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08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7.19 21:56수정 2005.07.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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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이군 또"

판개가 읊조렸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밥 먹을 때가 되면 저 쪽에서 방포 습련이 시작되었다가 오후가 되어야 끝났다. 사수들이 사선에 서는 동안 순환하며 밥을 먹는 것 같았다.


"저 놈의 소리, 처음엔 밥알이 곤두설 것 같더니 이젠 제법 정감이 생기는 것도 같고…."

영중이 말했다.

"어휴, 성님은 좋겠수. 저 시끄러운 소리에도 소화가 잘 된다니."

[꽝, 꽝…]

"에그머니나, 이젠 저 놈까지?"


이번엔 호응이나 하듯이 구릉 너머에선 화포 발사음이 터졌다. 판개가 화들짝 놀랐다. 매일 들을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종종 들었던 그 화포소리였다. 조련관들은 저 소리가 '대포'에서 나는 소리라 했다. 한 마장 이상의 거리임에도 땅의 진동이 느끼게 하는 묵직함이 있었다.

"저거 소리만 요란한 것 아녀?"


영중이 말했다.

"글쎄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관짜리 포환이 십 리나 날아간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판개였다.

"애개… 그럼 고작 천자총통에 수철환 하나를 넣고 당겼을 때 사거리하고 큰 차이가 없네?"

영일이가 말했다.

"그래도 그런 소리 말어. 제 아무리 대구경의 천자총통이래도 대장군이나 넣고 쏴야 효험을 볼 텐데 그럼 고작 거리가 1200보여. 그것도 말이 그렇단 얘기고 내가 수군에 있을 땐 그렇게 나가는 꼴을 본적이 없어. 고작 500보가 좀 넘을까?"

"그래도 융원필비에 보면 그리 적혀있다고 윤 군관이…."

영일이 이야기를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윤 군관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영중의 얼굴빛도 굳어졌다.
잠시였지만 판개의 눈빛도 빛났다.

"무슨 소리지… 군관이라니?"

"별거 아닐세. 이 아이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군관아치가 있어. 무술도 그렇고 병법에 대한 식견도 그이한테 얻은 게 많아?"

영중이 나서서 말을 수습했다.

"정말 그뿐이오 성님?"

"어허 말해 무엇해!"

아직 확 풀리진 않았지만 판개의 표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여기 병기에 대해 더 안다는 사실이 우쭐한 지 금세 화포이야기를 이었다.

"게다가 그 십 리라는 것이 조준한대로 겨냥한대로 그냥 떨어지는 거리란 말씀이야. 어디 그뿐인가 저 포환이 땅에 떨어지면 벽력같이 터지며 불바다를 이루는 통에 그 섬뜩함이 지옥이 따로 없다는구먼."

"판개 형님은 그걸 다 어찌 아남요? 언제 보기라도 하셨대요?"

"아, 내가 우리 담당 조련관님하고 친하댔잖아, 그 양반이 그랬다니까 그러네. 글쎄 저 육중한 포성을 듣고서도 의혹이 있단 말이야?"

"그거야 눈으로 보아야 알지요. 이날 이때까지 줄맞추기하고 뜀박질만 할 줄 알았지 뭐 하나 제대로 해 본 게 있나요."

영일이가 말했다.

"그런 걱정은 말거라. 그러잖아도 오늘부터 방포 조련을 할 터인즉 기대해도 좋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판개와 영중 형제가 뒤를 돌아봤다.
독사눈 조련관이 허리에 손을 짚고 서있었다.

----

"준비된 사수부터 방포!"

[탕, 타탕…]

동이의 구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개 사로에서 제각각 흰 연기와 함께 보총이 대기를 찢어내는 듯한 총성을 토해냈다.

"방포!"

미처 노리쇠 당길 시간도 없이 연이어 구령이 올랐다.

[타탕, 탕…]

다시 한 차례 발사음이 진동했다.

"방포!"

허연 얼굴에 멀쑥한 젊은이였지만 조련관이라는 지위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지 손을 허리춤에 걸고 구령을 붙이는 동이의 모습이 제법 묵직했다.

[탕,탕…]

이젠 총성의 반응속도가 구령에 뒤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방포!"

[탕]
[탕,탕…]

시간차를 상당히 둔 채 총성이 간헐적으로 들렸다.

"방포!"

[탕]
[철커덕-탕][탕]

급기야는 방포하는 소리 노리쇠 당기는 소리, 각각의 소리가 뒤엉켜 튀었다.

"방포!"

동이는 숨쉴 틈을 주지 않고 구령을 보냈다. 네 번째나 다섯 번째 격발부터 동이의 구령을 따라가지 못한 사수는 이제야 네 번째, 다섯 번째 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왼손목에 동여맨 간이 탄약띠에서 총환을 잡아 빼기 무섭게 개방된 노리쇠에 얹고 민 후 조준하고 발사하기까지 단 몇 호흡이내에 이루어져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초탄과 몇 번째 발사까지는 곧잘 쫓아오던 사수들이었지만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탕, 타탕][철컥-탕]

장단 안 맞는 풍물패처럼 여기저기서 산발적이 총성이 터졌다.

"그만!"

동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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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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