 그 맛을 알지요.김규환
며칠 전 일이었다. TV 소리를 키우고 흔들어 깨우자 해강이 솔강이가 일어났다. 여태 아침밥을 먹이지 않고 보낸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이 분야에선 철저한 아버지-실은 내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때문에 아이들도 밥을 거르는 일이 없이 꼭 챙겨 먹는다.

그런데 며칠 전에도 그랬듯이 해강이가 밥보기를 돌처럼 하는 게 아닌가. 시시각각 아내 출근할 시간은 다가오고 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사자는 더 한 모양이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밥을 먹이는 나는 모녀가 또 다툴까 겁이 났다.

그 때 갑자기 언성이 높아졌다. 아이는 울음보를 터트린다. 제 엄마가 한번 반강제로 떠먹였던 것마저 밖으로 튀어나왔다. 달래서 먹여보려 했지만 먹을 만하면 아이와 내 화를 돋우는 아내가 미웠다. 다음에 꼭 아내에게 따져 묻기로 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을 들르고 아내 직장까지 차로 태워줘야 출근 시간 내가 할 몫을 다 하는 것인데 그날은 평소와 다른 하루를 시작하였다. 솔강이와 아내가 먼저 나가고 해강이와 나는 집에 남아 아침을 다 먹었다.

"엉엉엉."
"해강아 그만 울자. 엄마가 우리 해강이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엄마 보고 싶어."
"알았어. 지금 엄마는 회사에 늦어서 얼른 간 거야. 끝나고 보면 되잖아."

울다먹고 먹으며 운다. 코와 눈물범벅이었다. 그렁그렁 복받친 아이와 대화가 가능할까 의심하면서도 아버지인 나마저 화를 내면 어찌될까 걱정이 되어 타일렀다.

"해강아 아침밥을 잘 먹어야 한다. 밥을 먹어야 키도 크고 얼굴도 더 예뻐져. 친구들은 밥 먹고 싶어도 못 먹고 오기도 하지? 엄마가 맛있게 만들었으니까 어서 먹자. 자, 김치."

여기까지는 늘 하던 대로다. 잔소리할 작정으로 덧붙였다.

"자 한번 먹어. 엄마는 애기 때 밥을 잘 안 먹어서 아빠보다 작은 거야. 또 엄마는 변비가 있지?"
"응."
"그건 밥을 많이 안 먹으니까 소화가 안 되어서 그런 거거든. 입에서 꼭꼭 씹어서 많이 먹으면 위장으로 가고 창자로 가거든 그다음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몰라."
"대장에 가서 꿈틀꿈틀 운동을 하다가 어제 먹었던 음식을 쭉 밀어내야 응가(?)할 때 잘 나오잖아. 아빠는 화장실에 가면 금방 나오는데 엄마는 한번 가면 나오지를 않잖아. 우리 해강이도 변비가 조금 있는데 엄마처럼 되고 싶어?"
"아니."
"그러니까 얼른 먹자."
"김치."
"김치만 먹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한다. 자 국도 먹자."

순순히 먹기 시작했다.

"자, 감자도."

해강이와 병아리가 함께 다정히 놀고 있는 모습. 노란 옷과 노란 병아리가 환상입니다. 잘 자라도록 도와야지요.
해강이와 병아리가 함께 다정히 놀고 있는 모습. 노란 옷과 노란 병아리가 환상입니다. 잘 자라도록 도와야지요.김규환
30여 분 지체되었다. 200여 미터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지만 차에 태웠다. 내리막길을 지나는데 라디오에선 시그널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띵띠리띵띠 띵띠리 띵 띵 띵’ 날마다 듣고 시계처럼 여기고 즐겨듣던 문화방송의 <라디오동의보감>이었다. 차를 멈춰서고 내리지 않았다.

이재성 원장이 5분간 쉽게 풀어주는 건강이야기인데 마침 그날 내용이 아침밥이었다. 주 내용은 평소 아이에게 전한 것이고 집에서 잔소리처럼 해댔던 것이 거의 빠지지 않고 흘러나온다. 부녀는 귀를 쫑긋하고 경청하고 있었다.

"해강아 라디오에서 밥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어, 선생님이?"
"대장이 움직이지 않는데. 아까 아빠가 이야기 했잖아."
"거봐, 선생님이 말씀하시잖아. 아침밥을 먹어야 운동이 잘되어 키도 쑥쑥 크고 머리도 좋아진다고 하시지?"
"아빠 아빠, 밥 안 먹으면 얼굴이 거지처럼 돼."
"그래, 밥을 안 먹으면 안 예뻐진다고 하시잖아. 낼부턴 해강이 아침밥 꼭 먹을 거지?"
"알았어요."

하늘이 도운 걸까. 모든 게 아귀가 착착 맞아 돌아갔다. 아빠인 내가 한 말의 7할이 라디오에서 나오니 아이인들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르지 않고 배기겠느냐 말이다. 어린이집까지 걷는 동안 둘은 손을 잡고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환한 얼굴로 걸었다.

이래서 교육은 혼자서도 안 되고 부모가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선생님의 존재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이제 의사, 교사, 식당주인, 간호사, 공무원, 회사원인들 아이들에게 일부러 '선생님'이라 불렀던 진가가 발휘되었다.

그 뒤로 며칠 간 그렇게 까진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 아이가 가능한 선을 찾아보고 대책을 세워야할까 보다. 먼저 아침저녁으로 30분 여유를 갖는 것이다. 아침엔 30분 늦게 일어나도록 하여 밥을 충분히 먹여 보내면 나아지겠지. 한갓진 날 2~30분 늦게 하루를 시작하면 언제나 활기찼으니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또한 저녁엔 30분 서둘러 데려오면 어떨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젖 먹던 힘까지 쏟아 친구들과 놀고 선생님 가르침을 받다보면 오후엔 힘이 달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금 일찍 가서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가 귀가를 서두르고 곧장 밥을 먹이면 적응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30분은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다.

해강이와 솔강이가 계곡에서도 이젠 넘어지지 않고 잘 놉니다. 낮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고 대견스러운 아이들이 밤만 되면 애기가 됩니다. 몇년 더 기다려야될 모양입니다.
해강이와 솔강이가 계곡에서도 이젠 넘어지지 않고 잘 놉니다. 낮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고 대견스러운 아이들이 밤만 되면 애기가 됩니다. 몇년 더 기다려야될 모양입니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아이들이 많이 자랐지만 아직 돌봐줘야할 일이 많습니다.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제 아내만 아이들에게 자주 꾸지람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뜯어 말리고 아이들 어르고 달래느라 중간에서 힘들지만 차차 되겠지요.

덧붙이는 글 아이들이 많이 자랐지만 아직 돌봐줘야할 일이 많습니다.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제 아내만 아이들에게 자주 꾸지람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뜯어 말리고 아이들 어르고 달래느라 중간에서 힘들지만 차차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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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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