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
"와아아~ 밥이다. 밥!"
종소리가 나기 무섭게 막 30리 달리기를 마치고 늘어져 있던 조련병들이 튕기듯 일어나 바리그릇을 챙겼다.
그러나 왁자지껄한 함성의 난자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식간에 네 줄을 맞추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바리보자기를 왼팔에 낀 모습이 마치 목각인형들 같았다.
해도에 닿아 지난 보름간 한 일이라고는 하루 30리의 달리기와 '제식훈련'이라 불리는 이 요상하고 딱딱한 동작이었다. 무슨 무예나 검술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요 총포를 손에 쥐어주는 것도 아닌 채 그저 목총 하나를 손에 쥐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옆으로 틀었다하는 동작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이제 줄서고 움직이는 일이라면 못자리판 못줄처럼 척척 맞아 떨어졌다.
그 외에 한 가지 더 한 일이 있다면 저녁을 먹고 나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호롱불 아래 언문을 깨치는 공부였다. 어떤 이는 그게 30리 달리기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특히 만득이가.
"소대~ 앞으로~ 갓!"
조련관이 목을 길게 빼어 구령을 붙였다.
"완보(緩步)!"
조련병 전원이 힘차게 구령을 붙이며 왼발을 떼었다. 밥 앞에서의 기쁨 때문일까, 군졸이 되었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처음 배에서 내리던 날의 흐느적거림은 눈을 씻고 볼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반빗간으로 이동하는 사이 오늘 30리 달리기에서 낙오된 조련병 하나는 막사 앞에서 반듯이 서 있었다. 동료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서 있어야 했다.
어제까지 30리 달리기의 합격점은 1시간 35분이었다. 그러나 기준이 매일 5분씩 단축되는 지라 어제의 합격자가 오늘은 아깝게 낙오자가 되었다. 조련관이 서양에서 들여왔다는 회중시계를 들고 초까지 따져 재는 통에 대충대충이란 통하지 않았다. 1시간 20분 대까지 줄이는 것이 목표라 하였으니 이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면 저 조련병도 어쩌면 만득이 꼴이 될지 몰랐다. 몇날 며칠 점심을 굶어야 할 것이다.
그 조련병 옆으로 아예 몸져누운 만득이를 조련관 하나가 살피고 있었다.
"허어억~ 우엑~"
만득이가 연신 신음과 더불어 헛구역질을 해 대자 조련관이 걱정스레 쳐다봤다.
"나으리, 제… 제발 죽 한 모금만… 죽 한 모금만이라도 먹고 죽게 해 주시오."
만득이의 목소리가 다 죽어가고 혈색이 어두웠다. 그런 지경에서도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조련관이 어쩌지 못해 망설이고 있는데 누운 만득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충성!"
만득이를 살피던 조련관이 깜짝 놀라 일어서며 손을 펴 눈썹 위에 맞추어 거수경례를 올렸다.
만득이가 죽는 시늉을 하는 가운데도 슬쩍 그림자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수행하는 이들이 여럿이고 그 중엔 독사눈 조련관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세등등하고 당당한 독사눈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조련감, 이 자는 무엇인고?"
풍채 좋게 생긴 그림자의 주인공이 독사눈에게 물었다.
"예, 오늘 삼십 리 달리기 중에 낙오되어 탈진한 자이옵니다. 수영장(水營將)나으리."
독사눈 조련관의 대답에 힘입어 만득이가 더 죽는 시늉을 했다.
"시작한 지 보름이면 그다지 시간을 당기지도 않았을 터인데 벌써 이런단 말인가! 이런 산송장을 뭐 하러 여태 놔두었나! 냉큼 절벽으로 데려가 바다에 버리도록 하라."
"예이."
젊은 조련관과 독사눈이 만득이의 겨드랑이를 끼었다.
"으아아, 아닙니다요. 이제 다 나았습니다요. 내일이면 필연코 합격점에 들 것입니다요."
만득이가 질겁을 하며 두 조련관의 팔을 풀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낙오되어 서 있던 다른 조련병의 옆에 나란히 섰다. 언제 아팠냐는 듯 딱부러지는 부동자세였다.
수영장이라 불리우는 이가 슬쩍 수행원들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저 만득이의 볼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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