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인터뷰] 새 장편소설 <유림> 펴낸 작가 최인호

등록 2005.07.14 11:12수정 2005.07.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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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유교 역사를 그린 소설 <유림>을 낸 소설가 최인호씨. 그는 “유교는 불교와 함께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또 하나의 원형질”이라며 “지금처럼 어지러운 시대에 유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다.
2500년 유교 역사를 그린 소설 <유림>을 낸 소설가 최인호씨. 그는 “유교는 불교와 함께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또 하나의 원형질”이라며 “지금처럼 어지러운 시대에 유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소설가 최인호(60)가 ‘스님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만, 이번에는 새 장편소설 <유림>(전6권 중 1차분 3권 출간, 열림원 펴냄)을 펴내면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이 땅에서 공자는 이미 죽지 않았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섭게 승천하던 아시아의 용들이 잇달아 추락하면서 공자는 재기불능 상태로 용도 폐기되지 않았던가. 더더욱 유림들이 책제목만 보고 흥분해마지 않았지만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가 보란 듯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공자를 확인사살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작가들 중 누구보다 시절인연을 중요시 하는 최인호는 “나약한 펜”을 들어 특유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문장으로 공자의 혼을 불러들인다.

“공자여, 과연 그대가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을 다시 살아간다 하더라도 수년 안에 우리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제목부터 정해놓고 15년을 묵힌 작품

“개인적으로는 공자에 대해 별 매력을 못 느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15년 전 경허 스님에게서 충격 받아 <길 없는 길>을 쓸 때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불교와 더불어 유교적 원형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자는 초월적 삶이 아니라 현실적 삶에 집착한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유림>(서울신문)과 <제4의 제국>(부산일보) 등 두 신문에 동시연재를 하는 작가 최인호는 작품을 쓰다 잠깐 짬을 내 응한 인터뷰여서인지 묻기도 전에 공자에 대한 예찬부터 늘어놓는다.

“공자는 예수, 부처와 더불어 ‘3대 성현’으로 추앙받지만 이 두 성현과 달리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예로 제자가 병에 걸리자 공자는 기적을 행해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에 걸린 제자의 손을 잡고 함께 울 뿐이었죠.”


그는 이번 작품에서 유교의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유교의 완성자인 퇴계에 이르기까지 2천5백년 유교의 역사를 주유하면서 시대가 낳은 동양의 대사상가들을 시공을 초월해 되살려 놓는다.

최인호는 이 작품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듯했다. 공전의 히트작 <상도>와 더불어 <유림>은 작품을 쓰기도 전에 제목부터 미리 정해놓은 ‘유이(有二)’한 작품으로 15년을 묵혀 때를 기다려 왔기 때문이리라.


“10년 전 이미 두 차례나 공자의 고향인 곡부와 태산의 공자 사당, 공자가 주유열국을 시작하던 제나라의 수도 임치를 답사하면서 작품을 구상했고, 공자의 무덤을 둘러보면서 소설의 제목을 미리 정했었죠. 공자의 무덤 앞에 가면 실제로 ‘유림’이라는 이름의 숲이 있습니다. 그 숲이야말로 동양정신의 상징으로 보였습니다.”

‘~다워야 함’ 일깨우는 유교의 가르침

오마이뉴스 남소연
“‘동방예의지국’이란 이름의 우리의 찬란한 정신적 유산은 어디로 갔습니까. 무례와 부도덕으로 얼룩지고, 건국 이래 이처럼 정치가 혼란스러운 때가 있었던가요. ‘선비사상’을 낳은 국가의 이념은 부패한 관리들과 국민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먼 지도자들에 의해 혼돈과 무질서로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는 공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선비사상’만이라도 오늘에 되살리자고 했다. 그가 말하는 선비사상은 “청렴하고, 청빈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꼿꼿한 자존심으로 무장”한 정신을 말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은 진리와 원칙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진리와 원칙은 유교에서 목도할 수 있죠.”

그가 유교에서 발견한 진리와 원칙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덕목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다워야 함’을 일깨우며 “공자나 퇴계나 조광조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이 땅에서 일어났던 유교에 대한 장례식은 유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유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형식과 율법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시대정신을 늘 반영하는 사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광조의 태사혜 얘기는 ‘픽션’

<유림>은 어떤 작품인가

전6권 중 1차분으로 3권을 먼저 출간한 <유림>은 지금 <서울신문>에 연재 중이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책을 펴내면서 작가 최인호는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각권의 얘기가 독립된 단행본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판단에서 출간을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유림>의 1권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은 공자의 정명주의를 바탕으로 왕도국가를 세우려다 실패한 조선 중종대 개혁 정치사상가 조광조(1482년~1519년)를, 2권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은 유교의 창시자로 이상 국가 실현을 위해 70여 나라를 주유열국한 공자의 일화와 사상을, 3권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에 이르는 길’은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며 성리학을 완성한 퇴계(1501~1570)를 각각 다루고 있다.

현재 연재 중인 2부는 공자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유가의 계승자들이었던 맹자, 순자, 묵자, 주자, 왕양명 등 유림의 다채로운 모습을 다루고, 벼슬을 마다하고 은둔강학기를 가졌던 퇴계의 사상, 그리고 68세의 늦은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7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불과 6년의 짧은 기간에 인류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경전을 편찬한 성인 공자의 생애를 다룬다.

한편 2부는 연재가 끝나는 내년 말 경 출간될 예정이다. / 조성일 기자
이쯤에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작가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가지 해야겠다.

<유림> 1권은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정권이 바뀔 때면 으레 조명의 대상이 되는 정암 조광조(1482년~1519년)에 대해 다룬다.

정암은 모두가 알다시피 언제나 개혁의 상징적인 인물로 회자되는데, 최인호는 그의 작품에서 ‘왕도정치 실현을 역설하는 공자의 화신’으로 그린다.

특히 최인호는 조광조의 죽음을 몰고 온 ‘기묘사화’가 시작된, ‘신무문’에서 5백 년 후에 또 다시 신군부의 쿠데타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역사의 반복’에 몸서리를 치면서 조광조의 개혁사상을 등소평의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과 연결시키는 재치를 보여준다.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자 최인호는 그의 죽음을 갖바치가 준 ‘검은 신과 흰 신’으로 암시하듯 색깔논쟁으로만 국한되어 비참한 패배를 맞게 된다고 봤다.

여기서 그는 그 색깔논쟁의 배경으로 갖바치가 만들어준 한쪽은 검고, 한쪽은 흰 ‘태사혜’를 등장시켜 조광조의 사상과 주검을 묘사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런데 그 ‘태사혜’ 얘기가 픽션이라고 했다. 조광조에 대해 꽤 많은 자료를 읽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는(?) 기자에게 있어 태사혜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던 것. 그래서 어디서 그런 자료를 구했느냐고 물었더니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에도 “픽션”이었다.

“이 고사는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에 나오는 정도전에 관한 그 유명한 일화를 차용한 것입니다. 신발 한쪽이 희고, 다른 한쪽이 검은들 무슨 상관입니까. 발에 딱 맞으면 그걸로 족하죠. 조광조의 왕도정치는 이렇게 ‘실용주의적 개혁’을 지향했습니다.”

감쪽같이 속았다는 기자의 말에 최인호는 기분 좋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진짜처럼 거짓말을 잘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임무인데, 기자(독자)를 감쪽같이 속였다면 그걸로 성공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뷰 시간이 애초 예정됐던 1시간을 이미 넘어가고 있었지만 몇 시간이고 더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스케줄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유림의 숲으로 가자!”

오마이뉴스 남소연
중국을 거쳐 들어온 불교가 ‘원효’라는 위대한 사상가를 낳았듯 공자의 유교 또한 퇴계에 이르러 사상적 열매를 맺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세계적 성리학자 이퇴계의 초상은 천원짜리 지폐에만, 이율곡의 초상 역시 오천원짜리 지폐에만 존재하고 있을 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화폐 속의 그 인물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있음을 그는 개탄한다.

그는 응당 “21세기인 오늘날 공자와 조광조, 이황, 이이 등의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예상한 듯 그것은 “미시적인 생각”이라고 일축하고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에 젖어 이퇴계의 사상보다는 이퇴계의 얼굴이 그려진 그 화폐만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고 되묻는다.

“요즘처럼 과도기로 인한 혼돈의 파고가 높을 때일수록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대라도 진정한 혁신과 변화를 하려면 그 중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 원칙을 유교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유교를 되살려 현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인호는 ‘불행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독일 철학자 피히테의 말을 빌려 “나도 감히 내 사랑하는 조선민족들에게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글을 바치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인호는 박수무당이 되어 공자의 혼을 불러들여 “혼탁한 현실을 걸러주는 한 줄기 빛”을 찾는다.

“그 효(孝)와 그 충(忠), 그 예(禮), 그 경(敬)으로 가득 찼던 숲으로 가자, 유림의 숲으로 가자”고.

최인호는 어떤 작가인가

옥니에 곱슬머리인 작가 최인호는 해방둥이다. 1945년 서울에서 변호사 집안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한국문단에서 다양한 기록의 보유자로 유명하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벽구멍으로’가 당선작 없는 가작 입선), 최연소 신문연재 작가(1972년 스물일곱 나이에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 연재), 책 표지에 작가 사진이 최초로 실린 작가,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화된 작가 등.

그의 출세작은 아무래도 <별들의 고향>. 아내를 모델로 삼은 ‘키 155Cm, 몸무게 44Kg의 알 밴 게처럼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인 이 작품의 주인공 ‘경아’는 못난 남자들의 연인이 되었었다.

이후 최인호는 <겨울 나그네>, 그리고 또 다시 <사랑의 기쁨> 등 연애소설을 끊임없이 내놓기도 했다.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하여 ‘베드로’를 영세명으로 갖고 있는 그는 1994년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경허 스님의 ‘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 : 일 없음이 오히려 할 일이라는 뜻)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불교소설 <길 없는 길>을 썼고, 광개토왕의 영광을 얘기한 <왕도의 비밀>(2004년 <제왕의 문>으로 개제), <상도> <해신> 등 많은 작품을 썼다.

불교와 유교를 작품에 담아낸 그는 이번 작품이 끝나면 이스라엘로 건너가 2~3년 머물며 예수의 삶을 추적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 조성일 기자

유림 1부 - 전3권 세트 (1,2,3 권)

최인호 지음,
열림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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