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볶음 너도 '꿇어'

[잉걸아빠가 사는 법 1] 기어이 '디카' 산 날, 단골 술집에서 낙지볶음을 찍다

등록 2005.07.08 16:48수정 2005.07.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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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디지털 카메라가 드디어 도착했다. 이것저것 확인해 보지만 정말 싸게 잘 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집사람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걱정이다. 지난번에 보니까 배상용 시민기자는 아내가 적금까지 해약하며 200만 원짜리 카메라를 턱, 사주기도 하더군. 그 기사 읽으면서 잉걸아빠는 배알이 뒤틀려 숨 놓는 줄 알았지.


“얼마나 주셨…어?.”

반말도 아니고 높임말도 아니고, 아내가 저런 식으로 말꼬리를 방울뱀처럼 흔들며 서늘한 기운을 내뿜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싼 거야. 정말이야. 아주 싸게 샀어.”
“디카는 카메라도 아니라고, 디카가 아날로그 시대에 종지부를 앞당기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지난번에 황 선생이 보내준 디카 사진 보면서 그랬어, 안 그랬어?”
“사람 생각은 변하는 거야.”

“우리 카메라 있잖아. 그걸로 찍어서 올리면 되잖아.”
“그걸로 인화하랴 스캔하랴 언제 올려? 속보성이 떨어지잖아.”
“속보성? 당신이 무슨 사건현장 취재기자야?”

어머니까지 아프셔서 돈 들어갈 일이 천지인데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당신이 천년만년 학원에 나갈 것도 아니고, 낼모레면 오십 바라보는데, 어린 잉걸이 생각해서라도 악착같이 모아야지, 어쩌고저쩌고 그르렁그르렁, 암만 봐도 오늘 제대로 걸렸다 싶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옷을 입는다.


“이 새벽에 어디 가는데 또?”
“박 선생이 ‘포○트’로 온대. 오늘 그 집 낙지볶음 사진 찍기로 했어.”
“도대체 당신한테 <오마이뉴스>가 뭔데?”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을 위한 우리 동네 맛집


잉걸아빠는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산다. 오전동과 고천동이 만나는 보건소 사거리 지척에 10년째 잉걸아빠 단골집인 포○트가 있다.

이집의 장점은 첫째, 안주 값이 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싸기만 하다면 맛집이라 할 수 없다. 오만 찌개류부터 꼬치구이에 무침안주까지, 단돈 만 원이면 숨 넘어갈 정도로 맛깔스러운데다 두 사람 정도 실컷 먹을 만큼 푸짐하기까지 하다. 기다리는 동안 계란탕이나 계란부침 같은 전식도 내놓는다.

a 단 돈 만원 짜리 낙지볶음 안주. 맛과 양? 잉걸아빠가 보장함

단 돈 만원 짜리 낙지볶음 안주. 맛과 양? 잉걸아빠가 보장함 ⓒ 이동환

잉걸아빠는 워낙 낙지를 좋아해 이 집에 가면 거의 낙지볶음을 시킨다. 길 가다가도 새로 눈에 띄는 낙지집이 있으면 눈여겨 뒀다가 나중에 반드시 들러볼 정도로 낙지광인 잉걸아빠는 솔직히 맛없는 낙지볶음만큼은 용서하지 못한다. 깐에 광이라고 산낙지볶음이 아니면 잘 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집에서만큼은 다르다.

a 국수사리 말아 소주 한 잔에다가, 박 선생! 나 사진 얼른 찍고 같이 먹자고!

국수사리 말아 소주 한 잔에다가, 박 선생! 나 사진 얼른 찍고 같이 먹자고! ⓒ 이동환


a 오늘의 후식, 정갈하게 썰어주신 수박 크게 네 쪽

오늘의 후식, 정갈하게 썰어주신 수박 크게 네 쪽 ⓒ 이동환

냉동낙지를 쓰지만 안주인 조리솜씨가 워낙 탁월하다보니 웬만한 산낙지볶음은 한 마디로 '꿇어!' 다. 거기다가 국수사리까지 둘둘 말아 소주 한 잔과 함께 털어 넣으면 목울대가 황홀한 비명을 지른다. 양은 또 어떻고? 이바구에 빠져 취하다 보면 두 사람이 다 못 먹고 남길 때도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a 10년 세월 변함없는 서민 사랑, 박순례 사장.

10년 세월 변함없는 서민 사랑, 박순례 사장. ⓒ 이동환

단골한테만 그렇게 잘 해 주면 얘깃거리도 아니다. 모든 손님들한테 변함없이, 강산이 바뀔 세월 동안 꾸준하다. 그뿐이랴? 남는 게 대체 뭐가 있다고 늘 후식까지 내놓는다. 잉걸아빠 때문에 이집 발걸음을 하게 된 젊은 강사들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오늘은 박 선생이 계산하겠다고 난리다. 새벽 네 시가 다 될 때까지 소주 두 병에 이바구는 덤이요, 낙지볶음에 수박후식까지, 늘 그렇지만 역시 대만족인가보다. 그래봤댔자 만 육천 원. 저렴하게, 어쨌든 오늘은 박 선생이 '쏜' 거다. 그렇게 누구나 쏠 수 있는 집. 오시라,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과 고천동 지척 포○트에. 누구든 오시면 잉걸아빠가 쏠 터!


<오마이뉴스>는 잉걸아빠에게 대체 무엇인가

기분 좋게 박 선생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니 깊이 잠들었는지 새근새근, 아내 숨소리가 고맙기만 하다. 씻고 들어와 아내 옆에 아주 조심스럽게 눕는다. 나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오마이뉴스>가 내게 뭐냐고? 생각해봐. 잉걸이한테 내가 물려줄 게 뭐 있어? 이것저것 해본다고 벌어놓은 거 다 털어먹고 이제 나이까지 먹었잖아. 나중에 잉걸이가 커서 <오마이뉴스>에 남긴 아빠 기사를 재산처럼 갈무리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거야. 블로그도 그래서 꾸미는 거고. 아빠가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어떤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그것만이라도 남겨주고 싶어. 재산 대신…. 당신도 이해할 거야.”

베개를 살짝 두덕이는데 잠든 척 한 건지 깬 건지 아내가 대꾸를 한다.

“거기다가, 당신 덕분으로 고생바가지에 옹글게 빠진 내 이야기도 많이 써줘요. 나중에 잉걸이 보게.”
“안 잤구나. 그래, 알았어. 당신 얘기 빼고 나한테 ‘사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어?”

돌아누우며 아내 가슴께로 손을 슬며시 집어넣는데 문득 한 마디 더 던진다.

“그런데 그 카메라, 사실대로 말해요. 정말 얼마 줬어요?”

덧붙이는 글 | 사는 게 뭐 있나요? 만나고 헤어지고 마시고, 헤어지고 만나고 마시고…. ‘법구경’ 가운데 ‘호희품’ 한 대목을 의역으로 소개합니다.
♠ 사랑을 하지 마시오. 미움 또한 갖지 마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나니 ♠
초연하게 살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쉽나요? 그래서 범부는 오늘도 한 잔 마십니다.

덧붙이는 글 사는 게 뭐 있나요? 만나고 헤어지고 마시고, 헤어지고 만나고 마시고…. ‘법구경’ 가운데 ‘호희품’ 한 대목을 의역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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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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