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분무기이다. 가볍고 튼튼했다. 작은 주머니까지 달려 있어 편리하다.전희식
장마가 끝나니 바빠졌다. 장맛비 속에서 속만 끓이다가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탄저병 제로를 향한 대장정의 출발이다.
담 너머로 옆집을 넘겨다봤다. 할아버지가 날씨도 더운데 좀 쉬지는 않고 마당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른 담장을 휙 넘어서 갔더니 뭐라 한마디 하려고 입을 오물오물 하시는데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할아버지 분무기 좀 주세요."
"뭐? 분… 뭐?"
"약 통요. 농약 통요."
담장 넘어 다닌다고 한소리하려던 할아버지는 그건 벌써 까먹고 농약 통 달라는 내 말을 반신반의 하느라 눈을 더 크게 뜨시더니 금세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농약을 쳐? 히시기 타락했네? 어때? 농약 안치고 농사 못 짓겠지 응?"
농약이 아니고 우리 고추들 먹이려고 내가 보약 좀 달였다고 했더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은지 "보약? 농약 아니고? 한의원에서 지었어? 그 노무 고추에 보약 달여 멕여 가지고 수지맞겠다. 츳츳"하고는 뒷간 선반에서 농약 통을 꺼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