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07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7.18 17:09수정 2005.07.1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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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좀 그거 밥 좀 한 술만 더 주시오.”

또판개가 바리그릇을 들고 밥통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어허, 이 사람. 이렇게 경우가 없는가 그래. 조련병들이 밥을 다 치우면 여기 군사들은 끼니를 어찌 채우노. 그나마 자네들은 조련병이라고 맨 먼저 밥을 먹는 게야.”

보리밥이나마 수북이 퍼주던 화병(火兵: 취사병)이 꾸지람을 했다.

“에휴, 그냥 해본 소리지 뭐 그걸 그리 발끈하슈.”

또판개가 그릇을 들고 물러섰다. 욕심에 한 번 찔러보기는 했으나 큰 미련은 없었다.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염려하던 자신의 옛 처지를 생각하면 하루에 세끼를 모두 채운다는 것은, 그것도 배가 부르게 먹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 섬엔 조련병 말고 대체 군사들이 얼마나 있길래 그러슈?”


영일이 차례가 되어 밥을 받다가 넌지시 떠봤다. 주걱질을 멈춘 화병이 영일을 올려다봤다.

“너무 많은 걸 알려 하지 말게. 이 말을 규찰대가 들었다면 당장 끌려가 문초를 당했을 게야.”


화병이 나무라고는 다시 주걱을 놀렸다. 일개 화병까지 이런 지경인지라 섬에 들어온 지 보름동안 영일이 알 수 있었던 건 고작 섬의 규모와 현재 조련하고 있는 조련병의 숫자 뿐이었다. 큰 바리 하나에는 밥과 국을 한 데 말고 다른 하나에 찬을 받아 그늘 아래에 퍼질러 앉았다. 그 옆으로 영중이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백년하청이겠어요. 형님. 오늘 밤이라도 한 번 돌아볼까요?”

영일이 수저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섬의 가장 평평한 부분인 중앙부엔 사방 백여 보쯤 되는 조련장이 있고 그 옆으로 초옥으로 된 조련병의 막사가 두어 동 있었다. 맞은편 조련장 너머 언덕엔 지휘부로 보이는 통나무 가옥들이 서너 채 있으며 그 우편 언덕 뒤로 무슨 막사들이 있는지 연신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워낙 작은 섬인지라 30리 달리기를 할 때는 섬의 가장자리 산 능선을 빙빙 돌아야 하는데 그때 보면 산 능선에 크고 작은 움막 막사들이 무수히 박혀 있음을 볼 수 있었으나 머물고 있는 사람의 수효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내린 포구 쪽으로는 하루에 두어 차례 이상 배가 들고 나는 모양이어서 정확히 얼마큼의 인원이 빠져나가고 들어오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아서라. 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날짜가 지나면 쉬 알게 될지도 모르고. 여하튼 섣불리 나섰단 예서 살아나가지 못한다.”

영중이 밥을 우물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러다간 어느 세월에….”
“명심하거라. 지금 나서면 절대 아니 되느니. 언뜻 보아도 밤에는 도처에 파수보는 자가 수십 곳이 넘을 게다. 당장 우리 막사만 해도 막사에 한 명씩 돌아가며 번을 서지 않더냐. 요지에는 필경 파수를 세워 두었을 게 분명하다. 당장 저 세 곳의 봉우리를 봐라. 주야로 얼쩡이는 파수꾼들이 보이지? 저게 바다만 바라보라고 있는 것 같으냐? 그리고 저 지휘부 쪽의 경수막을 봐봐. 항시 누군가가 지키고 있어. 이런 곳에선 경거망동하지 않는 게 최선이야.”

영중이 거듭 말렸다. 영일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판개가 다가왔다.

“거 우애있는 티좀 작작 내슈 성님. 볼썽 사납게 형제끼리만 이렇게 끼고 어울리니….”

판개가 영중에게 농을 걸며 앉았다. 그러고 보니 판개는 동생 또판개와는 드러내놓고 동기간 티를 안 냈다. 홀로 들어온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조련을 받는 이 전부가 서로 동기간이라는 조련관들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워낙 늦동이 막내라 그냥 자식 같아서….”

영중이 얼버무렸다.

“그런 소리 마슈 형님, 뜀박질 할 때 보면 외려 영일이가 성님을 뫼셔야겠던데 뭘.”
“허허, 하긴 그래.”

판개와 영중이 같이 웃었다.

“그런데 저 이들은 대체 뭐하는 이길래 진종일 저리 곡괭이질이지요?”

영일이 능선 위에서 땅을 파고 있는 삼십여 명의 무리를 가리켰다.

“저놈들? 거지반은 해적질하다가 붙들려 온 뙤놈들이고, 일부는 멋모르고 이 섬에 내렸다가 붙들린 밀수쟁이라드먼.”

“그런 얘길 누구한테 듣소?”

“우리 담당 조련관이 이야기해 주더구먼. 우리 수군 중에도 섬에 내렸다가 붙들려서 가담한 사람이 여럿 있나보이.”

“그렇다고 사람을 저리 강제로 붙들어 둬요?”

“몰라, 말로는 삼 년 약정을 하고 그 안에만 저리 강제 노역을 하기로 했다던구만. 그래서 말만하면 걱실걱실히 일도 잘 한다던데.”

“삼 년? 뭘 믿고 그 안에 보내준다 약속하는 게지? 그냥 고식지계인가 아니면 뭔 생각이 있어서인가?”

이번엔 영중이 물었다.

“뻔한 노릇 아니겠수. 그 안에 뭔 수를 내겠다는 게지요. 그러니까 삼 년 안에 우리가 동원되게 돼 있다 이 말이오.”

역시 상황판단이 빠른 판개였다.

“하긴 삼 년까지 끌 것도 없지….”

[땅, 따다다당]

영중이 말을 마치는데 저편 소나무밭 너머에서 요란한 총포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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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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