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만주벌판을 가로지르다

중국 고구려 역사유적 기행 2 - 환인(桓仁)으로 가는 길

등록 2005.07.07 15:22수정 2005.07.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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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고구려 유적지를 향한 첫 번째 목적지가 환인(桓仁)이었다. 가이드는 환인까지 버스로 5시간 가량 걸린다고 하였다. 그는 중국이 워낙 땅이 커서 보통 한번 차를 타면 5시간 이상 걸린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에서는 가장 먼 곳이 보통 5,6시간가량 걸린 것을 보면 중국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고 하여도 그 시간과 거리감은 땅덩어리가 큰 중국의 거대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a 고구려사 관련책자

고구려사 관련책자 ⓒ 정윤섭

그는 우리의 고구려 역사유적지 답사를 의식해서인지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간행한 <고구려사>(1997)란 책을 들고 있었는데 지은이는 교수박사 손영종이라 씌어 있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었지만 고구려사에 대한 연구가 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두툼한 책이었다.


작은 미니버스는 심양을 빠져나가면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면서 양빈이 경영했다는 네덜란드촌 옆을 지나갔다. 양빈은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중국인으로 이곳에서 '허란춘'이라는 네덜란드 촌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도로 옆으로 그가 투자해 만들어 놓은 대규모의 농장이 펼쳐졌다.

양빈은 지난해 북한에서 경제특구로 개방한 신의주의 행정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부동산투기 등의 부패혐의로 중국당국에 의해 구속된 사람이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39세의 나이로 초대행정장관에 임명된 것도 획기적인 일이지만 순식간에 그가 네덜란드 국적을 가지고도 부패혐의로 잡혀가는 중국이라는 나라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떤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최근의 한·중·북한과의 관계에서 한번쯤 되짚어 보게 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한·중·북한간에 미묘한 정치적 경제적 역학관계가 이면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널리 알려진 대로 등소평에 의해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서 이래 이제 경제적으로 성공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추모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중국이 있게 한 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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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또한 이 같은 개방의 필요성을 이미 느끼고 있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모험적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 신의주 특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특구의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이 중국 정부에 의해 구속된 시기가 이때라는 것이 어떤 알 수 없는 미묘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혹자는 개혁개방으로 인해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이 많은 한국의 기업가들이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추진하는 신의주 경제특구는 이러한 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취한 조처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이 중국의 의도된 정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미묘한 시점과 관련해서는 여운을 갖게 하는 것이다. 양빈은 현재 심양의 한 교도소에 갇혀 있다고 한다. 그는 18년의 형을 받았다고 하며 그가 어떤 계기에 의해 특사로 풀려날지는 모를 일이다.

a 시골의 한가게

시골의 한가게 ⓒ 정윤섭

현대식으로 개량화되고 있는 중국의 농촌


버스가 심양시를 벗어나 환인으로 향하면서 너른 벌판과 시골마을을 지나친다. 만주하면 맨 먼저 그 넓은 벌판이 생각이 나는데 남쪽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인지 끝이 안 보이는 들판보다는 얕은 야산과 너른 벌판에 끝없이 심어진 옥수수 지대가 이어진다.

작고 허름한 시골집의 마을을 계속 지나는 동안도 그 벌판에 심어진 것은 대부분 옥수수다. 마을 주변에서는 벼농사하는 논들이 눈에 띄지만 95% 이상이 옥수수밭이다. 그래서 이 많은 옥수수를 다 어디에 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은 이 옥수수대를 말려 땔감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마을의 집 옆에 여름인데도 볏단처럼 수북히 쌓여 있는 옥수수대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옥수수는 식량보다는 사료용으로 쓴다고 하여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해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옥수수를 주식으로 해서 살아서인지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면 옥수수를 저장해두기 만들어 놓은 창고를 볼 수 있다. 공기가 잘 통할 수 있게 사방이 개방된 형태로 높은 곳에 창고를 만들고 있다.

a 한 시골 농가의 부엌 모습

한 시골 농가의 부엌 모습 ⓒ 정윤섭

도중에 자동차 여행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잠시 들른 한 시골마을에서도 이러한 창고가 남아있었는데 벌써 현대화 속에서 빠르게 없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그마한 동네 가게에 들러 '아이스께끼(?)'하나를 고르면서 살짝 엿본 집안과 부엌 풍경은 생활이 많이 뒤쳐져 있었지만 현대식으로 개량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심양에서 환인으로 가는 곳은 너른 들판을 지나 점점 산악지대로 접어든다. 산이 많은 북한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조랑말이 끄는 우마차나 도로를 점거한 채 소떼를 몰고 가는 목동도 가끔 볼 수 있다. 수십 년 전에 우리의 시골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풍경들이기도 하다.

만주벌판은 심양에서 동북쪽으로 가야한다. 우리들의 가슴속에 그리고 고난의 역사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만주벌판이다. 만주벌판으로 얘기되는 중국의 동북지역은 우리의 옛 고구려의 화려한 역사의 무대이자 중국사에 있어서도 요나라, 금나라, 청나라가 일어나고 수많은 이민족과 중국의 한족간에 끝없는 쟁탈이 이루어진 곳이다.

또한 이곳은 중국과 일본의 패권다툼을 통한 청일전쟁의 현장이자 청나라가 무너지고 그 청나라의 마지막 왕 '부이'가 일제에 의해 괴뢰정권이 수립된 중국 역사의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민족에겐 항일운동의 거점지로 마치 역사의 소용돌이가 이 만주벌판에서 다 일어난 것처럼 만주벌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동북아시아에서의 세력 다툼은 격랑의 역사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지금 이곳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 교포가 2백만에 이르고 있다. 간도협약이라는 미제의 숙제가 남아있는 이곳은 그래서 정서적으로 옛 고구려 영화의 흔적을 계속 반문하여 찾아가게 하는 듯하다.

넓디넓은 옥수수 밭이 이어지는 만주벌판의 남단을 달리면 소리쳐 부르던 '광야에서' 라는 노래의 '만주벌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a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벌판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벌판 ⓒ 정윤섭

침탈과 정복의 대상이었던 만주벌판

만주(滿洲)는 보통 중국의 동북지방을 일컫는 말로 한국, 러시아, 내몽고자치구에 둘러싸인 지역이며, 중앙부를 남북으로 요하강과 송하강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주로 옥수수, 콩, 밀 등을 재배하며 제철과 기계, 섬유산업이 성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철을 비롯한 엄청난 자원이 매장된 곳으로 이러한 자원 때문에 침탈과 정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1932년 일본이 이 지역에 만주국을 세워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이때 세운 괴뢰정권의 황제가 '부이'로 그는 중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청나라는 이곳 만주벌판을 근거로 하여 일어났는데 자신의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위업이 무너지면서 청나라의 마지막 왕 '부이'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그려진 중국의 마지막 왕조의 모습과 '부이'라는 인물은 지극히 희화적인 모습이었지만 아무튼 그의 종말이 다시 자신의 고향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곳 만주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중국에서 돌려 받았다. 일제 때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우리나라의 많은 독립투사들이 그곳을 근거지로 활약한 곳으로 특히 간도는 우리민족이 많이 사는 곳으로 현재 조선족자치구로 되어 있다. 이곳은 옛날 부여·고구려·발해 등 우리역사의 시원이 펼쳐졌던 무대로 그 유적이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어 이 흔적들을 찾아가는 고도(古都)로의 여행인 것을 생각하면 더 각별함 일 수밖에 없다.

a 창밖으로 소떼를 몰고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창밖으로 소떼를 몰고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 정윤섭

차는 도중에 무순을 거쳐 계속 환인을 향해 달렸다. 무순은 2백만의 도시로 이곳은 석탄이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도중에 커다란 돔형 건물의 석탄제조공장도 눈에 띄었다. 마을과 마을 또 들을 달리는 동안 삼륜차와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쉽게 볼 수 있다. 아직은 교통수단이 예전의 방식을 아직도 그대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봇대 또한 나무로 세운 것이 아직도 남아있어 덜 문명화된 이곳에서 우리의 70년대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환인으로 가는 중의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지만 잘 다듬어진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차가 심하게 요동친다. 마치 말을 타듯이 덜컹거리며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차안에서 책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같은 도로사정 때문에 거리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이곳의 상황이기도 하다. 버스는 이러한 신작로 같은 길을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지난해 6월 중순부터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옛 고구려 역사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는 환인과 집안 등지를 비롯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조선족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길 지역을 방문하였다.

동북공정에 대한 논란이 벌써 1년이 지난 시점에 그때를 생각해 보고 쓴 글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지난해 6월 중순부터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옛 고구려 역사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는 환인과 집안 등지를 비롯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조선족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길 지역을 방문하였다.

동북공정에 대한 논란이 벌써 1년이 지난 시점에 그때를 생각해 보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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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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