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등산화 차려 신고 온 아이도 있지만 샌들 신고 온 아이도 있습니다. 오르막길에선 샌들이라도 큰 어려움은 없지만 사람들 발길로 다져진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선 어려움이 많습니다. 운동화 신고 온 아빠가 샌들 신은 아들의 손을 잡고 내려갑니다.
"아빠, 미끄러워."
"그러게 운동화 신고 오라고 했잖아."
"앉아서 미끄럼타고 내려갈까?"
"옷 버리면 엄마가 가만히 있을까?"
"그럼, 어떡해."
"보폭을 작게 하고, 내 손 잡고 내려와."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엉덩방아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아빠 팔에 매달려 가까스로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체되는 두 부자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아이를 팔에 매달고 내려가는 아빠의 이마에선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내리막길 굽어진 부근에서 아이를 팔에 매달고 내려가던 아빠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곁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운동화 신었는데도 넘어졌잖아."
넘어진 아빠는 얼른 일어서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손을 다시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아빠도 넘어질 때가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