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힘들고 지치면 우리집에 와 쉬세요

등록 2005.07.15 12:20수정 2005.07.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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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엔 못 내려오겠다던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저녁 약속 끝내고 밤 기차 타고 내려갈 테니 역으로 마중을 나오라는 이야기였다. 새벽에 도착해 다음 날 점심 먹고 다시 올라가는 여정. 웬만한 사람 같으면 피곤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어지간히 집이 좋은가 보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주말부부 경력이 어언 6년여. 속 모르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얼마나 살다 간다고 부부가 그렇게 떨어져 사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가정을 꾸렸으면 식구끼리 오순도순 사는 것이 순리인 것은 자명한 이치.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a 우리 집 마당

우리 집 마당 ⓒ 조명자

그러나 우리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우선 서울의 집값이 너무 비싸 세를 얻을 엄두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를 얻더라도 최소한 방 3개짜리는 얻어야 하기 때문에 전셋돈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1억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 많은 돈의 이자를 감당하려면 식구들이 모여 살면서 얻는 행복의 두 배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판이니 어떻게 합칠 생각을 하겠는가.

주말에 꼭 가야 할 약속만 없으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시골집으로 뛰어내려오는 남편이다. 집에 와서 몽이와 뒷산도 올라가고, 동네 어른들 찾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무엇보다 마누라가 차려주는 밥상을 대할 수 있다는 것도 보통 행복이 아닌가 보다.

a 백일홍 꽃밭 앞에 남편이 쌓은 탑

백일홍 꽃밭 앞에 남편이 쌓은 탑 ⓒ 조명자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조림에 나물반찬. 이것저것 늘어놓은 밥상을 내어 놓으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먹는 모습만 보아도 내 배가 절로 부른 느낌이다. 남의 돈 먹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힘들고 지친 직장생활에서 돌아 갈 집이 있다는 것, 내 남편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나는 잘 안다.

다른 친구들 마누라처럼 능력이 있어 맞벌이를 하나, 아니면 몸이라도 건강해 약값 걱정을 안 시키나. 도무지 나 같은 마누라는 남편에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다. 그래도 부실한 마누라에게 싫은 내색 않고 묵묵히 가장의 책임을 다 하는 남편. 내가 그런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남편이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을 지켜주는 일, 그것 아닐까.


a 원추리 옆에 늦은 자두

원추리 옆에 늦은 자두 ⓒ 조명자

허름한 시골집 사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쁘게 가꿔놓았다. 뭐든지 정갈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집안 살림도 정신없이 늘어놓지 않는다. 꼭 필요한 살림을 최소한으로. 그릇이든 가구든 있는 것 이외에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는 주의다.

돈을 안 들이고 예쁜 집 만드는 법.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꽃밭 가꾸는 것이 최고다. 봄, 여름, 가을…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로 내 집 마당은 화려하다. 부지런히 풀매고 거름 주고. 나팔꽃, 수세미 같은 꽃들에겐 넝쿨 감고 갈 비닐 끈도 매어주고. 잔가지 정신없는 나무들 찾아 가위질도 해주다 보면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판이다.


a 깨박사 나리와 졸고 있는 분꽃

깨박사 나리와 졸고 있는 분꽃 ⓒ 조명자

아침에 나가 장맛비에 고꾸라진 접시꽃 대궁을 깨끗이 잘라버리고 풀까지 매어 놓으니 주변이 시원하다. 한여름 남편에게 즐거움을 몽땅 안겨준 접시꽃과 이별하니 그 옆에 '아기 범부채'가 접시꽃 대신 빨간 웃음을 함뿍 선사한다.

연보라 비비추 꽃, 노란 원추리 꽃, 봉숭아, 백일홍, 도라지 꽃…. 깨박사 나리꽃과 연분홍 글라디올라스까지 합쳐놓으니 우리 집 꽃밭이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어느 고대광실이 부러울까? 부부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세게 남아 남편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베이스 캠프'를 지키고 있는 나!

남편에게 나는 행복을 배달해 드리는 '행복 전령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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