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미국이 북한 포용할 차례

[이동현 칼럼]

등록 2005.07.15 09:06수정 2005.07.1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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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게 됐다. 이달 말 열리는 제4차 6자회담에서다. 13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태도가 매우 신중하다.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판을 깨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러나 물밑에서의 신경전은 매우 치열하다. 북측은 최근 영변 50MW 원자로 공사는 올해나 내년에, 태천 200MW 원자로는 2~3년 내에 공사가 끝날 것이라고 미국측에 슬쩍 흘렸다. 또 6자회담이 최종 합의에 이를 때까지 핵무기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엄포를 놨다. 지난 9~12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아서 설즈버거 2세 뉴욕타임즈 회장과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에게다. 상대방 언론을 통해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 것이다. 어떻게든 미국을 압박해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북한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의 기싸움도 만만치 않다. 지난 11일 미 하원은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한국인·일본인 납치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룰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362 대 1로 통과시켰다. 압도적인 표차다. 미 의회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협상력을 강화시켜 주기 위해 측면 지원에 나선 것이다. 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유엔 안보리 회부 카드’를 슬쩍슬쩍 내비치고 있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외교 전술이다.

이처럼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협상이 시작될 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뒤집어 보면, 이는 협상에서 상대의 양보를 받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고농축 우라늄 핵프로그램 문제가 회담 최대 쟁점

그렇다면 이번 회담의 쟁점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보상 시점이다. 북한은 핵 동결과 보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핵 개발을 동결한 시점부터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 포기를 선언하고 폐기 작업에 들어가야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둘째, 동결 대상이다. 고농축 우라늄(HEU) 핵프로그램을 동결 대상에 포함시킬 지 여부가 논란거리다. 북한은 HEU 핵프로그램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를 자꾸 거론하는 것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HEU를 포함, 모든 핵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한·미 외무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폐기 대상에는 플루토늄 뿐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도 포함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전혀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딕 체니 미 부통령을 중심한 워싱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확고한 입장이기도 하다.


셋째, 6자회담 성격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핵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핵 보유국가가 된 만큼 회담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3월 이후 북한이 꺼내든 새로운 카드다. 하지만 미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북한이 이를 고집할 경우, 회담 분위기는 처음부터 싸늘하게 식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의 이 카드는 협상용일 가능성이 크다.

첫번째 문제 역시 큰 걸림돌이 안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할 경우, 우리 정부가 200만kW의 전력을 북측에 제공하겠다고 이미 밝혔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 핵 포기를 전제로 한 핵 동결에 착수하는 즉시 회담 참가국이 2002년 12월 중단된 대북 중유공급을 재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HEU 핵프로그램을 동결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다. 이번 회담은 이를 둘러싸고 북·미간에 치열한 논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회담의 성패 여부도 이 문제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딜만이 해결책

해결책은 무엇일까. 빅딜밖에 없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게 협상이다. 미국이 HEU를 핵 폐기 대상에 포함시키길 원한다면, 북한이 바라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테러지원국 및 경제제재를 해제함과 동시에 북·미간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래야 매듭이 풀린다.

그동안 미국은 2차 북핵 위기가 HEU 때문에 불거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2002년 10월 미국이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한 이후, 미국의 일관된 주장이다.

미국에 묻고 싶다. 미국의 주장대로 북한이 HEU 핵프로그램을 가동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 때문이다.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 당시, 미국은 북한에 2003년까지 2000MWe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003년 12월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이 중단될 당시, 경수로 공사는 3분의 1밖에 진척되지 않았다. 틀림없이 북한은 경수로 공사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음이 분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은 제네바합의에서 북한과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완전 정상화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양측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합의문에 명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았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서는 양국 모두 서로에 대해 적대적 의사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다. 또 자주권을 서로 존중하고, 상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버렸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면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아가 대북 제재를 본격화했다. 그러고도 미국은 모든 책임을 북한에 덮어씌웠다. 모든 게 북한의 핵 개발 때문이라고.

미국은 솔직해야 한다. 아무리 힘의 논리가 국제정치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북한을 막무가내식으로 다뤄선 안된다. 미국이 그런 태도를 고수하는 한,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와 중동에서 반미감정만 키울 뿐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확고한 뜻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래선 안된다. 미국은 사태를 정확히 직시하고, 북한과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미국이 북한을 포용할 차례다. 시간은 결코 미국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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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 칼럼니스트입니다.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을 거쳐 94년 <중앙일보>에 입사, 현대사 및 북한 담당 전문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오마이뉴스> 부사장 겸 건국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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