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상품권, 2시간만에 바닥나다

경품 덕에 멋진 쇼핑을 했습니다

등록 2005.07.10 09:34수정 2005.07.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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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눈을 비비며 거실을 나오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이 다급하게 불렀습니다.


"각시야! 이리 와 봐"
"왜요?"
"당첨 됐다!"
"뭐가요?"
"50만원"
"네?"

눈을 번쩍이며 남편 옆으로 뛰어갔습니다. 남편이 마우스를 이용해 가리킨 것은 K은행에서 발표한 '알뜰할부금액 경품대잔치'에서 '국민GIFT상품권(50만원권)'이 당첨된 것이었습니다. 카드 사용 후 승인 번호를 은행 홈페이지 응모하기에 입력했었는데 남편이 올린 번호가 당첨된 것이었습니다.

"이건 내가 산 디지털 카메라 대금이 당첨되었으니까 내 돈이네요?"
"무슨? 자네가 디카를 샀더라도 K은행에 행사가 있었던 것도 몰랐었잖아!"

사실 남편 말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행사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카드만 썼을 뿐인데 모두 내 돈이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며 억지였습니다.

그 후 남편은 K은행에서 나온 '국민GIFT 50만원 상품권'(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을 가지고 와선 거실 탁자 위에 놓았습니다.


"당신, 쓰고 싶은 데 써!"

다투었던 대로라면 그래도 절반은 남겨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하지 않은 횡재였습니다.


그 다음 날 저는 상품권을 들고 훌~랄라 콧노래까지 부르며 K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실크 옷 한 벌로 50만원을 다 쓴다 하더라도 구박할 사람은 없겠지!'

3층 여성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 한들 거뜬하게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부 내 옷 같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옷 사 입는 게 취미라고 할 정도였던 내가 유혹을 접고 4층 남성복 매장으로 자연스럽게 향하고 있었으니 신통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달 여름용 긴팔 와이셔츠를 입고 싶어 했던 남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이야기를 꺼낼 정도가 되면 꼭 필요하다는 증거이지요.

a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 ⓒ 박영자

a

ⓒ 박영자


하얀 색과 줄무늬 와이셔츠를 각각 골랐습니다(50% 세일 5만8천원). 그리고 여름용 넥타이 두 개(50% 세일 5만8천원), 반소매티셔츠(50% 세일 5만4천원), 바지(50% 세일 5만9천원). 세일 가격으로도 값이 나가는 편이었지만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벌 남편 옷을 구입하기는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요.(양복을 입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구입해서 입음.)

옷값을 지불한 후 백화점을 나오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했습니다. 퇴근한 남편의 반응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와이셔츠 하나 정도는 기대를 했겠지만 이렇게 많은 종류를 사올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내만은 남들보다 예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넉넉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싶어했던,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만은 무서울 정도로 인색하고 깐깐했던 남편이었기에 50만원 상품권으로도 아내의 새로운 변신에 투자하기를 원했을 테니까요.

백화점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오는 길 옆에 ○○전기조명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파트 입주 후 12년 동안 거실을 밝혀 주었던 등이 낡아 바꾸고 싶었었는데 그것이 퍼뜩 생각난 것이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대리점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고급스럽고 예쁜 디자인의 제품들이 현란하게 불빛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릴 적 시골집에서 문고리를 잡고 드나들던 세살문 모양의 등이 천정에서 은은하게 주황색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랑물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옛 친구를 길거리에서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감하게 주문을 했습니다(27만원).

a 세살문 모양의 등

세살문 모양의 등 ⓒ 박영자

불과 두 시간만에 49만9천원을 지출했습니다. 그렇지만 꼭 필요했던 물건이었고 평소 사 주지 못했던 남편의 옷들이었기에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켜 줄 것입니다.

쉽게 번 돈은 금방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정해진 월급으로 사는 사람들에겐 필요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셈만 하다가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그 불편함도 익숙해져 잊고 살지요. 그러다보니 예기치 않은 상품권은 마음 속 깊이 묻어있던 외상 장부의 채무를 말끔하게 정리해 주는 삶의 행복한 덤이 아닐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디지털 카메라는 사보기자라는 명함을 얻게 되어 투자(51만원)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선물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한국인포데이타 전북본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옷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 치던 남편, 결국 환한 웃음으로 답을 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디지털 카메라는 사보기자라는 명함을 얻게 되어 투자(51만원)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선물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한국인포데이타 전북본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옷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 치던 남편, 결국 환한 웃음으로 답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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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방문 후 놀랬다. 한창 나이 사십대에 썼던 글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니..새롭다. 지금은 육십 줄에 접어들었다. 쓸 수 있을까? 도전장을 올려본다.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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