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이 만든 간첩' 함주명씨, 21년만에 무죄 판결

서울고법 "증거불충분"... 재심판결에서 '간첩죄' 완전 무죄는 최초

등록 2005.07.15 10:39수정 2005.07.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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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1년만에 간첩혐의를 벗은 함주명씨(가운데)가 부인 이춘자씨(왼쪽)와 누나 함주옥씨와 함께 15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21년만에 간첩혐의를 벗은 함주명씨(가운데)가 부인 이춘자씨(왼쪽)와 누나 함주옥씨와 함께 15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사대체 : 15일 오후 1시]

"사건번호 2000재노16 피고인 함주명… 원심판결 파기, 무죄!"

15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 이호원 부장판사의 선고가 내려졌다. 잠시 동안의 침묵…. 이어 서울고법 403호 재판장엔 환호성이 터졌다. 함주명(74)씨가 21년만에 억울한 간첩혐의를 벗는 순간이다.

남파공작원 출신의 함씨는 지난 1984년 간첩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뒤 98년 특사로 풀려났다. 간첩판결을 받은 사람이 재심에서 완전하게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함씨는 지난 99년 구속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고문으로 인해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함씨는 지난 2000년 "이근안씨의 고문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서울 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99년 이근안씨는 8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함씨를 45일 동안 고문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시 이씨의 동료도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였다"고 고문사실을 증언했다.

재심판결에서 '간첩죄' 완전 무죄는 최초


함씨는 지난 1954년 월남한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남파공작원으로 자원한 뒤 남파됐고 당국에 자수했다. 이후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30여년 동안 평범하게 살던 함씨는 83년 4월 이근안씨 등에게 긴급 체포돼 45일 동안 영장도 없이 불법구속 됐고, 검찰 송치 뒤에도 63일간 대공분실에서 수사를 받았다. 결국 이듬해 1월 서울고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 98년 8·15 특사로 석방됐다. 무려 16년간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함씨가 조사 과정에서 이근안씨 등으로부터 고문을 받았다는 것. 그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집단구타, 잠안재우기 등'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함씨가 받은 혐의는 ▲군사기밀 탐지 행위 등 간첩활동 ▲허위사실 날조 또는 북한 찬양 등. 재판부는 함씨의 진술서와 제보자인 남파간첩 홍종수씨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했다. 홍씨는 북에서 함씨의 하숙집 딸이었던 우순학씨가 함씨가 남파된 뒤 '혁명가의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고 증언해 함씨의 간첩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21년 뒤 서울고법 재판부는 판결에서 "함씨가 전기고문, 물고문, 잠안재우기 등으로 인해 자백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조사당시 진술서는 증거로서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또 홍씨의 증언에 대해서도 "대부분 진술이 모호하고 불일치 한다, 또 일부 진술이 번복되기도 했다"며 "역시 증거로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눈물 흘린 함씨 "다른 조작간첩들의 억울함도 풀어줘야"

판결 뒤 함씨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던 그는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나 이외에 신귀영, 박동운, 이장형씨 등 재심청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는 조작간첩들의 억울함도 정부가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고 소감을 대신했다.

며칠동안 잠을 못 자 2kg이나 몸무게가 빠졌다는 함씨는 "16년간 옥살이하면서도 어떻게든 나가서 억울한 사정을 밝히겠다는 신념뿐이었다"며 "검찰에서 대법원 상고를 할 것으로 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은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을 고문한 이씨에 대해 "지난 99년 검찰에서 이씨를 만났을 때 칼이 있다면 죽이고 싶은 심정도 있었다, 그러나 포승줄에 묶인 그를 보니 측은해 보였다"며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 그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상 문제에 대해 "그것은 차후 문제"라며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은 뒤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함주명 사건 일지

1954년 4월 : 14일 남파 즉시 자수. 원주 소재 미 CIC(20일)를 거쳐 원주경찰서에서 조사받고 기소됨.
1954년 8월 : 춘천지방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 판결(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남. 당시 함주명은 춘천지법의 판결에 의해 대남공작교육을 받은 것, 한국전쟁 당시 민청에 가입한 사실과 관련하여 반공법,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었음.
1983년 2월 : 18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영장없이 불법체포 당함. 45일 동안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이근안에게 물고문, 전기고문 등 고문수사를 받음
"남파즉시 위장자수하여 석방된 후, 30여년간 약정된 무인함을 통해 수집, 탐지한 국가기밀을 북한에 보고하고 공작금을 전달받아 왔으며 친구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등 허위사실을 왜곡, 유포하는 등 고정간첩으로 활동해왔다"고 발표.
1983년 9월 29일 : 서울지방법원, 1심 선고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여 유죄판결, 무기징역 선고
1984년 1월 30일 : 항소심,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으로 무기징역 판결. 이근안, 항소심 3차 기일에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1983.12.29.)
1984년 5월 29일 : 대법원의 상고기각, 무기징역형 확정
1994년 7월 7일 : 함주명, 복역중이던 당시 자신을 고문했던 이근안 등 고문수사관 고소
1994년 10월 : 서울지검,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 항고-서울고검 '자료없음'을 이유로 기각 - 12월 대검 재항고 기각
1995년 1월 8일 : 고문사건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1998년 8월 15일 : 함주명, 16년만에 석방
1999년 10월 : 이근안 자수
1999년 11월 : 강금실 등 민변 소속 변호사 13인, 함주명에 대한 이근안의 고문행위에 대해 '불법감금독직폭행죄, 허위 증언에 의한 위증죄'로 고발
1999년 12월 27일 : 서울지검, "이근안이 함주명을 약 45일동안 불법감금하여 전기고문, 물고문 등 고문수사를 자행하여 상해를 입게 하고, 이근안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위증한 것은 사실임"을 밝혀냄. 그러나 공소시효가 완성(1990.3.19.)되었다는 이유로, 이근안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림.
2000년 9월 22일 : 함주명 재심청구(대리인 강금실 조용환 변호사 등).
2003년 10월 28일 : 서울형사고등법원, 재심개시 결정
2003년 11월 26일 : 재심 심리 첫 재판 열림. 서울형사고등법원 4부 조대현 부장판사
2004년 4월 7일 : 서울형사고등법원 4부 부장판사, 이호원 부장판사로 변경
2005년 6월 1일 : 증인 홍종수 출장(홍종수의 집) 신문.
홍종수는 1980년 당시 남파되었다가 체포된 간첩으로, 전향한 뒤(1982년 공소보류) 경찰소속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남파전 북에 있을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경찰에게 제보하였음. 그 제보가 단초가 되었고,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 수사관이던 이근안이 함주명을 체포하여 고문한 끝에, "위장자수 고정간첩 함주명" 사건이 만들어졌음. 홍의 제보내용은 자신이 관리하던 학교의 교원이던 우순학이라는 여성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남들에게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우순학의 남편은 전쟁때 눈에 부상을 당한 ‘애꾸눈’으로 남파되어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요지였음.
2005년 6월 15일 : 14차 재판, 결심. 검사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당시 사형 구형) 대로 선고해 달라"고 주문. 함주명 최후진술
2005년 7월 15일 : 서울고법,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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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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