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목리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만의 아지트②] 제주 남끝동 아이들의 바다 놀이터

등록 2005.07.10 17:51수정 2005.07.1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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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임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


사람들은 그 곳을 '섶섬이 마주앉은 고장' 이라고 불렀다. 섬사람들에게 섶섬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섬에서 보는 섬은 늘 수호신처럼 정겹다. 이날따라 마을 잔치가 있으니 바다 끝 해변은 술렁임으로 가득할 수밖에.

김강임
서귀포의 동쪽 끝 해변마을 보목리. 처음 그곳을 찾아 갈 때 나는 길을 잘못 들어 차머리를 몇 번씩이나 돌렸다. 겨우 차 한 대가 들어 갈 정도인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모여 사는 동네 사람들, 그러나 조용하던 해변 마을은 여름이 다가오면 시끌벅적하다.

눈이 와도 개가 짖지 않는다는 보목리는 여름이 되면 강아지도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며 손님을 맞이한다. 그리고 비좁은 마을길은 벌써 차들로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보목리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는 오후시간인데도 골목이나 마을 어귀에는 개구쟁이들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보목리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벌써 포구에는 마을 잔치가 시작되었다. 하늘높이 또 오른 애드벌룬 사이로 섶 섬이 보이고, 평소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궈왔던 어부들도 오늘만은 일손은 놓았다. 자신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자리돔 축제가 있는 날이니 어깨가 들썩들썩 할 수밖에.


김강임
포구의 자유

보목리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주로 바다와 감귤밭이다. 특히 바다는 이들만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니 아이들도 바다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 눈만 뜨면 보이는 바다는 곧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보목리 포구 언저리, 주인 없는 신발 대여섯 켤레가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다. 샌들과 운동화 그리고 수영복이 담아져 있는 비닐 팩, 이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디로 갔을까?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보니,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어른들의 구속과 부자유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의 아이들. 보목리 포구에 놓여진 신발은 바로 도심지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 그 자체였다.

김강임
바다가 놀이터인 보목리 아이들

학교가 끝난 오후 시간, 대도시 아이들은 학원이며 개인교습지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보목리 포구에 모여든 아이들은 이것이 바로 학원이며 과외장소 같았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없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의 배가 내리는 포구. 포구 아래 바다는 이제 막 썰물이 시작되었다. 더욱이 썰물을 만난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흥에 겹다. 아마 그것은 바닷속에서 진주를 캘 수 있기 때문이리라.

수영복을 입었을까? 물안경을 썼을까? 그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개구쟁이들은 곧바로 포구로 향하여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벌써 바닷속에서는 아이들만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같은 반 여자친구와 함께 멱을 감는데도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그리고 여자친구들 역시 거부감 없이 남자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는다.

한마을에서 어깨를 겨루며 살아왔으니 숨길 게 뭐가 있을까? 그저 바다 물속에 몸을 담그면 더위는 저만치 물러갈 뿐.

옷을 벗지도 않고 풍덩 바다 속에 빠져 든 개구쟁이 남자어린이, 바닷물을 가슴까지 적신 여자어린이, 이들만의 아지트는 낄낄대는 웃음소리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김강임
하늘 한 폭의 푸른 빛 키우며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가 있다. 보목리 아이들에게 아지트는 포구, 그 곳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마 그곳은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고, 함께 자란 친구들과 만날 수 있고, 그리고 섶섬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 가는 곳으로 기억되어질 것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동산' 보목리. 보목리 아이들은 바다가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포구에 서서 한기팔님의 '보목리 사람들'이란 시를 읊조렸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있지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 사람들은 그걸 안다.

보오 보오
물오리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 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

가장 큰 바다는
언제나 우리의 등 뒤에 서 있고
이 시대의 양심인양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

다만 눈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먼 바다의 물빛
하늘 한쪽의 푸른 빛 키우며
키우며 마음에 등을 켜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보려거든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에 와서 보면 그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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