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새대가리'라고 했던가?

몽이가 작은 새 한 마리를 해쳤습니다

등록 2005.07.06 10:03수정 2005.07.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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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방금 전 일도 까먹는 사람을 보고 '새대가리'라고 놀린다. 머리 크기가 작은 만큼 용량도 작을 것이 분명하기에 새들의 아이큐는 소수점 이하일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대가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상황이 얼마 전에 내 앞에서 발생했다.


개미에서부터 뱀까지, 하여튼 없는 짐승 빼고는 모두 다 있는 우리 집은 여러 가지 종류의 새들도 꽤 많이 찾아드는 편이다. 짹짹거리는 새 소리에 아침잠을 깨 '개골개골' 합창이 요란스러운 개구리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드는 요즈음.

그 날은 모처럼 마루에 한가로이 앉아 진돗개 몽이 밥그릇을 탐하는 산까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흔히 있는 뚱보 까치에 비해 산까치는 몸집도 날렵하고 밝은 청색의 깃털 색깔도 아름다운 새다.

멍청한 몽이 놈이 한눈 파는 사이 두 마리의 아름다운 도둑이 들락날락 양식을 훔치는 모습. "예쁜 것은 무죄"라던가. 도둑질 하는 모습조차 앙증맞아 보였다. 산까치 바라보다 그것도 지루하면 앞산도 쳐다보고. 한참을 그렇게 놀다 책이나 읽을까 하며 책 한 권을 손에 집어 들었을 때였다.

a 몽이에게 변을 당한 작은 새

몽이에게 변을 당한 작은 새 ⓒ 조명자

갑자기 문 앞이 소란스러워지며 "짹짹짹" 찢어지는 듯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언뜻 들어도 무슨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기에 놀라 뛰쳐나갔다. 혹시 뱀이 나타나 새들이 기겁을 한 것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펼쳐진 정경을 보니 어정거리는 몽이 옆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이었다.

"이런 몽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콱~."


잡으라는 뱀은 그냥 두고 엄한 새만 잡아놓고 시침을 뚝 따는 몽이 녀석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야단을 쳤지만 몽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곁눈질을 하고는 멀찌감치 도망을 가버렸다.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진 작은 새를 집어 올렸다. 혹시나 살릴 수 있을까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황갈색 가슴 털을 드러내놓고 뻗어 있는 새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에잇, 살생중죄 금일참회다. 이 노므시키야."


몽이 앞에 하나마나한 천수경 구절까지 읊어가며 죽어 있는 새 수습할 준비를 하였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그냥 맨 땅에 묻기는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죽은 그 놈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 종이에 정성스럽게 쌌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막 발걸음을 떼려는데 갑자기 내 뒤통수에서 "깍깍" 비명을 지르는 새소리가 들렸다. 단말마 같은 외마디 소리, 그것은 분명 절규였다.

a 담장 위에서 울고 있는 새

담장 위에서 울고 있는 새 ⓒ 조명자

난생 처음 들었던 새의 비명, 순간적인 충격으로 나는 뒤를 돌아봤다. 담장 위에 안절부절 못하고 앉아 있는 새. 그 울음은 그 놈이 지른 것이었다. 둘이 사이좋게 먹이 구하다 졸지에 짝을 잃은 친구 새일까? 여러 마디도 아니고 단 두 마디 "깍깍" 그 울음소리는 허공을 찢었다. 하기야 짝을 잃은 슬픔이 미물이라고 다르겠는가.

쉴 새 없이 깍깍대며 안테나 위로 전깃줄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놈을 보자니 차마 묻을 수가 없었다. 그 슬픔이 가실 때까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 죽은 놈을 전봇대 밑으로 옮겼다. 짝의 모습을 가슴 속에 담을 시간을 더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수습을 한 뒤 다시 마루로 들어왔지만 짝 잃은 새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안절부절 못하는 새. 해도 너무 했다. 더구나 담장 위에서 몸부림을 치는 그 놈의 주둥이엔 벌레 비슷한 먹이까지 물려 있는 모습이었다.

a 전깃줄에 앉은 새

전깃줄에 앉은 새 ⓒ 조명자

퍼뜩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모이를 물고 울부짖는다면 틀림없이 이 근처에 새끼가 있을 텐데. 그제야 서까래 아래 붙어 있는 새 둥지가 떠올랐다. 이사 올 때부터 붙어 있었던 둥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제비집과는 약간 다르게 생겼구나 생각하고는 그냥 잊어버렸던 둥지였다.

까치발을 하고 새집을 들여다 보았다. 새집엔 어떤 기척도 없었다. 새끼가 없는 걸까? 한편으로 새끼 없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새끼 먹이기 위해 모이 줍다 참변을 당한 부모라면 더 가슴 아플 일 아닌가.

그러나 내 희망과 달리 조금 후 다시 들여다 본 둥지 안에는 머리통을 삐죽 내민 새끼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새끼들 모이 주려다 죽음을 맞은 어미 새(?)였던 것이다. 남은 한 마리, 모이를 물고 울부짖으며 새끼 주변을 빙빙 도는 아빠 새.

a 어미 잃은 새끼들

어미 잃은 새끼들 ⓒ 조명자

모든 정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짝이 죽어가는 것을 본 그 놈은 공포에 질려 감히 새끼 곁엘 다가설 수 없었던 것이다. 몽이를 잡아 묶었다. 아빠 새가 마음 놓고 새끼에게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못 올 먼 길 떠나간 짝을 그리며 슬피 우는 작은 새. 새끼 모이 물고 안타깝게 비명을 질러대는 아빠 새. 누가 미련한 인간을 '새대가리'에 비유했단 말인가. 3시간이 다 되도록 목 쉰 비명을 질러대던 작은 새, 그 새를 본다면 누구도 그렇게 함부로 말하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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