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3m 두타산에서 추암바닷가로 뛰어들다

물 한 모금으로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등록 2005.07.22 08:45수정 2005.07.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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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무엇 하나 풍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나도 여름이면 남 보기에도 엄청나게 호사스런 생활을 하게 된다. 물론 여름 한철 내가 누리는 호사스러움은 악착같이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남보다 특출나게 재수가 좋아서 얻게 된 행운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삶의 몇 차례 우연이 만들어준 선물일 뿐이다.


한여름 밤, 낮 동안의 찜통더위가 열대야로 이어지는 시간에도 내가 사는 스무평 남짓한 아파트 거실 창문 밖으로는 오징어 배에서 끌어올리는 낚시소리며 밤바다의 차가운 파도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그 짭짤하게 소금기 배인 소리를 안주 삼아 김빠진 맥주라도 한잔 마실 때면 언제나 그러하듯 찬 기운을 잔뜩 묻힌 바닷바람이 내 러닝 속옷으로 파고든다. 그때 느끼는 냉랭함이란 늦가을 서리 맞은 낙엽을 휩쓸어가는 바람만큼 차고 시리다.

하긴 이런 곳에 살다보니 내가 지금껏 살면서 머리로는 이해를 할 듯하면서도 몸으로는 좀처럼 실감을 못 해본 몇몇 어휘들이 있다. 이를테면 '찜통더위'나 '피서' 같은 말들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피서'라는 말은 내 개인적으로 피서를 해 본 경험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일 년 동안 벼르고 별러 온갖 고생을 다해 가며 찾아오는 피서지 중의 한 곳이 바로 지금 내가 사는 곳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방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 달려 나가면 촛대바위나 새해 일출 장소로 유명한 추암 바닷가의 그 선선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

물론 한여름 낮 동안 쏟아지는 여름 태양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맞기가 지겹다고 느끼는 날이면 역시 자전거를 타고 20분 정도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무릉계곡 찬 얼음물에 발을 담근 채 시린 발 때문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가면서 수박 한 통 깨먹고 오는 신선놀음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좀더 적극적이고 발랄한 여름나기를 바란다면 등산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이름만 들어도 그 수려한 모습에 감탄을 자아낼만한 두타산이며 청옥산이 여름 한철 언제나 자신의 시원스럽고 넉넉한 품을 내 보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물론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으며 여름 무더위와 싸우기가 갑갑증이 나는 사람이라면 자전거 페달을 밟아 굽이굽이 태고적 신비함을 간직한 백봉령 고개를 힘차게 올라가서 출렁이는 동해 바닷물을 향해 온몸을 던져 내려 꽂히듯 되돌아오는 호쾌한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더위 때문에 좀처럼 잠 못 이룰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잠들어 버리기에는 여름밤이 조금은 아쉽게 생각된다면 낮 동안 냉장고에 얼려둔 오징어회(이곳에서 오징어는 절대 고급스런 횟감이 아니랍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횟감이지요)를 꺼내어 동해 바다 수평선 따라 불빛을 내뿜고 있는 오징어잡이 배의 이국적인 정경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소주라도 한잔 걸치는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좀 솔직하게 말한다면 산과 바다와 계곡으로 여름 무더위를 옴짝달싹 못하게 동여매어 놓은 듯한 이곳에 사는 나도 여름 무더위와 한바탕 싸우기 위해서는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름 더위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그렇다. 모두들 여름 무더위를 피해서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숨어들 즈음에 나는 즐겨 여름날 땡볕을 찾아 무더위 사냥에 나선다. 남들에게는 다소 무모한 듯 보이는 나의 여름 사냥은 그러나 하나의 의미 있는 도전이자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스무살 청년의 낭만을 찾아가는 모험의 과정이다.

대담하게 책상머리까지 다가와 추군대는 더위를 쫓아 떠나는 내 여름날 모험의 시작은 배낭꾸리기부터 시작되는데 대부분 먹을거리 준비가 전부이다. 먼저 밥솥에서 한 주걱 밥을 떠서 고추장과 함께 비닐주머니에 담아 풋고추 서너 개와 배낭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오이 두 개, 물 한 통이면 준비는 끝난다. 물론 이외 잡다한 먹을거리를 더 준비할 수도 있으나 한나절 산행길에 배낭이 무거우면 내가 먼저 지칠 수 있으므로 배낭은 가벼울수록 좋다는 게 그동안 경험이 가르쳐 준 지혜이다.

이번 모험은 해발 1383m의 두타산 정상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올라간 다음 동해 바다 그 너른 품안으로 그냥 첨벙하고 뛰어들 듯이 달려 내려오는 것이다.

산길에 접어들면서 내심 먹는 다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름 더위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하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더위를 쫓아 산 정상까지 도달하기 전까지는 한 모금의 물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다짐이 첫째라면 하산하는 길목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계곡 전까지는 절대 앉지도 않고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는다는 게 두 번째 나와의 약속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제 불혹에 접어들 내 몸이 아직도 싱싱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보통 8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행길을 4시간에 완료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다짐들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런 긴장감 없이 떠나는 산행이면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을 것 같아 내 나름으로 고행을 자초하면서 조그마한 재미나 느껴볼 생각으로 정한 규칙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여정은 애초의 단호한 다짐을 너무나 쉽게 허물어 버린다. 두타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처음 밟아야 하는 두타 산성길은 거의 코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역시 턱 끝에서 헐떡인다. 채 반시간도 걷기 전에 온몸은 땀으로 질펀하게 녹아내리고 발길은 끈적한 더위에 눌러 붙어 땅바닥에서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더위를 찾아 온몸으로 부대껴 싸우려는 나는 풍차에 뛰어든 돈키호테마냥 초반부터 그로기상태가 된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관성의 힘으로 나아갈 뿐이며 고개를 들어 발밑으로 펼쳐진 그윽한 산골짜기의 풍경을 볼 기력도 없다. 뿐만 아니라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서 산밑 계곡으로 시원스럽게 흐르던 계곡물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이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천근 무게로 내딛는 내 발걸음이며 간절하게 생각나는 것은 한 모금의 물뿐이다. 특히 어쩌다 배낭에서 찰랑이는 물소리를 들을 때면 애초의 약속이고 다짐이고 다 팽개치고 미지근한 물이나마 마음껏 들이키고 싶은 마음뿐이다.

정상에서 물 한 모금, 고추 한 입

그러나 잠시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한여름 더위를 피하지 않고 애써 더위를 찾아 싸우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처음의 다짐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불혹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확인도 하면서 일상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작은 행복들, 이를테면 한 모금의 물이라든가, 짧은 휴식들,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그늘, 공원의 벤치, 적당한 게으름 등등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른 사람들이 한여름 피서를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면서 삶의 여유를 찾는다면 더위를 쫓아 비장한 각오로 산행에 나서는 나는 오히려 몸과 마음을 팽팽하게 긴장시킴으로써 일상의 작은 것들이 주는 행복을 뒤늦게 확인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힘든 산행이 이어지면서 두타산 정상에 도달할 쯤이면 한여름 더위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고 타는 듯한 갈증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이윽고 정상에 도달해서 마시는 한 모금 물맛이란 세상 그 어떤 진귀한 음식보다 달고 맛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수통의 물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정상에서 타는 듯한 갈증을 몇 모금 물로 해소를 하고 나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올라올 때는 갈증과 힘겨움 때문에 허기를 느낄 새도 없었지만 내리막에선 오직 밥 생각뿐이다. 물론 배낭에 든 점심도시락 메뉴는 기껏해야 밥과 고추장, 그리고 고추가 전부이지만 고추장의 매콤한 맛을 생각하면 저절로 침이 고이는 듯하다.

내리막이라도 점심 먹을 장소로 정한 계곡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난 허기와 갈증을 달래기 위해 오이를 꺼내 먹는다. 이 역시 천상의 복숭아 맛보다 더한 꿀맛이다. 한 입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살아 있다는 행복을 느낄 정도이다. 누군가 이때 먹는 오이가 어떤 맛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말로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이상 그 맛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역시 삶은 언어 이전에 행동이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듣게 되는 가장 반가운 소리가 계곡의 물소리이다. 그건 곧 휴식의 소리이며 안락의 소리이다. 지금 그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은 작은 실개천이 흐르듯 졸졸거리는 소리로부터 시작해서 걸음이 빨라질수록 이 계곡의 물소리, 저 계곡의 물소리가 한데 합치면서 골짜기를 뒤흔들 듯, 여름 무더위를 쨍하고 깨어버릴 듯 들려온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곧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소리로까지 확장된다.

여름날 자연이 들려주는 시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어느덧 계곡물에 닿는다. 난 그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배경음악 삼아 흐르는 계곡물에 철퍼덕 주저앉아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결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얼른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내 소박한 점심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숟가락도 없이 한손 가득 밥을 퍼 담아 입속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본다. 쌀알의 고소하면서도 은근한 맛이 혀끝에서부터 목구멍으로 그리고 뱃속으로 짜릿한 전류가 되어 흐른다. 여기에 덧붙여 큰 고추를 하나 꺼내 들고 고추장에 듬뿍 찍어 한 입 크게 베어 물 때쯤이면 세상의 모든 행복은 마치 나 혼자 다 차지한 듯, 얼굴 가득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번진다. 이럴 때는 그저 마구 웃어제껴야 한다. 이 깊은 산중에 듣는 사람도 없겠지만 혹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어디 대수냐?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어찌 크게 한바탕 웃지 않고 있을 수 있다더냐.

난 그저 미친놈 마냥 계곡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크게 웃어제낀다. 이 순간만큼은 돈이나 명예나 이름이나 무엇 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는 나이지만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그저 세상이 마냥 즐겁고 살 만하다는 생각뿐이다. 이때 누군가 옆에 있다면 내 비록 소심한 성격이지만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반갑게 눈인사쯤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추암해수욕장까지 내달려 첨버덩!

세상의 모든 행복을 뱃속에 넣은 다음부터는 껑충껑충 뛰어서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곤 얼핏 시계를 본다. 약속한 4시간이 설핏 넘어섰지만 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인한 체력만큼이나 불혹의 나이에는 삶의 여유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마흔 살을 앞둔 어느 여름날 더위와의 한판 대거리는 또 다시 나의 K.O. 승으로 끝났다.

아무튼 내가 더위를 쫓아 산위로 올라갔었는지, 아니면 더위에 쫓겨 산 밑으로 내달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뛰어서 산 밑까지 달려 내려와서는 냉큼 자전거에 올라타고 바람과 같이 추암 해수욕장으로 달린다.

계곡으로 흐르던 물과 자전거를 탄 내가 추암 바닷가까지 필사의 경주를 하는 시간이다. 이 경주에서 어느 쪽이 이기던 무슨 상관이람? 그저 쏜살같이 페달을 밟아서 추암, 그 너른 바닷가 품안에 첨버덩하고 뛰어드는 맛이 제일이지.

이렇듯 1353m의 두타산 정상부터 추암 바닷가까지 더위를 쫓아 두발로 열심히 뛰어 다니노라면 내 여름나기는 너무나 짧게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런 행복하고 시원한 여름나기가 어디 산 높고 시원한 바다가 있어야지만 가능하겠는가? 여름 한철을 정직하게 땡볕에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은 가로수 그늘 속에서라도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으리라. 마치 미지근한 수돗물 한 모금과 고추장에 찍어먹는 고추 한입에 세상 모든 행복을 가진 듯 행복했던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덧붙이는 글 <이 여름을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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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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