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꿈에도 못 잊을 우리의 백두산

다시 한 번 백두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등록 2005.07.18 08:14수정 2005.07.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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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6일 새벽 5시 40분. 이도백하역에 도착했다. '고구려 연구회' 서길수 교수님의 인솔로 '고구려 유적답사'를 시작한 지 벌써 4일째. 길림성 유하현의 나통산성과 요녕성 환인의 오녀산성 그리고 길림성 집안의 국내성, 환도산성, 광개토대왕비와 능, 장수왕릉…. 숨가쁘게 이어진 고구려 유적답사를 마치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의 초입, 이도백하역에 다다른 것이다.

전날 밤 통화역에서 9시 기차를 탔으니 9시간 가까이 달려온 것이다. 드디어 오늘, 백두에 오른다. 너나 할 것 없이 44명 일행 전원의 얼굴이 흥분으로 들떴다. 출구를 빠져나오기 위해 줄서기를 하고 있는데 출구 옆 기둥에 그려진 키재기 자가 눈에 띤다. 서길수 교수님 말 대로 어린이 요금을 키 순서 대로 받기 위해 그려진 것 같았다. 중국은 기차는 물론 극장, 놀이공원 어디든지 어린이 요금을 산정하기 위해 키재기 자를 그려놓고 있다고 한다.


a 이도백하역에서 본 키재기 자

이도백하역에서 본 키재기 자 ⓒ 조명자

역 앞에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낡기는 했지만 로고를 보니 대우 버스다. 우선 의자 사이가 넓어 편히 다닐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신이 났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버스 주위를 순식간에 에워싸는 잡상인들. 버스에 타는 우리를 가로 막고 난리다.

산삼 6뿌리에 만원이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이파리까지 달린 삼을 흔들며 ‘산삼 4뿌리에 100위안’이라고 유리창을 두들긴다. 백두산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도 처음엔 1개에 10위안이라고 하더니 10분 후에는 3개에 10위안으로 바뀌었다. 하여튼 중국 사람들 거짓말은 알아줄 만하다.

'백하'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강을 의미하는 말로써 이도백하는 장백폭포에서 시작되는 강이라 한다. 일도백하에서 4도백하까지 있는데 이도백하가 생성된 지는 고작 100년 남짓. 이도백하의 개척자는 조선인으로 '비산비야'의 명당을 찾아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는데 어찌됐든 적송과 자작나무 군락이 울창한 넓은 들판이니 '비산비야’는 틀림없겠다.

a 천지에서 바라 본 백두산 능선

천지에서 바라 본 백두산 능선 ⓒ 조명자

행정구역이 안도현에 속한다는 이도백하 시내로 들어왔다. 제법 깨끗한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시내에 활기가 넘친다. 이동통신, 호텔, 병원, 장백산 자연박물관, 온실세차…. 한글 간판도 쉽게 눈에 띈다. ‘백두산 온천장 식당’에 여장을 풀었다. 식당과 선물가게와 숙박을 겸한 시설이다. 조선족 주인은 아주 세련된 신사처럼 보였으며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묵었던 중국 2성급 호텔보다 깔끔한 편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버스 운전수가 재촉 하고 난리다. 천지를 보려면 지금 올라가야 된다는 것이다. 이곳 운전수들은 천지가 맑게 개는 시점을 귀신같이 알아 안내를 한다는데 그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천지 보기가 힘들 만큼 천지는 변화무쌍하단다.

“3대가 적선을 해야 천지를 본다.”


서길수 교수님이 겁 주듯이 하신 말씀이다. 3대는커녕 1대도 적선을 못했는데 천지를 알현할 수 있을까? 먼저 갔다 온 친구들이 맑은 천지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하도 이야기를 많이해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10분쯤 갔을까? 백두산에도 정문이 있었다. 입장료를 계산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서 천지까지는 지프로 간다. 지리산 성삼재 올라가는 산길보다 훨씬 완만한 산길이 구불구불 그려져 있다.


시멘트 포장한 지가 얼마 안됐다는데 지금도 곳곳에 공사 마무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백두산 천지! 야생화를 볼 수 있을까? 서길수 교수님을 도와 우리를 인솔해 주는 길림대 대학원 고고학과에 재학중인 유학생 정원철 학생 옆구리를 찔렀다.

“천지 올라가는 길에 백두산 야생화 군락이 있어요?”
“참, 조 선생님 야생화 보고 싶어 오셨다 했지요. 그런데 이쪽은 야생화가 별로 없는데…. 찻길 옆에 조금씩 있긴 하지만 지프 기사한테 세워 달라지 않으면 사진 찍기가 어려울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맥이 빠진다. 사진 잘 찍어 오라고 남편이 마음먹고 사준 디지털 카메라. 기계치인 내가 사진 제대로 찍어 보려고 얼마나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었던가.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나무가 있을 리가 없다. 지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천지 가는 길. 화산재에 뒤덮여 회색빛인 능선 돌 틈 사이사이, 백두산 야생화가 몇 포기씩 숨어 있다. 연미색이 환장하게 아름다운 두메양귀비, 하얀색, 연분홍색 들국화는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바위 구절초렸다.

a 백두산 야생화, 바위구절초

백두산 야생화, 바위구절초 ⓒ 조명자

저기 있는 보라색 꽃은 용담일까? 책에서 봤던 꽃모양을 생각하며 이름을 맞혀본다. 차창에 코 박고 어쩔 줄 몰라 하다 염치불구하고 기사아저씨한테 잠시 정차부탁을 할까 침을 흘려봤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한 줄 개미처럼 앞 뒤 줄줄이 이어오는 지프 행렬. 정차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저 하늘거리는 ‘두메 양귀비’를 고개가 꺾이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짝사랑에 애달픈 처녀 가슴처럼….

한 20여분이나 왔을까? 지프가 갑자기 멈췄다. 천지 입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쩌기가 천지”라는 서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기도 안차다. 가파른 언덕 하나만 오르면 백두산 꼭대기에 닿는다니 이것이 2155m 맞아? 햇살 하나 없는 흐린 날씨. 그러나 천지엔 구름 한 점 없었다.

가파른 왕모래 언덕을 숨차게 올라갔다. 일분 일초라도 더 빨리, 천지가 보고 싶어서였다. 백두산 등정할 생각에 방풍 점퍼를 준비해 온 나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우리 일행 중엔 얇은 옷차림이 많았다. 천지에 가까워 올수록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에 순식간에 시푸르둥둥해지는 얼굴들. 몇 십분 있으면 동태가 될 태세다. 그러나 중국인이 누구인가? 돈 벌 쾌를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다후다로 만든 국방색 코트를 빌려주는 장사꾼들이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었다.

a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 조명자

천지! 드디어 천지의 푸른 물이 발아래 펼쳐졌다. 햇빛 한 점 없는 낮은 하늘. 매서운 삭풍 그리고 고요한 푸른 호수. 순간 숨이 막히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장엄하고도 신비스러운 자연의 향연. 내 평생 이런 경건함을 맛볼 수 있으리라 어찌 짐작했었던가.

a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지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지대 ⓒ 조명자

흐렸지만 말할 수 없는 맑음이 있었고 휘몰아치는 바람이 요란했으나 고요했다. 백두산 16개 봉우리 중에 6개는 중국 땅에 속해 있고 나머지는 북한 것이란다. 마주 바라보이는 북한의 백두산. 남사면 쪽이라 푸른 초원에 둘러싸인 봉우리가 아름답다. 동쪽 봉우리에서 호수까지 내려오는 긴 계단. 군사기지가 그쪽에 있는 것 같았다.

단체행동이라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하기 어려웠지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천지를 배경으로 몇 커트 찍고 나서 사람이 적은 왼쪽 봉우리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갔다. 심호흡을 한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손 모아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 기도는 크게 시작해서 제 식구 안녕을 비는 것으로 마무리하라고 그렇게 귀가 닳도록 들었건만 조급한 마음에 순서가 뒤바뀌었다. 세계 인류평화와 내 나라의 평화는 간 곳이 없고 오직 내 식구 건강과 만사형통이 기도의 전부다.

천지를 내려오며 모가지가 비틀어지도록 두메양귀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쁜 것, 에구 예쁜 것” 마치 새끼에게 말하듯 작별인사를 보낸다. 고것들을 뒤통수에 두고 오며 언뜻 그런 생각이 든다.

a 백두산 야생화, 두메양귀비

백두산 야생화, 두메양귀비 ⓒ 조명자

“한 인간에게 여러 가지 복을 한꺼번에 주실려구? 하느님은 공평하신 것이야.”

점심을 먹고 다시 천지로 향했다. 이번에는 장백폭포 밑에서 걸어 올라가 천지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는 코스다. 폭포 꼭대기까지 강파르게 설치한 시멘트 계단. 맨 윗부분은 아예 터널을 만들어 버렸다. 이 계단도 완성된 지 오래 되지 않은 것이란다.

계단이 없었을 때는 사고 위험이 높아 날씨가 나쁘면 올라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릎이 시원찮은 까닭에 팔십 노인네처럼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며 힘겹게 오르는데 무릎에서 쉴 새 없이 삐그덕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천지 분화구 가는 길을 도저히 중단할 수가 없었다. 새벽의 그 감동.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어서였다.

장백폭포, 또 다른 이름으론 비룡폭포란다. 용트림 하듯 거대한 물보라가 하늘을 가른다. 하늘에서 땅까지, 아득한 물줄기의 유려한 곡선이 승천하는 용의 뒤태처럼 신비함을 더 해 주고. 넋 놓고 폭포를 바라 보다 얼떨결에 정상에 도달했다. 세상에, 내가 천지를 그것도 두 번이나 오르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곳이 분화구 안인가, 벌판인가? 천지 안은 넓고 넓었다. 새벽의 천지처럼 고요함은 변함이 없었으나 분화구 안이라 바람이 없고 안온하다. 천지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작은 호수를 이뤘는데 그 호수 가운데 고무보트를 유유히 저어 오는 사람이 눈에 띈다.

a 이름 모를 백두산 야생화

이름 모를 백두산 야생화 ⓒ 조명자

잡풀과 작은 바위가 뒤섞인 오솔길로 들어섰다. 오무라진 튤립 같은 모양의 야생화가 발아래 있다. 하얀 색깔에 점점이 푸른 무늬가 새겨진 야생화. 이름을 알 수 없었지만 무리져 피어있는 모습이 청초하기 이를 데 없다. 매발톱은 분명 아닌데 그 비슷하게 생긴 연분홍색 꽃 군락. 흰색과 연분홍색의 해맑은 바위구절초가 돌 틈 여기저기 환상적인 군무를 펼치고.

아아, 그리고 몇 미터 저 앞. 두메양귀비 한 송이가 새초롬한 모습으로 내 눈길을 붙들었다. 정신없이 달려가 두메양귀비를 보듬듯 엎드렸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여기 있었구나."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얼굴에 대본다. 맑고 맑은 꽃잎, 그 속에선 병아리 숨소리가 들려나온다.

천지 물에 손을 씻고 바위 위에 앉았다. 파란 초원이 있는 언덕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고 그 옆에 회색 모래 언덕은 북한 쪽에서 봉우리 끝까지 차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란다. 심연의 색깔이 이러할까? 천지의 물빛은 어두웠지만 탁하지 않은 푸르름이었다.

마치 깊은 명상에 잠긴 구도자의 모습처럼 고요히 가라앉은 천지의 물빛. 그 물빛을 오래오래 지켜보며 나 또한 작은 물방울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다시 눈을 감는다. 천지 위에서의 짧은 기도제목. 아프게 참회를 했다.

"너무 욕심이 앞섰습니다. 지은 죄가 태산 같은데 뉘우침 없이 복만 더 주십사 떼를 썼습니다. 살면서 너무 많은 죄를 지은 것 참회합니다. 앞으로 똑같은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행복을 빌듯이 남의 행복도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부처님, 부처님…"

덧붙이는 글 | 곧, 내 나라 땅을 밟아 백두산에 오를 수 있다 합니다. 환희에 가슴이 벅찹니다.
작년에 올랐던 백두산 천지. 꿈에도 잊지 못할 그 곳을 그리며 추억 한 페이지
를 다시 엽니다.

덧붙이는 글 곧, 내 나라 땅을 밟아 백두산에 오를 수 있다 합니다. 환희에 가슴이 벅찹니다.
작년에 올랐던 백두산 천지. 꿈에도 잊지 못할 그 곳을 그리며 추억 한 페이지
를 다시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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